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37>...미국 염색약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약간의 성공을 크게 떠벌이며 자랑하는 경영자가 있는가 하면, 소리 소문 없이 지냈는데도 어느 날 보니 크게 성공해 유명해져 있는 경영자도 있다.

일터에서나 공동체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나 사회적 관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자주 목도할 수 있다. 사소한 일상까지 서로 나누며 즐기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어떤 사람이 성공담을 알리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행위 그 자체를 크게 탓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어떤 분이 노력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그 사람이 성공했다고 느꼈을 때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올 것이다. 성공하려는 과정을 숨기고 지키기도 쉽지 않겠지만 사람들은 가장 뒤늦게 오는 놀라운 소식에 정녕 찬사를 보내리라.

미국의 염색약 광고에서 알리느냐 느끼게 하느냐의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자.

▲ 클레롤 론칭 광고 (1957) /사진=김병희 교수
▲ 클레롤 광고 종합 편 (1963) /사진=김병희 교수

프록터 앤 갬블(Procter & Gamble)의 머리 염색약 클래롤(Clairol)의 장기 캠페인 “그녀는...’ 편(1957, 1963)을 보자. 광고 캠페인을 시작하기에 앞서 1957년에 조사를 했더니 염색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15명 중에서 단 1명만이 인공 염색약을 사용한다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타났다. 그 무렵 미국 사회에서는 상류사회의 격조 있는 여성이라면 염색약(hair dye) 같은 건 쓰지 말아야 할 그 무엇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그 무렵에 불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헤어 컬러에 신경 쓸 만큼 여성들의 마음이 여유롭지도 않았다.
 
광고회사 FCB(Foote, Cone & Belding)의 유일한 여성 카피라이터였던 셜리 폴리코프(Shirley Polykoff)는 클래롤 광고를 맡고 나서 인공 염색약을 기피하는 현상을 어떻게 타개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광고주는 놀랍게도 여느 광고주들과는 달리 여성들이 클래롤을 써봤더니 좋더라는 말을 떠벌리고 다니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른바 구전 효과를 노리지 말자는 뜻이었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자신이 염색약을 썼는지 안 썼는지 알 수 없어, 염색을 했느냐고 물어보지 못할 정도로 헤어 컬러가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고 저절로 소비자들이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 과제를 놓고 고민하던 폴리코프는 뜻밖에도 미래의 시어머니가 될 분에게 첫 인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예비 시어머니는 곁에 앉은 자기 아들에게 귓속말로 폴리코프의 머리카락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염색을 한 거니? 안 한 거니?(Does she color her hair, or doesn’t she?)” 폴리코프는 순간 당황했지만 예비 시어머니의 말에 대해 곰곰이 곱씹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예비 시어머니의 다른 질문에는 대충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어느 순간 몰래 혼자서 무릎을 쳤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한 걸까... 안 한 걸까?(Does she... or doesn’t she?)”라는 호소력 있는 슬로건이 탄생했다.
 
15년의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여성들이 광고에 등장했고 모델이 바뀌었다. 평범한 주부가 혼자서 나오거나 아이와 함께 등장한 경우도 있었다. 가끔씩 트레이시 놀만 같은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헤드라인은 “그녀는 한 걸까... 안 한 걸까?”라는 하나로만 일관했다. “헤어 컬러가 너무 자연스러워 (염색했는지 안 했는지) 오직 미용사만 알고 있지(Hair color so natural, only her hairdresser knows for sure).” “갑자기 10살 더 젊게 보이면 남편이 뭐라고 할까?” “삶이 단 한 번이라면 금발로 살아보자.” 여러 광고물에서 가끔씩 이런 보조 카피를 덧붙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헤드라인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썼다.
 
이 캠페인은 여성의 미용 제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킬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6년 만에 성인 여성의 70%가 머리카락에 염색을 했고, 클래롤의 판매량은 4배나 늘어났으며, 판매액은 413%나 증가했다. ‘TIME’지의 조사 결과, 캠페인을 전개한 11년 후인 1967년에는 여성 두 사람 중에서 1명이 클래롤을 사용한다고 대답했다.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여성들에게 면허증을 발부받을 때 헤어 컬러 사진을 쓰지 못하게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나아가 이 캠페인을 통해 머리 염색은 부끄러운 비밀이라는 인식을 10억 달러 이상의 시장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폴리코프는 이 광고 하나로 광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통 50세가 될 무렵에는 여성의 약 50%가 흰머리가 생긴다고 한다. 물론 남성도 그 나이가 되면 흰머리가 생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여성보다는 고민을 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클레롤 광고는 염색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미국 여성의 75%가 머리카락 염색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캠페인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대부분의 광고에서와는 달리 여성들이 클래롤을 쓴다고 널리 알리라고 강조하지 않고, 자신이 염색약을 썼는지 안 썼는지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클레롤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데 있었다.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이 캠페인은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클래롤의 염색을 “한 걸까... 안 한 걸까?”라는 슬로건에서 경영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겠다. 염색이라는 말 대신 성공이라는 말을 넣어 ‘성공한 걸까... 안 한 걸까?’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 어떨까 싶다. 약간의 성공을 크게 떠벌이기보다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어떤 경영자의 성공 여부를 지켜보고 느끼도록 하면 보다 존경받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터. 굳이 신비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경영자의 이미지를 좋게 하고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들 보통 사람들도 소리 소문 없이 있다 보니까 어느덧 저절로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는 모습이 더 멋진 인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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