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38>...미국, 한 크리스마스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다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경영자가 있는가 하면, 큰 방향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경영자가 있다.

사업 규모나 기획의 내용에 따라 경영자의 개입 정도가 달라져야 하므로 어떤 스타일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모든 것을 경영자가 직접 다 챙겨야 직성이 풀린다면 성공을 해도 실패를 해도 아랫사람이 공유할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장님이 다 알아서 결정했고 아랫사람들은 시키는 대로만 했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어떤 난관에 봉착할 경우 회사 경영은 위기에 빠지기 쉽다.

이에 비해 후자의 경우에는 미완성 상태로 경영자가 제시한 방향을 채우고 완성하려고 노력한 직원들이 많기에 위기관리를 보다 능숙하게 잘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동안 경영자로부터 권한위임(empowerment)을 부여받은 경험도 많아 상황 변화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경영 현장은 물론 일반 직장이나 기정에서도 유사한 의사 결정 형태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닫힌 의사결정인지, 열린 의사결정인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집행한 위스키 광고에서 사람들이 완결(完結)과 미완(未完)의 대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 J&B 위스키 인쇄광고 ‘크리스마스’ 편(1991). / 사진=김병희 교수
▲ J&B 위스키 교통광고 ‘크리스마스’ 편 (1991). /사진=김병희 교수
▲ J&B 위스키 인쇄광고 트레이드마크 (1991). /사진=김병희 교수

“ingle ells, ingle ells.”

 J&B 위스키의 ‘크리스마스’ 편(1991)이 신문에 등장하자 미국인들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이런 영어도 있나? 광고의 전체 배경을 녹색으로 처리하고 그 위에 “ingle ells, ingle ells.”라는 헤드라인을 두 줄의 흰색 글자로 크게 뽑았다. 지면의 절반을 차지한 헤드라인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하지만 아래쪽의 바디카피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저절로 무릎을 쳤으리라. “J&B 없는 휴일은 (J&B 있는 휴일과) 같지 않습니다(The holidays aren’t the same without J&B).”
 
광고 창작자들은 바디카피에서 J&B만 빨강색으로 처리해 헤드라인에서 J&B 알파벳을 일부러 뺀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이쯤 되면 소비자들은 빠져 있던 J자와 B자를 헤드라인에 채워 넣으며 자연스럽게 “Jingle Bells, Jingle Bells”를 흥얼거리게 될 것이다.

이 광고는 소비자로 하여금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헤드라인에 제이(J)와 비(B)를 채우기를 유도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결성의 원리를 적용한 것. 완결성이란 어떤 자극물이 불완전해 보일 때 잘못된 요소를 고치거나 빈 곳을 채우려 하는 지각자의 성향이다. 사람들은 완결된 것보다 미완의 대상을 더 잘 기억한다는 성향을 고려한 광고다.
 
리투아니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닉(Bluma Zaigarnik)이 베를린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자 커트 르윈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하던 시절, 그녀는 간단한 과제를 제시하며 실험을 했다. 한 집단은 과제를 끝마치게 하고 다른 집단은 과제를 하는 도중에 중단시킨 다음, 실험 참가자들에게 과제에 대한 기억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과제에 대한 기억도가 과제를 중단한 집단이 모두 끝마친 집단보다 1.9배나 높게 나타났다. 이미 해결한 문제보다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기억한다는 내용의 논문인 ‘완결된 과제와 미완의 과제에 대하여(On Finished and Unfinished Tasks)’를 1927년에 발표한 이후, 자이가닉 효과(Zaigarnik effect)는 미완성의 과제를 더 잘 기억하는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사람들이 골프를 치고 나서 잘 친 샷보다 실수 샷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이론이다. 이미 이루어진 사랑보다 미숙한 나이에 안타깝게 헤어져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더 자주 더 오래오래 기억하는 현상도 자이가닉 효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인지 모든 첫사랑은 미완(未完)의 사랑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하던 일을 끝까지 완성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미완의 과제로 남기면 스트레스를 받고 두고두고 안타까워하기 때문에 자이가닉 효과가 설명력이 높다.
  
다들 아시다시피 J&B 스카치위스키는 1749년 이래로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이탈리안인 저스테리니(Justerini)와 영국인 브룩스(Brooks)가 힘을 합쳐 만든 회사이름 J&B(Justerini & Brooks)가 그대로 브랜드 이름이 되었다. J&B 광고에서는 광고에서 해답이나 정보를 100% 제공하지 않고 소비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불완전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소비자의 호기심을 오히려 더 자극하고 더 오래 회상하게 하는 자이가닉 효과를 기대했다.
 
지난 2007년에 63세로 작고한 다이앤 롯쉴드(Diane Rothschild)가 40대에 만들었던 이 광고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미국특허청(USPTO)은 “ingle ells, ingle ells, the holidays aren’t the same without J&B”를 연방 트레이드마크로 등록하는 것을 허용했다(등록번호 74215757). 광고의 성공으로 인해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J&B 위스키의 매출은 1990년의 같은 기간보다 25.7%가 증가했다. 그 후로도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이 광고가 기억나고 징글벨 노래가 나오면 저절로 ‘잉글엘~ 일글엘’을 흥얼거리며 J&B 위스키를 구매하게 된다는 소비자 조사 결과도 많다. 벌써 4반세기 전에 만든 광고가 올 크리스마스 시즌에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 오래오래 기억되는 셈이다.
 
우리 주변에는 완벽을 추구하는 분들이 뜻밖에도 많다. 필자가 만나본 최고 경영자 중에서는 매사를 자신이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하는 분도 많았다. 최고 경영자라는 자리의 막중함과 완벽한 일처리 솜씨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인생을 그토록 고단하게 살까 싶어 안타까웠다. 너무 완벽한 사람보다 뭔가 부족한 사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완전하지 않은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일 터.
 
경영자가 미완성인 상태에서 제시한 방향이나 열린 의사결정이 오히려 직원들의 창의성과 업무 의욕을 유발하는 동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식 앞에서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하고, 학생들 앞에서 완벽한 선생님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 길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부족함이 오히려 채움일 수 있다. J&B 위스키의 크리스마스 광고에서는 열린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미완(未完)의 존재들에게 평화와 사랑의 가치를 알려주시러 오셨으리라. 독자 여러분, 해피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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