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25>...길은 경제적 삶의 흔적이 녹아있는 곳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 2018년 1월 1일 아침, 드디어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이번엔 그간 수없이 걸었던 길들을 회상하며 곳곳에서 겪었던 소중한 추억들과 삶의 지혜, 경제적 가치들을 되새기려 한다.

필자는 이틀 전 새벽 2017년 마지막 산행에 나섰다. 지는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섰다.

2주 전 다녀왔던 연천 임진강 적벽길에 이은 고구려의 세 성(城)인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과 경순왕릉을 찾아 나선 길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몸을 옮겨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저들은 어디로 저리 가는 것인가. 그동안 걸었던 길들이 스친다. 때론 혼자였거나 도반(途伴)과 서로 의지하며 걸었다. 새 생명이 준동하는 봄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 단풍을 찾아 강원도에서 남도까지 나섰던 가을, 눈꽃과 얼음강 트레킹을 하던 겨울에 항상 같이 걸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걸었던 어떠한 길도 내게는 최선이었고 최고였다. 그리고 그간 스쳤던 모든 곳에서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과 경제적 발자취도 목격할 수 있었다.

▲ 북한과 인접한 호로고루성 /사진=박성기 대표
▲ 당포성과 임진강 /사진=박성기 대표
▲ 은대리성 /사진=박성기 대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화양연화(花樣年華)라 부른다. 내게 화양연화는 언제일까?

오래전 어느 눈발 날리던 날이었다. 같이 동행하던 지인에게 길이 좋은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던 적이 있다. 나중 남한강을 걸으며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목계나루에서 신경림 선생의 시 ‘목계 장터’를 읽고서 나는 박가분 파는 방물장수가 되었고, 떠돌이가 되었으며, 바람이 되었고, 구름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길은 나의 중요한 동행이 되었고, 언제나 화양연화였다.

▲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 /사진=박성기 대표

목계장터가 어떤 곳인가. 1930년대 서울-충주를 오가는 철도가 생기기 전에는 수많은 배들이 북적이던 물류중심지였다. 경제가 살아숨쉬는 번화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애석하게도 그 흔적만 남아 추억을 전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장돌뱅이가 되어 많은 것을 느꼈다.

목계나루의 귀중한 경험은 길 위의 살았던 선인의 이야기로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길은 먼저 살았던 선인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길을 걸으며 다른 삶을 관조하고 나를 반추해본다. 몇 백 년 전에 살았거나, 훨씬 더 이전에 살았거나, 아님 바로 이전에 길 위에 살아왔던 그들의 다양한 삶, 그리고 당시의 경제생활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이 층층이 쌓여 녹아있다.

길을 혼자거나, 또는 여럿이 같이 걸으며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의 조각을 맞추고 대화한다. 그러다 어느새 이전에 살았던 선인과 동화가 된다. 그래서 길에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꾼을 만나면 객주처럼, 태백산맥처럼, 토지처럼 소설이 된다.

▲ 새비재의 첩첩한 연봉들 /사진=박성기 대표
▲ 바람에 짓쳐 쫒기듯 밀려오는 바다. 바다는 바람에 주름을 보였다 /사진=박성기 대표

이후 나의 걷기는 나그네가 되어 전국 곳곳의 수많은 이야기와 만났다. 100mm가 넘는 폭우 속에서 덜덜 떨며 걸었던 때도 있었으며, 태안 갯벌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던 기억도 있다. 파도가 바람에 짓쳐 육지로 달려 들어오던 장관과 정선 운탄길에서 밤별을 보며 걷던 추억 등 하나하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로 가득했다. 이러한 길 걷기는 앞으로도 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내 주변의 나랑 같이 걷는 도반들은 어떠한 생각으로 길을 걷는가가 너무 궁금하여 몇 가지 설문을 가지고 그들에게 물었다. 걷기를 하는 이유와 걷기가 생활면에서 어떠한 변화를 주는가. 그리고 주변에 걷기를 권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대부분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첫째로 건강, 둘째로는 같이 걷는 이들과 상호간의 친목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과 들을 걸으면서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라고 했다. 또한 찾아가지 않았으면 모르고 살았을 곳들에 대한 감동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라는 대답이었다. 선인들의 삶과 경제적 발자취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선인들의 이러한 모든 것들에서 사람들이 길을 걷는 이유가 설명된다.

▲ 봉화 승부역 가는 길 /사진=박성기 대표
▲ 가평 축령백림길 /사진=박성기 대표
▲ 함백산 눈꽃길 /사진=박성기 대표

지금껏 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아봤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단상은 길 위에는 인간의 삶이 녹아들어있어 마치 인생과도 닮았다는 점이다.

길에는 좋은 길이 있고, 거친 길과 꼬부라진 길이 있으며, 쭉 뻗은 길, 언덕 길, 내리막 길 등 붙이면 말이 되는 수많은 길이 있다.

우리가 만나는 길 중 어느 길을 가야 최선일 것인가?

어떤 길이든 걸으면서 우연곡절을 겪다 보면 언젠가는 가고자한 목적지에 다다른다.

출발할 때 아주 험로로 보여도 걷다보면 아주 좋은 길을 만나거나, 반대로 출발은 좋으나 도중에 길이 너무 나빠 힘들 때도 있다. 길은 여러 모습의 얼굴로 내게 다가온다.

다양한 길을 걷다보면 길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힐링을 선사한다. 때로는 이런저런 경제적 교훈도 전해준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에는 또 어떤 길이 내 앞에 있을 것인가?  많은 기대와 소망을 가져본다. 길을 걷다가 험로를 지나면 평탄한 길이 나오듯, 무술년 새해에는 한국의 경제도 험로를 지나 모두가 웃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해본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