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업의 문화예술후원, 더 이상 특별한 일 되어선 안될 것

 

[초이스경제 김용기 칼럼] 정치·경제 이슈 가운데 ‘성장’과 ‘분배’라는 키워드만큼 첨예하게 대립하는 명제가 또 있을까. 하지만 성장과 분배 중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두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물론 두 가지 요소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무조건 한 가지만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못할 것이다.
 
문화예술계에도 입장이 양분되는 대립명제는 항상 있어왔기에 둘 사이의 합리적인 조정치를 찾는 일은 필요했다. 대중예술에서 ‘예술성’과 ‘상업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지는 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접점일 것이다. 지원 없는 순수예술이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예술에 있어서 일정 정도의 지원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에 대한 적정한 지원은 어느 정도일까’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잠시 과거로 눈을 돌려보자. 중세 이전의 예술은 신(神) 중심의 예술이었다. 종교음악과 건축양식으로 특화된 예술 모두 신의 섭리를 예찬하는 차원이었다면, 중세 이후의 예술은 인간적인 것으로의 회귀였고 그 자체로 늘 반-권력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중세 이후의 새로운 예술적 흐름을 우리는 르네상스(Renaissance)라고 부른다. 르네상스는 ‘부활’, ‘재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의 부활은 중세가 아닌 ‘고대 그리스’ 시절로의 회귀를 일컫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로운 인간정신’의 복원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프랑스의 뛰어난 극작가 보마르셰의 희곡 3부작 『세비야의 이발사』, 『휘가로의 결혼』, 『죄 많은 어머니』는 풍자적인 성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그의 희곡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작곡가 모차르트와 로시니가 훌륭한 오페라로 승화시켰다. 그 중에서 사회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프랑스 시민혁명을 촉발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작품이 바로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부파 <휘가로의 결혼>이다. 위선적인 알마미바 백작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하인인 휘가로이다. 당대 지배계층의 모순적 속성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고 있음에도 당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물론 <휘가로의 결혼>은 지금도 전 세계 오페라극장의 가장 인기 많은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이다. 희극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모차르트의 음악도 아름답고 좋지만,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시대적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 폭넓은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된다.
 
이렇듯 체제에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움’은 예술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권력과 멀어지게 되면서 예술가들은 경제적인 고민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수의 예술가들은 창작에 방해를 받지 않는 독립성은 유지하면서도 물질적 후원은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적정한 거리를 잘 지켜준 훌륭한 후원자들도 많았던 게 틀림없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서 깊은 메디치 가문을 현대의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예술후원에 모범적인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사회에서도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기업의 문화예술활동 지원을 의미하는 ‘메세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금전적 지원 위주의 형식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유명 아티스트를 초빙해 예술가를 꿈꾸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거나,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프로그램,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처럼 유소년 오케스트라를 지원하는 행위 등 다양한 컨셉으로 문화예술 메세나를 실현하고 있다.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점점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문화예술과 결합된 아트마케팅이나, 메세나 컨셉의 사회 환원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대표적으로 모 카드회사가 직접 주최, 후원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문화예술공연 프로젝트라든가, 패션브랜드에서 유명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를 통해 특별판이나 한정판을 만드는 것들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로 인해 독특하면서도 크리에이티브한 기업 이미지를 얻게 되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기업 이미지를 위해서 지나치게 이슈 일변도의 기획을 추진한다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언젠가 그 허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이 사람의 감성과 마음을 나누는 공감으로 이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진정성 있는 마인드로 접근할 때 비로소 문화예술 후원기업으로의 이미지 구축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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