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기의 문화칼럼 1] 문예부흥도 창조경제...모두가 참여하는 장 마련 시급

[김용기 논설위원의 문화칼럼 1] 문화예술부흥은 문화공간의 원상회복에서 시작된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막고 ‘슈퍼스타 K’나 ‘K-POP 스타’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는 가수다’ 또는 ‘위대한 탄생’이란 프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 언제부턴가 이들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안방을 사로잡고 있다. 그 열기 또한 대단히 뜨겁다. 부정적인 측면도 있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테지만 TV방송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하나같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문화 예술 무대에 대한 동참 욕구가 높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프로들이다.

몇 해 전 젊은 무용수들의 꿈과 좌절을 보여주었던 영화 <블랙 스완>이 아카데미영화제를 휩쓴 이후 우리나라에서 한때 발레 광풍이 몰아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레 <백조의 호수>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그 뒤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덩달아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작품들이 유례없는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 또한 시민들의 고급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날로 증폭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처럼 우리의 국민들이 문화 예술에 흠뻑 빠져드는 것은 문화인과 예술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반갑고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비록 특정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 예술은 어느새 ‘시대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반가운 현상들을 보고 마냥 기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아직 우리의 현실은 이같은 국민적 욕구를 충분히 수용해 낼 만한 토대가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지금 우리 문화 예술계의 현실이 바로 그렇다. 화려한 겉모습 뒤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무엇보다 문화, 예술분야에 대한 인적 물적 인프라가 너무나도 빈약하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작품의 영세성으로 이어져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한계점을 도출해 내고 있다.

아울러 작품의 빈약함은 다시 공연문화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전국의 공연장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문화-예술계 전반을 빈곤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 발레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조사된 바에 따르면 예원학교의 발레 전공생 60명 가운데, 발레리노의 수는 고작 6명, 즉 전체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타나났다. 여자 무용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다.

또한 발레 분야의 극심한 성비 불균형은 고스란히 발레리노의 기근으로 이어져 결국 관련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발레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계속 이어질지 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럴진대 각종 문화 인프라들이 제대로 가동될 리 없다.

문화예술의 토대가 잘 닦여 있어야만 그 기반을 바탕으로 종합적이며 복합적인 문화시설도 제구실을 하게 될 텐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참담하다 못해 빈사상태로 치닫고 있다.

한 때 논란이 되었던 경기도 양평의 종합운동장 사례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전국 지자체에서 보유 또는 운영하고 있는 문화시설 중 상당수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2 공연예술 실태조사’자료를 보면 문예회관의 연간 가동률은 고작 31.4%에 불과한 실정이다. 문예회관으로 한정하면 연평균 54.9일만 공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혈세를 들여 어렵사리 지어놓은 문화시설이 유지관리에만 급급한 상황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경악할 일이다.

지방 문예회관도 문제이지만, 어느새 하나둘 늘어난 각 대학교 내 공연장의 경우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겨우 일 년에 한두 차례 실시하는 졸업공연이나 단순한 전시공간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대학교의 문화공간을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은 학교의 마땅한 책무인데도 대학내 문화 예술 시설은 계속 학교 당국의 무관심 속에‘아무도 찾는 이 없는 황량한 공간’으로 널부러져 있다.

이는 아울러 낭만과 풍요로움이 가득한 문화 예술의 품속에 있어야 할 학생들이 시장 논리에 희생되어 단지 취업에만 매달려야 하는 각박한 현실이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학내의 문화공간을 홀대하는 것은 학교 및 우리 사회의 귀책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물론 교내 공연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학도 있다. 몇몇 대학은 외부 전문가를 직원으로 초빙하거나, 상주 예술단체를 두고 프로그램 방향을 논의하기도 한다.

여기에 또하나의 방편으로 문화공간을 전문 운영업체에 맡겨 위탁경영을 의뢰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대학 내의 공연장은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학교의 이미지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학들로 하여금 본래의 기능과 정체성을 찾게 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대학 본연의 교육적인 기능이 무엇인가. 지덕체(智德體)의 고른 함양을 통한 전인적인 인격형성 및 사회화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철저히 기업들이 원하는 스펙에 맞춰져 길들여지고, 그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젊음을 향유할 여유조차 없이 학창시절이 끝나기 무섭게 정글의 세계로 빨려들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이라는데가 바로 사회에 진출하기 전,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인큐베이팅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 이런 본연의 모습들이 교정 밖 저편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또한 젊음을 무기로 많은 것들을 실험하고, 또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 시도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힘이야 말로 대학생들이 가진 ‘특권’인데도 요즘 젊은 학생들은 그런 특권을 누릴 꿈조차 꾸지 못한 채 젊음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상황에서 가장 도외시되기 쉬운 분야 또한 바로 문화와 예술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당장의 현실만 중시하다보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문화 예술분야는 그야말로 뒷전으로 밀리고 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오죽했으면 문학평론가 김현이 작고하기 전 ‘한국 문학의 위상’이란 글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면서도 “그러나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말을 강조하며 문학의 소중함을 촌철살인 외쳤겠는가.

그런 점에선 예술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예술 역시 문학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그 때문에 우리를 억압하지 않고 도리어 자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전국적으로 문화예술관련 학과 및 전공생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불행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대학내 문화 예술공간을 소중하게 활용하는 계기를 다시금 마련해 내야 한다.

하루하루 각박한 생을 잠시 잊게 하거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최선의 답은 문화예술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백범 선생의 말대로 우리 국민들의 유일한 소원은 우리나라가 문화의 힘이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루 빨리 여기저기 방치 돼 있는 문화공간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여 문화강국의 토대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만이 ‘K-POP 스타’나 ‘위대한 탄생’처럼 무대로의 동참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길이 될테니까 말이다.

-위니아트 대표․ 극장장 김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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