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 상태에서도 확성기 소음 지속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세상 일 가운데는 대놓고 지적할 정도로 큰 일이 아닌 것도 많다. 그래서 너도나도 말을 아끼다보면 영원히 개선과는 담을 쌓게 된다.

그런 일들 가운데 두 가지만 언급해 보기로 한다.

첫째는 한국은행 홈페이지의 경제통계 시스템이다.

사실 이것은 한은이 잘못한 것보다는 잘한 점이 훨씬 더 많다. 마치 한국경제의 일목요연한 지도를 들여다보는 듯한 훌륭한 통계시스템을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자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의문이 하나 있다. 왜 시계열자료를 표시하는 디폴트값이 가로배열이냐는 점이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기자는 지금까지 많은 시계열 자료를 봐왔지만, 이를 세로가 아닌 가로로 배열하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있다면 자료의 길이가 5개 정도에 그칠 때뿐이었다.

물론 사용자가 가로배열이 아니라 세로배열로 선택을 하면 된다. 이것 때문에 찾으려는 자료를 못 찾는 것도 아니고 겨우 클릭 한번이면 끝나는 일이다. 하지만 사용자 친숙함을 강조하는 IT 문화의 정서가 무시되는 듯한 느낌이 남는다.

굳이 이렇게 기사로 쓰는 이유는 우선 이 글이 이와 같은 사소한(?) 것들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위에서 언급한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은행이 최근 대대적으로 홈페이지 개편을 했기 때문이다. 개편 과정에서도 시계열의 가로배치는 그대로 남았다.
 

▲ 사진=뉴시스.


두 번째는 프로야구 중계를 보다가 상당히 귀에 거슬렸던 장면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144만 관중의 원년을 보낸 뒤 계속 성장해 지난해 관중이 840만 명에 이르렀다. 곧 1000만 명 도달도 예상된다. 프로야구는 스포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대단한 산업이다.

최근에는 대만 출신 투수 왕웨이중의 활약 덕택에 대만으로도 중계되고 있다.

박찬호와 선동열 경기를 통해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처음 접한 1990년대의 한국 야구팬들은 경기수준 뿐만 아니라 깔끔한 야구장, 깊이 있는 응원문화를 부러워했다.

지금의 한국야구는 미국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공연을 즐기는 듯한 관중들의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특히 KBO리그에서 활약하는 외국 선수들이 이런 분위기에 매료되고 있다.

그런데 TV에서는 이런 열광적 분위기가 몇몇 응원단의 확성기 사용으로 인해 차단될 때가 있다.

현장에서 관중들이 만들어내는 함성을 밀어내고 확성기에 고함만 지르는 응원단장 목소리나 응원가 테이프만 TV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잠시 다른 일을 하면서 소리만 듣고 있으면, ‘아재 문화’가 가득한 사내 체육대회 중계 현장처럼 들릴 때가 있다. 참가자 가족들이 천막 아래서 도시락을 먹고 있고, 행사 진행자가 가요를 크게 틀어놓은 가운데 음주로 얼굴이 불콰해진 몇몇 아저씨들이 춤을 추고 있을 법한 분위기로 들린다.

확성기 또한 물론 잘 쓰면 야구장의 보약이다. 두산베어스의 경우, 1990년대 초부터 다양한 신서사이저 음악을 공수교대나 선수 등장 때 사용해 앞서가는 대도시 구단의 감각을 과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확성기 소음을 남발하는 몇몇 구단은 야구의 인플레이 또는 볼데드 상태마저 구분을 안하고 있다. 이런 중계 장면이 이제 외국으로까지 나가게 됐다. 야구는 주자가 공을 만지고 공기놀이를 해도 되는 볼데드 상태와 스치기만 해도 아웃되는 인플레이 상태가 구분되는 경기다. 36년 역사의 KBO 리그가 여태 볼데드와 인플레이 구분도 못하는 응원문화를 갖고 있다.

확성기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데 실패한 집회현장에서의 대안으로는 유용하다. 뭔가를 규탄하려고 모였는데 스무 명도 안 되는 사람이 모이면 집회 주최자는 그저 확성기나 틀어놓는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 경기장은 이런 초라한 집회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경기당 평균관중만 1만2000명에 가깝다. 순위 다툼이 치열한 팀끼리 경기라면 2만 명을 넘어 더 이상 빈자리가 없는 현실을 한탄해야 할 정도다.

경기장에서는 이 사람들의 일희일비가 교차할 때마다 엄청난 함성 또는 탄식이 쏟아진다. 관록 있는 응원단장은 이들의 정서를 조직적으로 이끌어 대단한 집단문화를 만들어낸다.

이런 모든 것들과 TV 시청자 사이를 떡하니 가로막는 것이 시와 때를 못 가리는 확성기다. 천만관중 산업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개한 응원문화다.

프로야구 응원의 ‘개국 태조’는 1980년대 OB베어스 응원단장이다. 그가 응원 때 들고 나온 도구는 오로지 쓰레기통 하나였다. 경기가 시작된 후 OB 응원단이 환호를 질러 쳐다보면 위아래 흰 옷을 입은 그가 쓰레기통을 번쩍 들고 관중석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이 쓰레기통 위에 올라서 응원을 지휘했다.

그와 쌍벽을 이룬 해태타이거스 응원단장 아저씨는 그의 상징이었던 호랑이조끼 외에 갖고 있는 도구는 호루라기뿐이었다. 1986~1989년 4년 연속 우승을 맛 본 해태 팬들은 잠실야구장 3루 쪽에서 무수한 아리랑 목동을 불렀지만 한 번도 확성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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