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49>...말보로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포기하면 편하다.”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다”
  “하면 된다”가 아닌 “되면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닌 “티끌 모아 티끌.”
  “고생 끝에 복이 온다”가 아닌 “고생 끝에 골병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가 아닌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가 아닌 “가는 말이 고우면 쉽게 본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가 아닌 “무게를 견딜 바에는 안 쓰고 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가 아닌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가 아닌 “내일도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할 필요가 없다”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에 이런 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젊은이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계속 아프라고 하면서 위로의 메시지만 전한다면 그들에 비해 너무 많이 가진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숱한 관문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도 직장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이직을 생각한다고 한다. 기업 경영자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라사니를 찾지 못하고 고민할 것이다. 우리사회가 피로사회를 넘어 이미 위험사회로 접어든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세상에 대한 젊은이들의 인식이나 세계관이 어찌해서 이토록 삐딱해졌을까? 세상에 대한 인식을 다시 올바르게 자리매김해주는 재포지셔닝(Re-positioning)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말보로 광고 캠페인에서 재포지셔닝의 사례를 살펴보자.

▲ 남성용 '말보로 맨' 캠페인 (왼쪽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954, 1954, 1955, 1966, 1971, 1973, 1980, 1981, 1987, 1990, 1999) /사진=김병희 교수

필립모리스의 담배 말보로(Marlboro)의 ‘말보로 맨’ 캠페인(1954-1999)을 보자. 카우보이라는 시각적 상징과 “맛이 있는 곳. 말보로의 나라로 오십시오(Come to where flavor is. Come to Marlboro Country.).”라는 슬로건을 이용해 무려 45년 동안이나 장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시각적 상징과 슬로건은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했다. 같은 주제로 2-3년만 광고를 해도 지루해졌다면서 광고 메시지를 바꾸려하는 우리나라 광고주의 관행과는 너무 비교되는 대목. 이 캠페인에서는 광고 창의성을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인 영속성 차원이 돋보인다. 영속성이란 카우보이 상징과 슬로건처럼 핵심 메시지를 얼마나 장기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기준이다.

이 캠페인에서는 상징체계를 활용해 말보로의 브랜드 이미지를 재포지셔닝(Re-positioning)하는데 성공했다. 필립모리스는 지난 1924년에 여성용 담배 말보로를 시장에 출시했다. 그 후 담배 시장이 서서히 필터 담배 위주로 변해가더니 1950년대에 접어들자 남성 흡연자들은 거의 다 필터 담배로 바꿔 피는 경향이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으로 여성의 흡연에 대해 비난하는 일이 많았었고 여성에 너그럽지 않은 분위기가 계속되자 말보로의 시장 점유율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필립모리스의 경영진들은 광고인 레오 버넷(Leo Burnett, 1891-1971)에게 말보로를 여성용 담배에서 남성용 담배로 이미지를 바꿔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고민을 거듭하던 레오 버넷은 많은 미국 남성들이 서부 개척 시대를 동경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부 영화에 나오는 거친 이미지의 카우보이를 상징으로 활용하면 말보로를 여성용 담배에서 남성용 담배로 재포지셔닝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 그는 모든 상품에는 그 상품에 내재하는 고유하고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데, 상품 자체의 고유한 이야기인 내재적 드라마(inherent drama)를 찾아내 이를 흥미롭게 전달하면 상품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말보로 담배에서 그가 찾아낸 내재적 드라마가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 상징이었다. 그는 말보로만이 가질 수 있는 드라마적 요소인 카우보이를 소비자에게 간단하고 흥미롭게 제시하는 이미지 위주의 광고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카우보이를 등장시킨 말보로 맨(Marlboro Man) 광고를 1954년에 처음 선보였다. 광고를 시작한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말보로의 시장 점유율은 기존의 1% 미만에서 네 번째로 잘 팔리는 미국의 담배 브랜드로 떠올랐다. 확신을 가진 필립모리스의 경영진과 레오 버넷은 영화배우 폴 버치(Paul Birch) 등을 여러 광고에 카우보이로 등장시켜 카우보이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확산하는데 동의했다. 말보로의 판매고는 1955년에 50억 달러에서 1957년에 200억 달러로 2년 만에 250%나 증가했다. 1999년까지 계속된 이 캠페인이 기존의 여성용 담배 광고와 얼마나 다른 느낌인지 옛 말보로의 1935년 광고와 비교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여성용 말보로의 “5월처럼 순한(Mild as May)”이라는 슬로건은 카우보이 상징이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말보로의 나라(Marlboro Country)”로 순식간에 대체되었다.

▲ 여성용 말보로 광고 (1935) /사진=김병희 교수

말보로 담배의 카우보이 상징에서 알 수 있듯이, 광고에서 상징을 잘 만 활용하면 상품의 유한한 사용 가치는 무한한 상징 가치를 확보하게 된다. 광고에서의 상징은 독자적인 준거 체계와 주관적 경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소비자의 기대와 환상에 적절히 호응하는 드라마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말보로의 광고 창작자들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하렌(Christian Haren), 존슨(Brad Johnson), 맥라렌(Wayne McLaren), 맥린(David McLean), 해머(Dick Hammer), 로손(Eric Lawson), 윈필드(Darrell Winfield) 같은 스타들을 활용해, 서부의 야성적인 삶을 동경하는 남성들의 기대와 환상에 부응하고자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말보로를 남성용 담배로 재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했으며, 동시에 말로로 브랜드의 상징 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말보로 캠페인은 우리에게 재포지셔닝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기성세대는 시대와의 불화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카우보이 같은 매력적인 상징체계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말보로 담배에 등장한 서부의 카우보이로부터 강인함과 개척정신에 대한 향수를 느꼈으리라. 마찬가지로 정부나 기업의 경영자들은 우리 젊은이들이 시대와 화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젊은이들은 “되면 한다”가 아닌 “하면 된다”로, “고생 끝에 골병든다”가 아닌 “고생 끝에 복이 온다”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관을 정립하게 될 것이다. 정부 정책에서의 공유 가치 창출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맥락에서도, 젊은이들의 세상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인 쪽으로 다시 자리매김해주는 재포지셔닝 전략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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