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36>...홍콩 트레킹<4> 신-구의 삶이 섞인 곳

▲ 박성기 대표

[초이스경제 외부기고= 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이번엔 2018년 3월4일 걸었던 맥리호스트레일 2단계 구간의 트레킹 소식을 전할 차례다. 카우룬(Kawloon) 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시작점에 섰다는 의미도 있다. 이곳 구간은 다소 난이도가 있는 트레킹 코스다. 이 코스를 걷다 보면 해변 관광 명소도 있고 꽤 힘든 산길도 만난다. 소를 방목해 경제를 지탱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곳엔 외국인 관광객이 북적이고 어느 곳은 유령마을처럼 폐허가 되어가는 곳도 있다. 맥리호스 트레일 2단계 지역은 신-구의 삶과 경제활동이 어우러진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맥리호스 2단계는 총 거리가 14km가 넘고 난이도가 조금 있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여섯 시간 예상을 하고 숙소에서 8시에 길을 나섰다. 숙소가 있는 몽콕이스트(旺角東, Mong Kok East)역에서 동철선(東鐵線, East Rail Line) MTR을 탔다. 카우룬통(九龍塘, Kawloon Tong)역에서 콴통선(觀塘線, Kwan Tong Line)으로 갈아타고 다이아몬드힐(鑽石山)역에서 내렸다. 맥리호스 트레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사이쿵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곳에서 중간 환승지가 있는 사이쿵(西貢, Sai Kung)까지 이동하기 위해 92번 버스에 올랐다.

▲ 사이쿵 항구에 떠있는 배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박성기 대표

버스 안에서 보는 바깥은 안개가 자욱해서 갑자기 나타나는 마주 오는 차들에 깜짝깜짝 놀라는 사이 버스는 사이쿵(西貢, Sai Kung)에 도착했다. 다이아몬드힐(鑽石山)역에서 사이쿵까지 40분이 걸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수많은 배들로 가득한 사이쿵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흐린 하늘에 짙푸른 바다는 묘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일요일 오전 일찍부터 항구에 나온 사람들이 많다. 낚시를 하러 가는 사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 휴식을 취하러 온 사람 등으로 북적였다. 하늘이 잔뜩 흐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시커먼 하늘에선 빗방울이 한 방울씩 투둑투둑 내리고 있다.

▲ 이른 시간임에도 가족단위 손님이 많다. /사진=박성기 대표

항구를 따라 걷다가 쾌 커 보이는 시푸드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홀에 가득했다. 온 가족이 함께 딤섬을 먹으러 온 부류가 대부분으로 보였다.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은 풍경이었는데, 중국인의 가족중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10시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딤섬만 된다고 한다. 음식은 직접 골라 가져와서 주문장에 체크하고 먹는다. 모든 음식이 다 훌륭했는데 새우가 특히 감동적이었다. 몇 번을 더 추가해서 먹었는데 가격이 정말 착했고, 양도 후했으며, 맛도 최고였다. 많이 비쌀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홍콩 유명 음식점의 것보다 뒤떨어지지 않는 맛이었다. 로컬음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 녹색택시. 맥리호스 트레킹 출발지에 가기 위해서는 이 택시를 타야한다. /사진=박성기 대표
▲ 맥리호스 출발지에 세워져있는 세계지질공원 구조물. /사진=박성기 대표

맥리호스 2단계 출발지로 가기위해서는 녹색택시를 타야한다. 정류장에 녹색 택시가 있어서 바로 올라타고는 목적지를 이야기 했다. 기사 아주머니에게 맥리호스 2단계의 출발지인 하이아일랜드 저수지 동쪽 댐으로 가자고 한참을 손짓 발짓 했으나 알아듣지를 못한다. 나의 엉터리발음을 자조하며 지도를 보여주고서야 동쪽 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안개가 너무 짙다. 택시는 하이아일랜드 댐을 끼고 맥리호스 1단계를 따라 올라갔다. 학생들이 뭉치뭉치 모여서 걷고 있다. 학교에서 단체로 온 모양이다. 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다. 맥리호스 1단계는 거리도 짧고 난이도가 평이해서 많은 사람들이 걷는 모양이다.

