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 한은 총재 연임... 결과는 Fed와 다를까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과 미국은 올해 중앙은행의 수장에 대한 인사에서 관례에 크게 벗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은 관례와 달리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을 교체했고, 한국은 사실상 사상 처음으로 한국은행 총재를 연임시켰다.

연임과 교체는 정반대지만, 예상 또는 관례에서 벗어난 점은 비슷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2월 임기가 끝난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의 교체를 지난해 확정하고 제롬 파월 현 의장으로 교체했다.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Fed의장을 연임시키지 않은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연임시켰다. 아주 오래전에 한은 총재 연임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때는 한은의 성격이 지금과 아주 달라 지불준비금 관리나 은행감독의 비중이 컸을 때다. 명실상부한 시장관리 기관이 된 1998년 이후 한은 총재가 연임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보다 먼저 파격적 인사를 한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결과는 ‘후회막심’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 /사진=AP,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옐런 당시 의장이 훌륭하긴 하지만 민주당원이라서 연임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옐런 전 의장의 정책이 낮은 실업률과 높은 주가를 유지하는데 매우 적합하다는 것을 통감했다.

옐런의 지위를 뒤흔든 장본인이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인사 결단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오히려 끝까지 그를 유력후보에 남겨둔 유일한 사람도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이미 공화당과 미국 재무부의 관성이 공화당원 Fed 의장으로 향한 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파월 의장은 어떻든 트럼프 대통령 덕택에 Fed 이사에서 Fed 의장으로 승진했다. 취임 8개월이 지난 현재, 파월 의장의 Fed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미쳐가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 최대 위협이 Fed”라고까지 발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 갈등의 원인은 Fed의 지속적인 금리인상이다. 진작부터 파월 의장이 옐런 전 의장보다 긴축적(매파)으로 평가돼왔다. 시간이 갈수록, 트럼프 대통령에겐 자기 손으로 떠나보낸 옐런 전 의장이 그리울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옐런 전 의장의 이별 순간은 그리 거칠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옐런 당시 의장은 연임은 못해도 Fed 이사 임기는 2022년까지 다 채울 듯한 기세를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옐런 전 의장의 ‘몽니’로 여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후 1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두 사람 사이 칭찬의 언어가 오가는 일이 늘었다. Fed 의장으로서 옐런의 마지막 순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한 보호자가 되는 장면도 나타났다. 옐런 전 의장은 자신의 교체가 확정된 직후, 의장직과 함께 Fed 이사에서도 함께 물러나겠다고 발표해 트럼프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줬다.

이렇게 떠난 옐런과의 마지막 기억은 훈훈하게 남겨놨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기에 “미쳐가고 있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마땅한 통제장치도 없다.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이 정당한 사유로 Fed 의장을 해임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과 의장 사이 정책이견은 법원에서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중앙은행과 정부 사이 이견이 최근 자주 노출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게 정부가 금리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뉴시스.


올 여름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답변 등을 통해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필요성을 얘기했다. 한은이 18일 금통위 회의를 하기 직전에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금리인상을 주장했다.

정부와 여당이 금리인상 필요성을 밝힌 것은 올해 일만도 아니다. 이 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해,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발언해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반발을 초래했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 박 전 대통령 임기 중 이 총재는 5번 금리를 인하했다. 인상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인 지난해 11월이 유일하다.

이같은 이 총재의 정책 행보에 대한 분석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하나는 이 총재가 지극히 저금리기조에 집착하는 사람인 경우다. 또 하나는 이 총재가 정부에는 전혀 맞설 의사가 없는 사람인 경우다. 전자라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중시하는 현 정부와 마찰의 소지가 크다. 후자라면, 그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이 총재와 불편하게 지낼 이유가 별로 없다.

지금까지 나타난 바로는, 이주열 총재와 한국은행은 당정청이 모두 나선 금리인상 요구에 꿈적도 안하고 있다.

이 총재가 말로는 “금융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고는 하는데, 국책은행 자본 확충 때 발권력을 동원한 사례 등에서 볼 때, 이 총재 발언을 그대로 정책으로 연결 해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이주열 총재가 연임될 때는 ‘싸울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충분했지만, 지금 한은은 이낙연 총리 발언 이후 두 달 째 인상요구에 맞서고 있다. 예전에는 안 싸웠지만, 이 정부에서는 싸우는 총재로 돌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번 18일 회의에서 금통위의 저항이 오래 못갈 듯한 정황이 강하게 나타나긴 했다. 정부출신 금통위원 가운데 한 명이 금리인상론에 가세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주열 총재 연임에 대해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처럼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그리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주열 연임’보다 ‘금리인상 요구’를 후회하게 될 가능성은 없나

금융시장이나 경제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과연 정부가 금리인상의 영향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런 요구를 하고 있느냐다.

부동산 안정도 중요하지만, 이른바 고용대란이라 불리는 취업부진도 현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은 성장률 전망도 낮췄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요구하는 금리인상이 어떤 성격이냐가 주목된다. 부동산을 충분히 잡을 때까지 긴축기조를 본격화하라는 것인지, 단순히 전 정권에서 ‘빚내서 집사게 하려고’ 내린 부분만 바로 잡으라는 것인지다. 후자라면, 이주열 총재의 연임을 ‘결자해지’ 차원에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만약 전자라면, 오히려 훗날 “왜 그 때 말리지 않았냐”는 후회를 더 크게 할 까봐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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