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영화가 그랬듯이 스테이지 쿼터로 한국 뮤지컬 자생력 키워야

 

[초이스경제 김용기 칼럼] 얼마 전 서울시 뮤지컬단 유인택 단장이 일간지 문화면을 장식했다. 국·공립 공연장 4곳에 일정 기간 동안 창작뮤지컬 상연을 의무화하는 ‘스테이지 쿼터(Stage quota)’를 주장한 내용이 기사화 된 것인데, 사실 스테이지 쿼터에 대한 논의는 예전에도 있었다. 행정가가 아닌 김명곤, 유인촌 두 예인(藝人)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똑같이 ‘스테이지 쿼터’를 거론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뚜렷한 정책방향은 내세우지 않아서 유야무야 되었지만, 그간 한국 뮤지컬 산업은 해마다 15% 이상 성장하였고, 2012년 기준 연간 산업규모 2500억~3000억원 규모의 큰 시장으로 발돋움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해 뮤지컬 관객은 700만 명을 돌파했는데 이는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야구의 2012 시즌 관객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규모면에서 폭발적으로 증대한 수치이다. 바야흐로 뮤지컬이 국내 문화예술 산업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엘리자벳> <위키드> <닥터 지바고> <오페라의 유령> <맨 오브 라만차> <시카고> <아이다> <라카지> <맘마미아> 등 지난 해 관객의 사랑을 특히 많이 받았던 대표작들을 살펴보자. 제목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외국작품 일색이다.

<위키드>나 <오페라의 유령>처럼 해외 공연팀이 직접 내한하거나, 라이선스 계약으로 우리말로 번안해 공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뮤지컬 공연을 찾는 관객도 늘어나고 매출도 늘어 시장 전반적인 상황이 커졌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다수의 뮤지컬이 외국작품이다 보니 로열티만으로 수익의 30%가 넘는 금액이 외국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간다는 게 무엇보다 안타깝다.
 
가만 보면 과거의 어떤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방학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극장가를 점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영화는 존재감이 미미했던 시절이었으나, 90년대에 문화예술이 산업적으로 부각되면서 전성기에 접어든 대중음악시장에 이어 영화가 핵심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미 홍콩 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한국영화 전반의 예술적 성취는 물론 산업적 구조와 토대가 취약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한국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 수상을 통해 질적인 부분은 물론, 산업적인 측면 모두 엄청난 성장을 보여주었다. 단기간 내에 이렇게 한 국가의 영화산업 전체가 급성장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과거에는 대중들에게 ‘한국 영화는 볼 게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반응의 주된 이유는 말 그대로 외국 영화에 비해서 작품의 수준 자체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영화 한 편으로 천만 명 이상의 흥행을 거두는 사례까지 나올 정도로 까다로운 한국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겸비한 작품을 종종 만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돌아보건대 국내의 자생적인 영화 산업 기반이 생기기 전에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이라는 골자의 ‘스크린 쿼터’는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조처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와 스크린쿼터를 지켜달라는 투쟁을 벌일 때, 당시 심각한 외교 마찰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지지를 해주었고, 그것이 초창기 산업적 기반이 약했던 영화 산업계가 기틀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물론 뮤지컬의 경우는 영화 산업과는 환경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엔 무리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가 더 오랫동안 생을 이어갈 수 있고, 산업적으로 기틀이 튼튼하다면 그만큼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상식적인 얘기가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스테이지 쿼터는 적극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는 제도이다. 물론 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국공립공연장으로, 그것도 낮은 비율이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창작뮤지컬의 꾸준하고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주로 중·소규모 공연장에서 제작되고 있는 창작뮤지컬의 대극장화가 가능하며, 장기적으로 외국작품에 손색이 없는 대극장 시스템 개발은 뮤지컬 제작단체가 반드시 갖춰야할 덕목일 것이다.
 
CJ문화재단의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와 두산아트센터 등의 기업에서는 이미 창작뮤지컬 육성 프로젝트 사업을 수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은 우리의 콘텐츠를 확보해야 산업 경쟁력에서 밀리지도 않을 것이며, 안정적인 기반 마련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공연장 확보 뿐 아니라, 산업적 가능성과 뮤지컬의 매력을 공유하는 전 분야의 아티스트 및 스태프들이 더욱 늘어나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뮤지컬계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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