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23>...함백산서 천년의 시간을 만나다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 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겨울이 깊어진다. 2017년12월10일, 이 글을 쓰는 이날 서울에도 하얀 눈이 내렸다. 눈내린 겨울 산이 그리운 때다. 이에 작년 겨울 올랐던 눈꽃 핀 함백산을 추억하려 한다.

2016년1월30일, 필자를 비롯한 일행은 함백산으로 향했다.

하늘이 칠흑같이 어둡다. 고한역에 마지막 기차로 도착해서 여관에 잠시 언 몸을 녹이고 다시 새벽같이 나서는 길이다. 택시를 타고 만항재로 향했다. 오늘의 일정은 만항재를 출발해 함백을 넘어 적조암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온통 하얀 눈 쌓인 산에 첫발을 디디려 새벽 다섯 시에 나선 길이다. 만항재 오르는 길은 벌써 염화칼슘을 뿌리고 눈 치우는 차가 지나간다. 택시는 살금살금 눈 내린 만항재를 올랐다.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높이인 1330미터에 위치해있다.

만항재에 도착했다. 아직 캄캄하지만 희미한 박명(薄明)만으로도 오늘 눈길이 최고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 눈이 가득해 툭 건들면 와르르 쏟아진다 /사진=박성기 대표

장비 점검을 하고 날선 새벽의 어둠을 뚫고 여섯시 만항재를 출발했다. 발목이 넘게 쌓인 눈을 밟을 때마다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몸은 더욱 가벼워진다. 나무들은 부러질 듯 눈으로 지붕을 이었다. 지나다가 나무를 툭 건드리면 뒤따르던 친구의 몸 위로 눈이 우르르 쏟아진다. 산을 오르지만 도대체 힘든 줄 모르겠다.

▲ 기원단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대표

벌써 날이 밝아 ‘온~ 천지’가 하얗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어올라 감상하다 보니 시간이 더디다. 창옥봉을 지나 기원단(祈願壇)에 도착했다. 바로 앞 함백산은 구름에 가려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언뜻 구름 틈새로 살짝 얼굴을 보여준다.

▲ 함백산 기원단 /사진=박성기 대표

여기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일반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었던 곳이다. 나도  싸간 음식을 정성스레 올려놓고 세상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였다. 천지가 온통 순백의 세상이다. 내 마음을 하얗게 물들인 세상은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

▲ 함백산을 바라보니 정상 부분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사진=박성기 대표

너덜지대를 지나며 가파르게 함백산을 오른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산을 오르고 있다. 두터운  겉옷은 땀이 차올라 도리어 귀찮다. 가파른 산길을 턱밑까지 오른 숨을 몰아쉬고 올라 고개를 드니 정상이다.

▲ 정상 앞 이정표 /사진=박성기 대표

함백은 온통 희어서 함백(咸白)이던가. 많은 사람들이 눈 내린 함백산을 겨울 산의 으뜸으로 치는데, 오르고 보니 과연 그러하다. 함백의 눈풍경은 과연 최고의 겨울 관광 상품이다.
 
선인이 산에 올라 뭇 산이 발아래 있음을 노래한 것이 바로 이 기분이리라. 쉬이 오를 것 같지 않던 산정은 벌써 발아래 두었다.

회당릉절정 일람중산소(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내 반드시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의 자그마함을 굽어보리라!

                                                        -두보(杜甫)의 망악(望岳)-

▲ 함백산 정상이다. 바람이 워낙 거세 잠시 있기가 버겁다 /사진=박성기 대표

바람은 오랫동안 정상에 서있게 하지를 않는다. 땀 찼던 등골은 어느새 식어 다시 중함백산을 향해 길을 잡았다.

▲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 /사진=박성기 대표

살아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朱木)은 함백산을 넘으면서부터 가득하다. 살아서 웅장한 태를 보였던 주목은 고목이 되어도 단단한 천년의 모습으로 반긴다.

