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애국주의' '비선실세' 아닌 경영 능력 확신만이 해답이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외국 투기펀드. 한동안 한국에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애국심을 유발하는 단어였다.

2003년 소버린의 SK그룹 경영권 공격은 ‘국적 백기사’들의 단결을 가져왔다. 이후 15년 세월이 지났다.

이제 현대자동차 그룹이 외국 펀드와 경영권 공방을 벌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서 이 회사가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겠다고 발표하자, 곧이어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 관련 주식 1조 원어치 이상을 갖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겠다고 나섰다.

2014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반대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외국펀드들의 국내 재벌에 대한 경영권 공격이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주총장에서 40%에 가까운 지분을 과시해 국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1%도 안 되는 표결 결과를 얻은 것과는 아주 많이 차원이 다름을 과시했다.

국내의 소액주주 운동가들과 달리 해외 펀드들은 실질적 경영권 위협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거기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자본의 ‘국적주의’도 많이 약해지고 있다. 외국펀드들 또한 이 점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 국내 재벌 경영권이 흔들린다고 해서 무조건 국내자본들이 ‘근왕’하는 15년 전과 같은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권이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엘리엇이라는 이름은 현대자동차 그룹에 더 한층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이 그토록 치열한 지분 경쟁을 하게 된 것은 엘리엇이 합병 반대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왜 삼성 경영진의 편에 서게 됐는지가 한동안 극심한 논란거리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만약 엘리엇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국민연금이 어디 편을 드는 지가 이렇게 큰 관심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상당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어마어마한 정치적 결과와도 떼어내서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외국펀드가 이제 현대자동차를 지목한 것이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왼쪽). /사진=뉴시스, 현대자동차 그룹.


상당히 유치한 논리이긴 하지만, 굳이 자본을 한국 대 외국으로 구분한다면 현재 경영권이 멀쩡할 국내 재벌은 거의 없다.

주력회사들의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긴 곳은 한 두 곳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3%다. 이번 현대자동차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인 현대모비스는 외국인 지분이 48%다.

만약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인들이 똘똘 뭉친다면 한국 기업의 경영권이 넘어간다는 것인데, 물론 자본주의 세상 이치를 아는 사람들에겐 유치하기 짝이 없는 국수주의적 논리다.

투자자들이란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하는 사람들인데, 마치 축구경기 응원하듯 국적 따라 편 가르기를 할 까닭도 없고, 더욱이 자기 본래의 나라도 아니라 그저 한국인 총수를 반대하기 위해 뭉친다는 건 더더욱 유치한 편에 가까운 발상이다.

주식투자가 내 나라 국기를 가슴에 달고 뛰는 선수를 응원하는 축구경기와 다른 것은 경제적 이해가 걸렸기 때문이다.

회장이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또는 저 멀리 마다가스카르 사람이거나 영토도 없는 몰타 기사단의 기사거나, 중요한 것은 누가 가장 내 주식가치를 올리도록 경영을 잘 하느냐다.

SK나 삼성물산이나, 매번 국적 자본이 총동원 됐다거나 최순실 입김이 있었다거나 하는 시비가 있었지만, 본질은 역시 지금의 경영진이 존속하는 것이 자신의 이해와 일치한다고 보는 주주가 더 많았기 때문에 경영권이 지켜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무너졌다면, 50% 넘는 외국인 주주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내 투자자들까지 외국투기 펀드의 편에 서서 경영권이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당장의 합병비율이 불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경영권을 넘겨줄 일은 아니라고 본 주주가 대다수였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는 자신들이 제시하는 미래에 대한 주주들의 확신을 얻는 것이 엘리엇이든 어디든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생가능한 모든 경영권 도전을 제압하는 길이다. 주주의 확신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에 기초하는 것이다. 국적 자본에 대한 애착이 15년 전보다 엷어진 것은 확실해 보이기 때문에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또 다시 경영권이 공격받는 일이 벌어졌다고 무슨 황금주나 독약처방제 타령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 시간낭비 하는 일은 없기를 기대한다. 이런 방법들은 언뜻 듣기에는 솔깃하지만, 외국인 공격도 받기 전에 기업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격을 받기 싫어서 공격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곳으로 전락시킨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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