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연임시켜 나쁠 거 없다는 판단도 하다니...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0월24일, 이번 임기 중 마지막 국정감사를 받았다.

본지는 이 때 이주열 총재가 4년 동안 가장 여유롭게 국정감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채권시장을 탄생시켜 역대 최고의 한국은행 총재로 평가받는 고 전철환 전 총재가 임기 중 마지막 국정감사 때 목소리에 약간의 피로함이 비쳤던 것과는 좀 달랐다. 2001년 당시, 한국은행 구내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 목소리에서 ‘총재가 애초부터 연임생각이 없는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들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이주열 총재의 마지막 국정감사’라고 전해도 당시로서는 누가 틀리다고 할 사람은 전혀 없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혹시 모른다’는 점을 언론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본지는 이 때 시점에서, 이 국정감사가 “이번 임기 중” 마지막 국정감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본지는 “이주열 총재가 또 다시 한은 총재로 국정감사를 받는 경우는 내년 3월 이전에 또 한 차례 국감이 열리거나 이주열 총재가 연임하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이 총재 연임 가능성이 국감을 5개월 만인 내년 3월 다시 할 가능성보다는 좀 더 높은 편”이라고 촌평했다.

이걸 가지고 이 총재 연임을 예견했다고 ‘자랑질’하는 글로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정감사를 5개월 만에 다시 한다는 것은 국감이 1988년 부활한 이래 전혀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피감 공무원들이 “못해 먹겠다”고 파업을 하더라도 심정적으로는 그 누구도 이들을 비난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감 다시할 가능성보다 높다”는 얘기는 “곳에 따라 비오는 곳이 있겠다”는 일기예보처럼 혹시 다른 가능성을 대비해서 써넣은 얘기일 뿐이었다.

이주열 총재의 연임은 금융시장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의외였다.
 

▲ 연임 소감을 밝히고 있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뉴시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놓고 앞뒤를 다시 맞춰보면, 굳이 이주열 총재가 교체돼야 할 이유도 별로 없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것은 금융시장적 관점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적 관점이다.

지금의 임명권자 입장에서 굳이 한국은행 총재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취임 때부터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의 인연이 깊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이다. 최 전 부총리 재임 중 네 차례의 금리인하를 통해 그의 ‘빚내서 집사라’ 정책을 도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최경환 전 부총리는 자신들의 정권이 몰락한 과정에서 그 역시 현재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최 전 부총리가 유일호 전 부총리로 교체된 후에도 이주열 총재는 금리를 한 번 더 낮췄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굴복해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선택까지 했다.

이 때 그는 국회에서 “재정으로 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바로 다음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발권력 동원 결정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이주열 총재가 “재정이 맞다”는 자신의 소신으로 일관했다가 중도해임됐거나, ‘신상털기’와 같은 보복을 받았다면, 박근혜 정권이 몰락한 오늘날 그는 ‘한국은행의 체 게바라’ 정도의 우상이 돼 있을 것이다. 고 전철환 총재가 처음으로 일군 중앙은행의 위상을 자신의 대에 이르러 완벽하게 현실화한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주열 총재는 체 게바라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부의 요구에 대해 ‘자동문’으로 일관해 온 것이 이 총재의 첫 번째 임기 중 모습이다. 그가 취임 후 처음으로 금리를 올린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였다. 지난해 11월30일이다. 4년 임기 만료를 4개월 앞둔 때였다.

정부와 권력의 요구에 대해 싸워본 적이 없는 중앙은행 총재를 마다할 정권은 거의 없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총재 연임 사례와 비교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과연 그게 진짜 이유일까’라는 반응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이 3연임을 하던 시절에도, ‘IMF 외환위기 극복’의 공로자인 전철환 총재를 굳이 교체했던 청와대다. 청와대 주인이 그동안 여러 번 바뀌더니 이번에 이토록 이례적인 연임이 이뤄졌다.

이번 총재 인선에서 청와대의 매우 흥미로운 모습이 전해지기도 한다. 단지 ‘누가 개혁이냐’에만 집착하던 일부 이전 정권과는 성향이 다른 사람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든 고 전철환 총재를 비롯해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연임의 영광을 이주열 총재가 누리게 됐다.

이 총재는 ‘8년 총재’로서 새로 한 주를 맞아, 이제 ‘매파’ 성향을 드러내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이주열 총재를 ‘매파’라고 언급하는 것은 ‘망발 중의 망발’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시점에서 그는, 다소 불경하더라도 ‘자동문’ 총재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다. 그런 사람이 첫 번째 임기 막판에 가서야 금리를 한번 올린 것 때문에 매파라고 할 수는 없다. 매파든 비둘기파든 각자의 소신과 철학이 있지만, 4번에 걸친 1%포인트의 ‘순 인하’와 발권력 동원을 한 총재를 매파라고 하는 건 너무나 부정확, 무식한 표현이다.

두 번째 임기를 맞아, 이주열 총재가 넘어야 할 난관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앞선 4년 동안 남긴 족쇄도 포함된다. 본인의 소신에 따라 금리를 올리려고 할 때, ‘정권이 강압하지 않을 때만 소신 총재냐’는 비판도 헤쳐 나가야 할 운명을 스스로 짊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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