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보름 전에 예상한 상황이 그대로 벌어졌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만필] 국회의 올해 국정감사에서 몇몇 외국인 증인들의 출석 결과가 기대에 크게 미흡하다고 한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통역을 해야만 하는 사정 때문이란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일부 외국인은 이런 점을 교묘히 활용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본지는 이 같은 상황을 보름 전에 정확히 예상했었음을 밝혀 둔다. (☞ 관련기사 링크: 카젬 한국GM 사장, 국회에 불러내면 뭘 어떡할건데)

본지는 이 기사에서 지난해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의 출석 때를 참고해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철저히 준비해야 함을 강조했다.

당시 국정감사를 담당한 정무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진복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카젬 사장 한 명으로 인해 오후 회의시간 50분을 사용했다”며 “앞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할 때는 사전에 질문서를 보내서 답변서를 받은 후 그에 따라 진행해야 할 것 같다”는 발언을 속기록에 남겼다.

국회 상임위원장이 이같이 발언했으면, 올해 외국인 출석 때는 뭔가 달라도 다를 줄 알았다. 그런데 국회는 그저 ‘맨 땅에 헤딩’하는 자세로 외국인들을 불러냈다.
 

▲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해 통역사의 통역을 듣고 있다. /사진=장경순 기자.


올해 국정감사에서 통역사가 매번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입을 열자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이 “존경 안해도 좋으니 답만 명확히 하라”고 발언한 것은 본지가 예상한 상황 그대로다. 지난해 카젬 사장의 통역사는 매번 “존경하는 의원님, 한국GM은 한국의 규정을 존중하고 국회의 관심에 감사드리며”와 같은 덕담(?)으로 통역을 시작했다.

그나마 지난해 정무위원회는 답변 시간을 의원 질문시간에서 제외했지만, 올해 상당수 상임위는 무턱대고 의원들에게 답변까지 포함해 질문시간을 제한했다.

▲ 국정감사 답변 중인 존 리 구글코리아 사장. /사진=뉴시스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는 점도 있다. 존 리 구글코리아 사장의 영어 사용이다.

일부에서는 그가 사석에서 한국어 욕설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사실이라 해서 그의 국회 영어 발언이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부담 없는 자리에서 쓰는 언어와 입법부에서 위증 때 처벌도 감수하며 쓰는 언어는 명백히 다르다. 한국 사람들이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웠으니 미국 의회에 출석했을 때 통역을 금지한다면 심각한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논리다.

근본적 문제는, 왜 통역을 쓰면 국회의원들이 실체에 접근을 못하느냐다. 1988년 국회의 5공비리 청문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세동 전 안전기획부장을 추궁하는 장면을 보면 통역을 거쳤다고 해서 성과를 거두지 못할 대화가 전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날 무수한 다른 의원들과 달리 철저히 사실관계들을 근거로 해서 장 전 부장을 추궁해 한국정치사 최초의 ‘청문회스타’가 됐다.

외국인 사장들이 통역을 통해 발뺌을 했다지만, 의원들의 질문 자체에는 새로운 문제제기가 얼마나 있었나. 회의장마다 스무 명이 넘는 의원들이 질문했을 텐데, 이들의 질문은 과연 얼마나 서로 다른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이번 일은 우리가 우수한 우리말을 여전히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게 쓰고 있는 관행도 드러내고 있다.

한국 국회는 국회의원들이 명백히 상석을 차지한 윗사람의 말투로 출석 증인들을 대한다. 국정감사뿐만 아니라 평소 회의 때도 국무총리나 장관에게 의원들은 ‘언제든 내가 호통 칠 수 있다’는 전제로 발언을 한다.

수의사 출신 영국 보건장관에게 의원이 “수의사 출신이면서 뭘 안다고 보건을 논하냐”는 모욕적 발언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장관은 “의원님 말씀이 맞다. 그러니 몸이 불편하시면 언제든 돌봐드리겠다”고 응수를 했다.

사실인지, 해학성농담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한국이라면 농담으로서도 성립불가다. 국회에서 감히 의원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회의가 파탄 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14년째 국회를 취재하면서, 명백히 의원이 증인을 모욕해 증인이 은유적으로 반격을 한 조차도 위원장의 팔이 안으로 굽어 증인에게만 “상당히 듣기 거슬리다”고 하는 장면도 봤다.

국회의원들은 이런 식의 말투에만 익숙해있다. 수사관이 용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방법이 아니면 의원들도 진실을 캐낼 수 없다고 믿는 듯하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윗사람이 이런 식의 말투로 한국어를 쓰고 있다.

호통 칠 수 있다는 전제조건 없이 진정한 설득력으로 아랫사람들을 감동시켜본 사람이 얼마나 되나. 명백한 사실은, 상당수 한국의 상관들이 외국인들에 비해 논리적인 면에서 경쟁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논리적 약점을 감추는 데는 배타적인 울타리를 친 ‘갑질 문화’가 무기로 활용된다.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우리말을 가진 한국인들이 이 좋은 언어를 가장 비논리적인 말로 잘못 활용하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의 외국인 소동이 보여주고 있는 핵심은 우리말 활용이 안고 있는 이런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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