택시는 한참을 달려 댐의 동쪽 끝 맥리호스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2단계의 출발점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휴식을 취하면서 사진도 찍고, 대화를 나누는데 주변이 왁작하다. 이들은 1단계로 거꾸로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나처럼 2단계를 걷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 맥리호스 트레일 표지판. /사진=박성기 대표
▲ 롱케빌리지로 가는 길. /사진=박성기 대표

배낭 어깨끈을 조이고, 신발을 단단히 여미고는 길을 출발했다. 초입은 완만한 계단을 따라 오른다. 짙은 안개로 좌우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안개가 없다면 물이 가득 찬 댐도 보고 아름다운 경치도 만끽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300여 미터를 진행하자 길은 곧바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은 시멘트 길과 계단이 아스라이 이어지다 하얗게 가려져 보이지 않아 깊은 심연으로 빠져드는 묘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미 출발이 높은 지대여서 한참을 내려가니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철썩 철썩... 파도가 밀려와 모래를 내뱉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선다. 잠시 후 소리만 내던 바다는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냈다. 롱케빌리지(浪茄村, Long Ke Village)다. 해변엔 텐트동과 비박을 한 사람들이 물에 뛰어들며 바다를 즐기고 있다. 해변의 모래는 고와서 밀가루 같았다. 모래가 가벼워서 밀도가 높지 않아 디딜 때 밀려들어간 발을 빼고 다른 발을 옮기는데 조금의 노력이 든다.  잠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는 바로 출발을 했다. 오늘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아서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계속 길을 이어갔다.

▲ 사이완산 정상에 있는 정자. /사진=박성기 대표

가파른 산길을 계속 오르고 있다. 롱케빌리지를 출발하면서부터 오르막이다. 사이완산(西灣山, Sai Wan Shan) 정상까지는 2km 남짓 계속 올라가야 한다. 좌우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다를 상상하면서, 어느덧 안개는 맥리호스 트레일을 즐기는 데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았다.

산을 오르느라 땀이 비 오듯 한다. 거칠게 숨을 크게 내쉬고 오르니 끝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더욱 힘을 내서 올랐다. 우측에 정자가 보여 이제 끝인가 했더니 중간 쉼터이고 좌측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계단을 따라 더 올라야한다. 시간이 벌써 정오를 지나가고 있다. 정자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학학 대면서 오르기를 얼마간 했을까. 사이완산 정상에 314미터 표지판이 보였다. 해발 제로에서 시작했으니 그렇게 낮은 것만은 아니다.

▲ 사이완산 하산 길. /사진=박성기 대표
▲ 맥리호스 2단계 표식. /사진=박성기 대표
▲ 사이완빌지지로 가는 길의 대숲터널. /사진=박성기 대표

사이완산을 지나자 하산이 시작되었다. 2km를 내려오니 삼거리다. 먼저 내려갔던 사람들이 삼거리 정자에서 지도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디로 가야하나를 결정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맥리호스 코스인 우측 사이완빌리지(西灣, Sai Wan Village)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사이완 빌리지 까지는 1km인데 가는 동안 온통 대나무 숲이다.

안개까지 어우러진 대나무 길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나무가 가득해 댓잎들이 마치 터널의 모양으로 대숲터널을 만들었다. 내 고향집 뒤꼍엔 어릴 적 대나무로 가득했었다. 대나무 숲은 나의 놀이터였고 장난감이었으며 내 유년 기억의 중요한 한 페이지다. 그런 어릴 적 기억들로 인해 대나무 숲이 더 반갑고 즐거웠다.

▲ 사이완 해변. /사진=박성기 대표

대나무 숲이 끝나고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호수와 같다. 마을에 들어서자 배도 고프고 몹시 목이 마르다. 마을 초입 바다카페에 들어가 맥주와 연두부로 입가심을 했다. 허기진 탓인지 연두부가 맛이 있었다. 맥주는 값이 많이 비쌌지만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카페를 나서 마을로 들어서니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많았다. 사이쿵에서 이곳으로 직접 배가 들어오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모양이다. 카페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아름다웠다. 카페를 지나 바다로 들어섰다.

