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꼭 해야겠다면... 지준율 100% 하면 반대 사라질 것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잠실에 위치한 제2롯데월드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국가적 상징이 될 수 있는 이 건물의 건설을 통해 경제에 도움을 주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인근 서울공항의 공군기들에게 안전 문제가 있다는 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진보 성향의 정권으로서 안보를 소홀히 하느냐는 비판을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이랬던 군의 의견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뒤를 이으면서 돌변했다. 군 전체 의견이 돌변했다기 보다는 공식적인 입장이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 몇몇 장성들이 강하게 반대의견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건설 방침을 막지는 못했다.

이미 건설이 완료되고 영업을 진행하고 있는 마당에 기업이나 국가, 그리고 지역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군의 입장이 반대에서 갑자기 찬성으로 돌변한 과정은 여전히 개운치 않은 기억을 남기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군의 변신과정을 대단히 서운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의 은산분리 완화논쟁에서 롯데월드와 서울공항의 비슷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전 정권에서도 인터넷은행을 위해 은산분리를 완화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시절,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를 격렬히 반대한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필요성을 공감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걸 찬성했다가 당의 고유한 지지층이 격렬히 반대할 것에 크게 부담을 느꼈다.

최근 들어, 정부와 집권당인 민주당 주변에서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과연 이런 행태가 제2롯데월드에 대한 군의 입장이 돌변하던 것과 대단히 흡사한 것이 아닌지 깊이 있게 돌이켜보기 바란다.

지금의 민주당 사람들에게 제2롯데월드가 가슴 아픈 점은 이런 것이다.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너희들은 안보에 관한한 함부로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식의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인근 서울공항에 불편을 줄 수 있는 안보상의 변화는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이 해서는 안되고 이명박의 한나라당만이 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은산분리 논쟁이 이와 닮은꼴이다. 이명박 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은산분리를 완화한다면 그것은 삼성같은 재벌에게 은행을 안기는 것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것은 괜찮다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보수정권이 안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주고, 진보정권이 개혁에는 지장이 없다는 신뢰를 주는 사례들이었다면 바람직한 면이라고 하겠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독선주의’ ‘도그마’ 이런 것들이 떠오르니 문제다.

“이 문제는 우리만이 논할 자격이 있고, 우리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결코 국민들에게 호감을 살 수 없는 태도다. 필시 유권자들에게 개운치 않은 잠재정서를 남겨 어떤 형태로든 선거에 영향을 주기 딱 좋은 일이다.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인터넷은행에서 산업자본의 소유비율이 4%가 좋은지 6%가 좋은지 절대적 기준은 없다. 그런데 지난 정권에서 정부가 추진했던 비율은 이 정도가 아니라 30%를 훌쩍 넘기고 있다.

지금은 감방에 있는 전 경제부총리는 금융지주회사가 도입되던 시절, 논객으로 청문회장을 다니며 “4%가 뭐냐. 8%, 아니 15%로 산업자본 비율을 늘려야한다”고 설파하고 다녔었다. 지금의 은산분리 완화주장은 감방 안에 있는 그 사람의 뺨을 때리고도 남는 수준이다.

은산분리, 인터넷은행같이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하면 사람들에게 기본 개념의 혼란을 초래하는 점이 있는데, 돈은 어떤 돈이나 다 마찬가지다. 인터넷은행이라고 해서 그 돈이 시중은행 돈보다 부실하게 쓰여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은행인 이상, 인터넷은행도 다른 제2, 제3금융기관이 갖지 못하는 통화팽창기능을 갖는다. 은행이 잘못되면 그 나라는 당초에 있지도 않았던 팽창된 통화량만큼의 부실까지 껴안아야 한다.

은행을 골병들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를 한통속으로 만드는 것이다. 은행의 핵심인 위험평가 기능을 마비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금융당국에서는 이걸 사후 감독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한국금융사를 돌이켜 보고 뻔뻔하게 이런 말을 함부로 안했으면 한다.

그래도 인터넷은행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헌법이상으로 바꾸기 힘든 안전장치로서 한 가지 조건을 제안한다.

인터넷은행에 대해서는 지불준비금 비율을 100%로 정해서 인터넷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 규정을 절대 못 고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보장만 된다면, 산업자본 비율이 50%라고 해도 커다란 반대는 없을 것이다.

지준율 100%로 무슨 은행을 하냐고 푸념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황당한 얘기도 아니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는 인터넷도 아닌 일반적인 시중은행에 대해 이런 규정을 만들자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국민투표까지 실시했다.

수준 높은 직접민주주의에다 금융최강국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국민들이 진지하게 논의한 것인데 설마 이 나라의 섣부른 식자들이 ‘황당한 얘기’라고 함부로 일축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탓하지 말고 ‘찬성을 위한 찬성’도 좀 자제했으면 한다.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허겁지겁 이법안 저법안 다 나오는 꼴이 참여정부를 그토록 애먹이던 2001년 경제퇴행을 보는 듯해서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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