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지은 재벌 총수는 10년 이상 가두면 안되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또 다시 ‘3+5’ 관행이 확인됐다. 사법부가 재벌 총수에 대해서는 마치 자동시스템처럼 3년 징역, 5년 집행유예를 선고해 풀어주는 현상을 말한다.

법원은 지난 5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2심 재판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수감 중이던 그를 석방했다. 이번에는 ‘3+5’가 아니라 ‘2.5+4’가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년에서 며칠 모자라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와 ‘1년 옥살이’라고 하겠지만, 신동빈 회장은 지난 2월 구속된 지 8개월 만에 풀려났다.

검찰이 14년을 구형했던 걸로 봐서는 석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많았다.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검찰이 저렇게 중형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판결이 잘못이 없다면, 검찰의 수사가 대단히 미흡한 것이고, 수사와 구형이 제대로 됐다면 판결이 이상한 것이다.

어느 쪽에 문제가 있든, 이것은 법조계가 해결할 일이다.

국가적 관점에서는 또 다시 재벌에 대한 사법정의의 신뢰가 떨어지는 결과가 됐다는 것이 심각하다. 이 또한 법원 잘못이 아니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국민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있다.

어떻든 대부분 국민들은 재벌총수들보다 훨씬 더 유명한 선진국 기업 총수들이라도 분식회계를 저지르면 99년형도 거리낌 없이 내려지는 원칙을 한국에서 확인해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사례를 볼 때, 법원의 재벌총수들에 대한 판결에 대해 국민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자체는 절대로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일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후 234일 만에 구치소에서 나와 가을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현실적 문제를 전혀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법관이 됐다면 재벌총수에게 10년 넘는 징역을 마구 내려서 기업의 장기 경영공백을 초래할 것인가.’

정말로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그렇다’는 대답을 주저하는 사람 역시 국민 대부분일 것이다.

재벌 총수의 범죄에 대해, 누구도 부인 못할 모든 증거가 다 갖춰져 10년, 또는 20년 이상 수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어쩔 것이냐다.

만약 이 때 경제가 안 좋아 일자리는 안 늘고, 성장률이 정체돼 있다면 국가적 고민은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국가 경제를 위하여”라는 이유로 관용을 밀어붙이는 것은 사법적 정의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해결책이 못 된다.

왜냐하면 국가적 영향력이 큰 재벌일수록, 이들에 대해 적용되는 한국의 사법체계를 국제투자자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회장 한 사람 풀려나서 해당 기업은 좋을지 몰라도, 한국 금융시장의 규율은 전 세계적 불신을 얻게 돼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외국인 투매, 원화환율 폭등과 같은 막심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특히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 확인됐다. 다만, 이번의 경우 해외투자자들이 롯데그룹을 다른 재벌보다도 더 비중이 막대한 그룹으로 평가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재벌 총수를 장기 수감해야 될 때 한국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학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전혀 다듬지 못한 제안을 하나 해 볼까 한다. 헌법정신에도 국가적, 국민적 막대한 이해가 걸려 있을 때에 대비한 법을 만드는 것은, 헌법적 원칙과 다른 법률에 어긋나지 않는 한 허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인정되는 재벌 총수가 수감됐을 때는, 국가적으로 필요할 때 몇 개월짜리 휴가 비슷한 임시석방으로 볼 일을 충분히 보고 오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해외사업 수주에 죄수의 신분이라도 현지를 방문해 총수로서 정상적 활동을 다한 후에 교도소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한심한 발상이라고 욕먹을 거 같기는 하지만, 어떻든 죄를 지은 회장이 오랜 세월동안 안심하고 수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죄는 밉지만, 회장이 충실히 처벌을 받으면서 만기출소해 나올 경우 그를 수감 전과 똑같이 미워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3+5’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국민적 사법 불신은 해소돼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발상에 몇 가지 위험은 있다. 우선 임시 석방된 회장이 잠적을 하는 경우다. 그러나 재벌회장이라면, 순간의 자유에 현혹돼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포기하고 잠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 그런 경우라면 그의 상당한 재산이 사회 환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위험은 역시 시장의 평가에 있다. 이렇게 전 세계 유례없는 재벌특화 법을 만들었다가 한국의 사법 체계가 오명을 뒤집어쓰는 부작용이다. “하다하다 이런 법까지 만드냐”는 냉소다. 냉소에 그치지 않고, 해당 그룹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 모두로부터 투자자들이 떠나갈 위험이 존재한다. 사실 이 부작용은 마땅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런 법이 없는 지금의 사법체계는 과연 충분히 신뢰를 받고 있는가. 신동빈 회장이 석방되자마자 블룸버그는 그를 이재용 부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같은 리스트에 집어넣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게 무슨 리스트인지는 전 세계 웬만한 투자자가 다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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