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53>...스웨덴 사례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화급한 일이 생겼을 때 꼭 전화를 받아야 할 사람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음은 급한데 연락이 안 돼 난감한 경우를 모두가 경험했으리라. 원천적인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급한 대로 응급조치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떡심이 풀려버린 경우도 많다. 보통 사람들도 이러할진대 기업의 경영자가 이와 같은 응급 상황에 봉착하기라도 하면 연결되지 않는 시간만큼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누구도 믿지 못해 아무에게도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모든 정보를 혼자서 쥐고 있는 경영자라면 더더욱 위험하다. 외국 출장 중에 납치되거나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그 이상의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아니면 깜빡 잊고 처리하지 못한 회사 일이 불현듯 생각났는데 연결이 안 돼 처리할 방법이 없다면 정말로 문제가 심각해진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간에 회사의 시스템이나 최측근과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영자들이 의외로 많다.

▲ 포르툼의 '팔 늘이기' 편 인쇄광고들 (2013). /사진=김병희 교수
▲ 포르툼의 옥외광고 '팔 늘이기' 편 (2013). /사진=김병희 교수

스웨덴 포르툼의 인쇄광고 4편과 옥외광고 1편으로 구성된 ‘팔 늘이기’ 시리즈(2013)에서는 신문의 양면 전체를 광고 지면으로 활용해, 팔을 길게 늘려 과장되게 표현했다. 이 광고는 핀란드 최대의 에너지 기업인 포르툼(Fortum)의 스웨덴 지사에서 스웨덴 광고회사 가버그스(Garbergs)에 의뢰해 제작했다. 아트 디렉터 에릭 다그넬(Erik Dagnell)의 아이디어도 돋보이지만 완성도가 높아 소비자들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4개의 광고 모두에 “포르툼 모바일 기기로 어디에서도 집을 제어하세요(Control your home from anywhere with Fortum Mobile Solutions)”라는 똑같은 헤드라인을 썼다.

인쇄광고들을 보자. 첫 번째 광고에서는 치과의사인 엄마가 치과 진료를 하다가 문득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있을 아이들 생각이 떠올라 원격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보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재미있다. 두 번째 광고에서는 밖에서 여성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남자가 거실 등을 끄지 않고 나왔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는지 팔을 거실까지 길게 늘어뜨려 전등을 끄고 있다. 세 번째 광고에서는 아케이드 게임의 일종인 핀볼(Pinball)에 빠져 있던 남자가 전기다리미의 플러그를 그대로 꽂은 채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팔을 길게 늘어뜨려 플러그를 뽑는다. 네 번째 광고에서는 세 번째 광고와 같은 장면을 배경으로 활용하면서 중앙에 원격제어 시스템에 대해 많은 분량의 카피를 써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옥외광고에서는 두 번째 광고의 소재를 양쪽 끝에 배치하고 그 사이에 스웨덴의 전원 풍경, 사하라 사막,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사진을 끼워놓고 원격 조정의 혜택을 과장해서 표현했다.

포르툼(Fortum Oyj)은 1998년에 설립된 핀란드 최대의 에너지 기업이다. 이탈리아의 에넬(Enel SpA)과 스페인의 이베르드롤라(Iberdrola SA)와 더불어 신재생 에너지 분야를 주도하는 세계3대 기업이다. 포르툼의 전신인 이미트란 보이마(Imatran Voima)는 핀란드 각지의 수력 발전소를 운영하기 위해 1932년에 설립되었다. 그 후 성장을 거듭해 지금의 포르툼은 에너지 분야를 주력 사업으로 삼고 모바일 원격제어 시스템을 추가해, 북유럽과 발트해 인근의 국가는 물론 폴란드와 러시아를 넘어 인도에까지 진출했다.

이 광고의 핵심 메시지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터. 뛰어난 원격제어(remote control) 시스템을 가동하는 원격 기술의 우수성을 일발필도의 아이디어로 구체화시켰다. 기계를 사람의 손발로 직접 조작하지 않고 어떤 장치를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조작한다는 원래의 원격제어 개념. 이제, 원격제어는 우리네 생활 구석구석에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원격 기술은 컴퓨터, 모바일, 그리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든 정보통신(IT) 기기에 스며들어 이동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우리 둘을 하나로 통하게 할 수도 있다.

원격제어의 장점은 실제 현장에 있지 않아도 현장을 마음먹은 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경영자가 출장을 가게 돼 회사에 없어도 광고에 제시된 늘어난 팔처럼 보이지 않는 긴 팔로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를 원격으로 해결하는 것과 유사하다. 치과의사가 진료를 하면서 원격제어를 슬쩍 하듯이, 출장 간 현지에서 업무를 하는 도중에 문득 떠오른 놓친 일들을 호들갑떨지 않고 슬쩍 처리할 수도 있다.

세상이 이토록 좋아졌는데도 연결 시스템의 구축에 무심한 경영자들이 많다. 만약 어떤 일이 발생하면 경영자 스스로 혹은 동행한 비서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면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외국 현지에서 납치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납치되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빼앗길 테니, 적어도 핵심 인사의 전화번호 하나쯤은 외워두거나 메모라도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보다 한결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연결되는 연락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는 일이다. 연락 시스템의 매뉴얼을 구조적으로 짜놓을 필요도 있다. 트럼프나 김정은이 자신들의 책상에 핵 단추가 놓여 있다고 서로에게 엄포를 놓았듯이, 책임 있는 경영자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접속되는 ‘연락의 버튼’을 정해 놓고, 필요할 때 자기 손으로 그 버튼을 눌러 접속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단축 번호는 연락 버튼의 원시적 형태이다. 경영자가 아닌 시민들도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는 연락의 버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부모 자식이거나 형제자매이거나, 누군가의 친구이거나 애인이니까. 당신의 유일한 ‘연락의 버튼’은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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