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총재 탄생으로 드높아진 위상, 이제 한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가 21일 한국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해당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개최한다.

이번 회의에서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은 94.4%라고 CME그룹의 Fed와처프로그램이 집계하고 있다. Fed와 업무적 연고관계가 없는 일개기관만의 전망숫자가 아니다. 금융시장 대부분이 이렇게 예상하고 있다.

만약 Fed가 이런 예상과 다른 결정을 이날 내린다면, 그것이 시장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금융시장이 미리 중앙은행의 손발을 묶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손발이 묶이는데 대해 Fed는 아무 불만이 없다. 사실 이런 압도적인 금리인상 전망은 Fed 스스로가 꾸준히 시장에 정보를 제공해 온 결과다. 오히려 시장이 엉뚱한 판단을 하지 않게 Fed가 이끌어온 측면이 강하다.

이런 시장과의 소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1996년의 앨런 그린스펀 당시 Fed 의장이다.

채권가격 상승을 누리던 채권시장의 분위기를 그린스펀 의장이 완전히 망쳐 놓았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주가가 너무 부풀려졌다(exuberant)”고 말한 것이다. 금리가 하루에 0.15%포인트 치솟았다.

분위기 좋았던 시장이 갑자기 고난의 현장으로 돌변했다. 3주쯤 지나 금리가 또 폭등했다. 이번엔 0.24%포인트로 상승폭이 더욱 컸다.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 때문이 아니라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를 넘었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때서야 앞선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이 절대 비난할 일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의 발언은 현재 미국 경제가 활기차게 성장하고 있는데 안전자산인 채권투자나 하고 있던 투자자들에게 미리 경보를 전달했던 것이다. 얼마 후 Fed가 금리를 올렸지만, 시장의 반응은 이번엔 대단히 차분했다.

만약 그린스펀 의장의 주가 경고 발언이 없었다면 금융시장의 충격은 이렇게 분산되지 못하고 GDP가 발표된 날이나 Fed가 금리를 올린 날 하루에 몰아쳤을 것이다.

시장은 중앙은행이 오로지 시장만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고, 중앙은행은 철저히 선의의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사명을 버리지 않을 때 신뢰가 형성된다.

한국에서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위상이 1998년 이후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한은 관계자 가운데는 은행감독원을 내준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고 전철환 총재의 1998~2002년 4년 임기 이후 한은은 이제 정부와 확실히 다른 금융당국 기관으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재 임기 4년이 철저히 보장된 것이 이제 5번 연속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 이렇게 확실하게 기관 수장의 임기가 보장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덧 이것은 정권이 한은에 베푸는 은혜가 아니라, 어느 정권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한은의 위상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한은의 위상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시장과의 소통 부족이다.

한은과 시장의 소통 부족은 한은의 정보 부족 때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목숨 걸고, 자리를 걸고 시장의 투자자를 반드시 보호하겠다는 중앙은행의 결기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국회에서 연임을 위한 인사 청문회를 받았다. 이제 총재의 임기 보장 차원을 넘어 연임하는 총재가 나왔다는 것은 한국은행에 또 하나의 영광이다.

그런데 이 총재의 앞선 4년을 돌이켜보면, 한은의 시장관리자 위상에 흠집을 낸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오히려 이 총재의 4년 각종 발언에서도 입증된다.

금리를 5번, 6번 내린 것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당시 경제상황에 그리 판단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금리인하의 상당수가 그때까지 시장에 전달했던 정보와는 전혀 딴판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앙은행 스스로 불명예를 뒤집어 쓴 것이다.

총재가 연임을 해서 임기보장을 받고, 더 나아가 3연임 4연임하는 명 총재가 나올 정도의 한은 위상이 되려면 이런 일이 앞으로는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열 총재 청문에서 ‘말의 무게’ ‘소신과 정책의 일치’에 대해서는 더욱 가혹한 앞선 4년의 평가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은행법을 아무리 전 세계 유례없이 훌륭한 것으로 바꾼다한들, 총재가 어제 한 말과 오늘 정책 결정이 달라서는 ‘개발의 편자’가 될 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한국은행법도 참으로 여러 번 고쳐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법 개정은 주로 금통위에서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 계기가 됐다.

법을 아무리 고쳐도 한은에 대한 제3자의 부당한 간섭이 지속된다면, 과연 한은법만 문제인지 돌이켜봐야 한다. 이 법을 집행하고 지켜야 할 한국은행 스스로는 과연 사명을 다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과 하루 전에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을 동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한 사람이 바로 다음날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발권력 동원을 의결하는 한국은행에는 한은법을 아무리 개선해줘도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지금 한국은행에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한은법이 아니라, 시장을 위해 자신들의 자리를 걸 수 있는 철저한 사명감이다. 이주열 총재 앞으로 4년을 지켜 볼 일이다.

사족. 아무리 한은 스스로 부족했다고 지적을 하더라도 꽤 오래 전 금통위원들이 집행부를 따돌리고 금리를 내렸던 사례는 한은의 중대 과오가 아니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한국은행 부총재가 금통위 의사록에 반대의견을 남기는 웃지 못할 소동이 이 때 벌어졌다. 이주열 총재의 임기와는 무관한 일이다. 이 때문에 한은법이 또 한번 개정됐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한은 총재가 금통위원들과 제대로 소통했느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당시 금통위는 이런 원론적 시비를 논할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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