사이완의 해변이 너무 아름답다. 바다를 살짝 덮은 안개는 가득한 신비로움을 뽐내고 있다. 한참을 백사장을 걸으며 사이완에 취했다. 마을 골목 사이로 살짝 보이던 바다는 들어가서 보자 분위기를 있는 대로 올려놓는다. 백사장을 달려보기도 하고, 앉아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으로는 이 분위기를 살릴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자제하며 길을 이어갔다.

▲ 타이롱빌리지로 가는 길에 만났던 외국인 커플. /사진=박성기 대표
▲ 방목하는 소. /사진=박성기 대표

사이완빌리지를 출발해 야트막한 산을 넘는다. 오고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인사를 잘한다. 많은 외국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하이~ 하며 눈을 맞춘다.

바다를 끼고 안개를 헤치며 길을 이어갔다. 사이완빌리지에서 타이롱빌리지(大浪村, Tai Long Village)까지 가는 길엔 제주도에서 본 것처럼 소똥이 참 많았다. 이곳에서는 소를 방목해 키운다. 길을 가다가 떼지어 있는 소들을 만났다. 우리나라 소와 달리 시커멓고 뿔이 길어 긴장했으나 기우였다. 소는 우리가 옆을 지나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타이롱빌리지. /사진=박성기 대표
▲ 소로를 운행하는 차. /사진=박성기 대표

타이롱빌리지(大浪村, Tai Long Village)를 지나쳐갔다. 생각보다 길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마음이 바쁘다. 잠시 후면 날이 어두워질 것 같다. 걸음을 빨리해서 길을 나아갔다. 홍콩 길의 특징은 길이 시멘트로 포장되어있다는 점이다. 시멘트 길을 오래 걸으면 피로해진다. 홍콩의 길이 아름다웠지만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길을 이어가다 한쪽에 세워놓은 소로용 트렉터가 보였다. 길의 폭은 120cm 정도 되었는데 차로는 다닐 수 없고 운송수단이 조그마한 모터차다.

이윽고 길은 해변을 끼고 돌았다. 벌써 해는 기울어 아직은 괜찮으나 어둠이 조금씩 밀려들고 있었다.

▲ 첵켕 초입의 등대. /사진=박성기 대표
▲ 첵켕마을의 집들. /사진=박성기 대표
▲ 목적지인 팍탐아우. /사진=박성기 대표

첵캥(赤徑, Chek Keng)에 들어섰다. 작은 등대가 인상적인 마을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마치 유령마을 같았다. 집들이 부서지고 사람마저 보이지 않았다. 꼭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이 으스스해서 얼른 마을을 지나쳤다. 이제 조그만 산 하나만 넘어가면 목적지인 팍탐아우(北潭坳, Pak Tam Au)다. 어둠은 급속히 진행되어갔다. 마지막 산을 넘는데 시멘트 길이 한결 무겁고 힘이 든다. 점점 길이 캄캄해진다. 발걸음을 빠르게 내딛었다. 점점 빨라지는 걸음에 따라 맥리호스 2단계의 종착지 팍탐아우가 가까워졌다.

팍탐아우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7시였다. 11시 30분에 걷기 시작했으니 7시간 30분이 걸려서 도착하였다.

첫날 침사추이(尖東, Tsim Sha Tsui)를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드래곤스 백(龍脊, Dragon's Back)과 라마 섬(南丫島, Lamma Island), 이번에 기록을 하지 못한 마카오(澳门, Macau)의 세계문화유산인 카톨릭교회 건축물 탐방과 맥리호스트레일(Mac Lehose Trail)까지 모두가 나를 흡족하게 했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4박5일이라는 시간의 제약 때문에 더 샅샅이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항상 여지를 남겨놓고 돌아오는 것이 여행의 맛이라 했던가? 다시 한 번 홍콩 트레킹을 계획하였다. 그때도 역시 지면을 통해서 여행기를 보여드릴 것을 약속하면서 홍콩기행을 갈무리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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