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한국형 팝송'이 따로 있더니 이제 가요가 전세계로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한국 가요가 산업적 측면에서 탄탄한 내수기반(?)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다.

그 전에는 한국에서도 외국 가요보다도 시장 기반이 크게 빈약했다. 다시 말해, 음반 소비의욕을 가진 고객층이 외국가요, 즉 팝송에만 있었지 내 돈 내고 국내가수 음반 사는 사람은 다방사장이 아니면 드물었다는 것이다. 팝송을 듣고 음반 소비도 하던 사람들은 당시의 중고등학교 청소년들, 오늘날 386 또는 586 세대로 불리는 사람들과 연령이 거의 일치한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크게 부족했을 때라 팝송의 불법복제 음반이 넘쳐나긴 했지만, 가격이 500원에 불과한 ‘빽판(불법복제음반)’ 대신 3000원짜리 라이선스 음반을 사게 만드는 요인은 있었다. 빽판은 전축 바늘을 망가뜨린다는 것이었다.

TV 한 대도 가구마다 모두 보급이 안된 시절이니 전축은 더욱 귀한 전자제품이었다. 이 귀한 제품의 예술성을 결정짓는 제일 중요한 부품 바늘을 망가뜨린다니, 아무리 빽판이 싸도 가격의 유혹을 이겨내야만 했다.

빌보드는 이때도 매주 최고 음반과 최고 팝송 순위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인기 있는 팝송과 빌보드에서 1등하는 노래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 방탄소년단 멤버들. /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점을 중시한 때문인지, 당시 동양방송 TBC(1980년 KBS에 통합됨) FM에서 별도로 주간 순위를 발표했다. 진행자는 김재건이었다.

일부에서는 같은 저녁 8~10시 MBC 박원웅의 인기를 뒤따라잡기 위해 TBC가 특별한 대책을 세운 것으로도 해석했다. 아무튼 김재건의 팝송 톱20은 특히 팝송에 처음 입문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들어야 할 방송이 됐다.

빌보드와 김재건의 톱20 사이에는 2주 정도의 시차가 있었다. 팝송이 미국에서 먼저 알려진 다음 한국 팬들에게 소개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시차였다.

시차 뿐만 아니라 약간의 스타일 차이도 존재했다. 한국형 팝아티스트로 불리는 스모키나 아바는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가수들이었다. 아바는 무수히 많은 곡들이 지금도 한국인의 애청 팝송으로 꼽히지만, 미국에서 제대로 인기를 얻은 것은 댄싱퀸 정도다.

영국계 스모키는 ‘앨리스 옆집에서 산다는 것’과 같은 불후의 ‘한국형 명곡’으로 이 나라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한국에서 자신들의 인기에 대해 반응을 보인 것은 많은 세월이 지난 한참 뒤다.

1970~1980년대 초, 한국의 문화시장은 외국 아티스트들에게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컨서트를 했을 때 성공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가끔 일본에서 공연이 있을 때 한국에도 한 번 들르거나 가요제 초대가수로 오는 적은 있지만, 이때도 절정의 인기가 약간 시든 뒤였다.

방탄소년단이 한 주 만에 빌보드 1위에서 6위에서 밀렸다고는 하지만, 어떻든 한국가수의 빌보드 1위 등극은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한국 사람들이 열렬히 듣는 노래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도 공감대를 얻고 있고, 한국의 문화시장이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을 갖췄음을 보여주고 있다.

‘끼’를 바탕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예술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한국인들이 앞으로를 개척해 가야 할 중요한 분야다.

한국인들은 냉정하고 과학적인 치밀함과는 좀 거리가 있고 감성적이라는 얘기도 듣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문화는 타고난 재주를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영역이다.

그렇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듯이 문화에 무지한 사람들이 돈만 탐하고 섣불리 손을 대서 대세를 망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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