고목이 되어 비틀어지고 속이 텅 비었어도 도도한 천년의 시간을 같이 했을 엄청난 광경에 가슴이 메여온다. 아주 먼 옛적 어느 순간 같은 나무를 똑같은 감정으로 선인은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갖가지 모양으로 세월을 버틴 주목에 경의를 표한다.

▲ 함백산 풍경 /사진=박성기 대표
▲ 가지에 붙은 눈꽃 /사진=박성기 대표
▲ 주목 /사진=박성기 대표

주목은 중함백산으로 가는 내내 1킬로가 넘게 온 산에 가득하다.

태백산의 주목이 유명하지만 함백산의 주목에 비하면 덜하다. 나무의 크기도 그렇거니와 군락을 이루어 제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길목을 지키며 걷는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는 모습도 비교를 불허한다. 천년의 지혜를 간직한 함백산의 주목이 압권이다. 특히 이렇게 하얀 눈을 가득 이고 눈꽃으로 태어난 주목의 자태는 글로는 표현이 불가하다.

▲ 함백산의 눈꽃이 아름답다 /사진=박성기 대표

중함백산을 넘었다. 일찍 출발해 아무도 없던 나만의 길에는 벌써 마주 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적조암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는데  점점 많아지니 일찍 출발해 오롯이 함백산 설화를 먼저 본 것이 다행이다. 이런 모습은 사람이 없어서 호젓할 때 보는 게 좋다.

▲ 샘터삼거리 표지판 /사진=박성기 대표

샘터삼거리다.

계속해 나가면 은대봉을 넘어 두문동재로 가는 길이다. 이미 예전에 두문동재(싸리재)는 다녀왔던 길이므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틀어 적조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초반은 완만하게 내려오다 경사가 급해진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미끄러운 눈길이라 조심스럽게 길을 내려왔다. 발에 힘이 들어가니 더 힘이 든다.

적조암 삼거리를 지나 적조암 입구 차도까지 내려왔다. 아침 오르던 차도다. 눈은 벌써 녹아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다.

▲ 정암사 일주문. 2주 뒤에 다시 갔더니 눈은 녹아 없어졌다 /사진=박성기 대표
▲ 2주 뒤에 다시 찍은 적멸보궁 /사진=박성기 대표

1.8킬로 차도를 걸어 정암사로 향했다. 4시가 넘어간다.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지기에 서두르기로 했다.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살금살금 모습을 나타낸다. 정암사에 도착했다. 일주문을 들어섰다. 다리가 아파 육화정사 한쪽 귀퉁이에 앉아 쉬다가 적멸보궁과 수마노탑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정암사는 적멸보궁의 하나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셔놓은 곳이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의 법흥사, 그리고 이곳 정암사에만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은 불전에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있다.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암사 적멸보궁 바로 뒤로 산 중턱에 수마노탑(水瑪瑙塔)이 서 있다. 수마노탑은 자장율사가 서역에서 가져온 마노석(瑪瑙石)으로 탑을 쌓아서 마노탑이다. 물을 건너서 가져왔기에 물 수(水)를 붙여 수마노탑이라 부른다. 적멸궁엔 좌대만 있을 뿐이다. 부처님 진신이 바로 뒤 산중턱 수마노탑에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가 있는 것이 축복이다.

오늘은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출발해 맘껏 설화를 보고, 상상의 향을 느끼고, 만지고, 먹어보고, 밟아보는 오감의 걷기를 했다. 기원단에 올라 제사도 지내고 온통 희어서 함백인 함백산의 겨울도 제대로 만끽했다. 함백산에 봄, 여름, 가을에도 왔지만 역시 함백산은 겨울이 제대로였다. 올겨울 주목에 가득한 설화를 보고 싶다면 함백산을 추천 하고 싶다. 다시 말하건대 함백의 온통 하얀 눈은 겨울철 최고의 관광상품이다. 함백의 아름다운 눈꽃은 경제적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보는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날 후반 산행길에서 많은 등산객과 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이곳의 눈꽃길이 얼마나 자랑스런 관광상품인가를 입증해 주는 것이리라.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