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앞두고 역사로 본 한국 경제 진단

[초이스경제 정동근 경제칼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이다. 한반도에 전례 없는 평화를 선물하리라는 예상이 대부분이다. 경제 번영으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는 섣부른 판단도 나온다. 평화와 번영을 만들어가는 피와 땀이 어느덧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여정은 한마디로 지난했다. 남북한과 미국의 정치인들 사이 조그만 틈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보이지 않는’ 선도 하나 보인다. 지표상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만든 가상 선 가운데 하나인 경도, 그 가운데에서도 ‘동경 135도’가 주인공이다.

남북한은 정상회담 직후 상호 신뢰를 쌓기 위한 첫 실체적 조치로 표준시를 통일했다. 향후 수많은 정치 일정을 공유하고 경제적 과제를 조율해야 할 텐데 시간적 오해로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훗날 어느 역사가는 동경 135도가 만들어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역사책에 기록할 지도 모를 일이다.

▲ 사진=뉴시스

524년 전 한 해의 이맘때쯤 대서양 한복판에도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494년 6월7일 두 나라의 접경 도시에서 지명 그대로 이름을 붙인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했다. 내용은? ‘서경 43도37분’을 기준으로 지구를 반씩 나눠 먹자는 것이었다. 과감하게도 그 대상이 지구 전체였다.

대항해 시대를 막 열어젖힌 두 해양 강국은 식민지의 경제적 이권을 나눠 갖자며 임의의 선을 두고 조약을 맺었다. 동경 135도가 향후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며 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건 경우라면, 서경 43도37분은 전 세계 식민지의 안정적인 착취 구조 마련을 위해 분할이라는 이름을 내세웠다는 차이가 있다.

서경 43도37분은 북극과 남극 사이의 대서양을 둘로 나누고 남아메리카를 가로지른다. 조약 결과 보이지 않는 선 동쪽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 전체가 포르투갈 차지로 전락했다. 인도, 중국, 일본은 물론 한국도 졸지에 포르투갈령이 됐다. 선의 서쪽으로 나머지 절반은 스페인이 챙겼다.

애당초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알린 것은 포르투갈이었다. 아프리카 남단과 인도에 닿는 항로를 잇따라 개척하며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다. 하지만 1492년 스페인 왕가의 후원을 등에 업은 탐험가의 등장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대서양을 건너 서인도제도를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앞세우고 스페인이 포르투갈의 독점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양측은 대서양 어느 곳에서나 사사건건 주먹질을 해댔다. 하필 이웃한 국가가 육지를 넘어 망망대해에서 다투는 모습에 마지못해 중재자로 나선 이는 당시 교황이었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경도를 기준 삼아 영역 분쟁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이제 남은 것은 대놓고 세계를 약탈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경제사 책들은 이후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당시까지 지중해의 향신료 시장을 지배했던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도시들은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나 건조지역 육로를 통해 이슬람과 벌이던 교류가 그 제한적 경제성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조약 직후 보다 큰 이익을 차지한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인도 항로를 활용, 동방무역에 집중해 당시 최고 이익을 내는 교역품인 동남아산 후추 등 향신료를 독차지하며 부를 쌓았다. 1500년 발견된 남아메리카의 동부 땅 브라질이 조약 선의 안쪽에 위치한 덕택에 그 영유권까지 차지했다.

서경 43도37분은 이처럼 일부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평화와는 담을 쌓는 효과에 머물렀다. 선은 분쟁의 종점이 아니라 또 다른 이권 쟁탈의 출발선으로 이름만 바꾼 셈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35년이 지나 태평양마저 분할하는 사라고사 조약을 체결하는 등 내내 아웅다웅이었다.

또 번영은 순간이었다. 포르투갈은 곧 네덜란드와 스페인에 해양 주도권을 뺏기고 말았다. 스페인 역시 얼마못가 영국에게 해양 최강국의 지위를 넘겨준다.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쳐 훗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영광을 위한 기틀을 닦았다. 보이지 않는 분할의 선을 두고 조약에 참여했던 두 나라는 나란히 2등 국으로 전락했다고 역사책은 기록한다.

눈앞에 닥친 북미 정상회담의 주제와 목적은 ‘한반도 비핵화’와 ‘체제보장 및 경제적 번영’으로 요약된다. 앞서 언급했듯 보이지 않는 선을 활용해 시작한 조그만 조치가 커다란 역사적 결과물을 가져온다는 교훈으로 먼 훗날 새겨질지 모른다. 또 사소한 지리-정치학적 문제가 해소된 후 엄청난 지리-경제학적 빅뱅이 그 모습을 드러냈음을 증명할 지도 모른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한다는 전제를 깔아두고 경제적 변동 양상을 미리 점치는 이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이른바 북한 프로젝트, 대북 사회간접자본 특수 등을 노리고 주식시장이 널뛰고 있으며, 정부와 관련 기업은 벌써부터 사업계획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시끄러울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지리-경제학적 관점에서 섬나라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외국과 교류하려면 바다나 하늘 길을 통해야 했다. 한반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휴전선 탓이다. 한반도의 남쪽은 대륙으로 이동과 진출이 불가능했고, 한반도의 북부는 밤이면 불빛 하나 없는 경제적 오지로 고립됐다.

북미 정상회담과 정치경제적 후속 조치는 한민족 가슴 속에 자리 잡은 그놈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하나의 선, 북위 38도선을 걷어낼 전망이다. 보이지 않는 선이 가져올 대동강의 기적과 동북아의 경제 빅뱅을 제대로 맞이하려면, 그놈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선을 역사책 한 페이지에 묻어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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