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리 인상한 날 특유의 자신감을 찾아볼 길 없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주요 당국기관 중에서 가장 성향이 점잖고 온건하다는 말을 듣는 한국은행 사람들이다.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지엄함과 자부심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차분하게 앉아서 학술보고서를 읽고 있는 것이 한은 사람들의 대표적 이미지다.

이렇게 선비 같은 한국은행 사람들이 어쩌다 한번 ‘지구의 정복자’ 같은 표정을 짓는 날이 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올리는 날이다.

내리기는 쉽고, 올리기는 극히 어려운 금리의 ‘상방경직성’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금리를 올리는 것은 한은이 정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결단을 내릴 때다. 얌전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더 이상은 안된다’는 충정에서 내리는 결단이다. 지금까지 백보를 양보해주던 다른 관련기관(어느 정부부처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에 모처럼 적극적 이해를 구하러 나서기도 한다.

금리인상이 잘 한 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6개월 후부터 욕먹게 될 일이고, 모처럼 금융시장에 정책존재감을 과시한 당일만큼은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것이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안하던 싸움을 벌인 사람들이 앞으로 닥쳐올 공세를 예견하는 막연한 경계심이 그 너머에 잠재하기도 한다.

한국은행의 30일 금리인상은 이러한 모습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세상을 평정한 사람들의 정복감과 함께 앞날의 공세에 대한 경계도 참 찾기 힘들다. 그냥 평소의 한국은행 사람들 같은 편한 모습이다.

이번의 금리인상이 잘못된 정책이란 비판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를 안 하는 모습이다.

정책에 대해 완벽한 자신감을 가진 때문은 아닌 듯하다. 경기가 둔화된다는 말이 가득해 한은 스스로도 성장률 전망을 낮추는 마당에 금리를 속 편하게 올리는 중앙은행은 없다.

그래도 한은은 속이 편하다. 이 금리인상을 한은 스스로 한 게 아니라고 여기는 정서가 곳곳에 깔려있어서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개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금리인상에 앞서 지난 9월 이낙연 국무총리부터 시작해, 10월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금리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융시장은 이들의 인상촉구로 이때부터 금리인상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언론인터뷰에서 금리인상 필요성을 밝힌 적도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현 정부는 한국은행에 금리인상을 요구했다.

대체적으로, 금리가 낮으면 너도나도 투자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므로 정권의 경제치적에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된다. 과도하게 낮으면 수년 후 경제가 회복하기 힘든 부실을 초래하게 되지만 이것은 다음 정권이 고민할 일이다. 악덕 정권은 적정금리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중앙은행에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나쁜 버릇을 갖는 것이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비춰보면, 현 정부의 금리를 대하는 태도가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대단히 ‘양심적’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정부의 금리인상 요구 역시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는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대한 침해다. 올리기를 정부 뜻대로 올려야 한다면, 이 중앙은행은 정책판단 능력이 크게 부족해 인하를 해야 할 시기도 자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현 정부가 부동산 안정에 너무 집착해, 부동산뿐만 아니라 경제전방위로 후폭풍을 가져오는 금리인상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금리를 정하는 통화정책은 정부의 재정정책과 달리 숫자의 절대가치가 상당히 중요한 면도 있다. 지나치게 낮은 금리라면 언젠가는 올려야 하는 것도 맞는 얘기다. 다만 경기하방국면이라면, 아무리 올려야 마땅한 금리를 올리는 것도 과도한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성장률 전망 낮추면서 금리 올리게 된 자체가 한은 책임

성장률 전망을 낮추는 마당에 오히려 금리를 올리게 된 지금의 형편은 전적으로 한국은행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어떻든 지금 금리가 너무 낮았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완화정책 단계에서 한은이 지나치게 금리를 낮추고도 그것을 적시에 바로잡지 못한 탓이다.

2014년 이주열 총재의 취임과 함께 본격적인 금리완화를 시작한 한국은행은 2015년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가 7년간의 제로금리를 탈피하는 9년만의 금리인상을 하는 것을 보고도 2016년에도 금리를 내렸었다.

이같은 과도한 완화정책이 오늘날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져 투자자금 유출을 우려하게 만드는 지경을 만들었다. 이른바 ‘빚내서 집사라’ 정책에 동원돼 가계부채 급증을 유발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금리를 올린 30일 한은에는 전혀 자신감이 넘쳐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스스로 치워야 할 것들을 남이 와서 대신 치워줄 때의 민망함이 가득하다.

1998년 이후 지금까지 17번의 앞선 금리인상과 이날의 금리인상이 왜 다른지, 한국은행은 앞으로 중앙은행 만년의 역사를 위해 특히 최근 4년의 일을 깊이 돌이켜봐야 할 일이다. 총재의 연임만 기뻐할 일이 아니다.

진심으로, 이렇게 끌려가듯 금리를 올리는 중앙은행은 처음 본다.

사족으로, 한국은행 사람들의 지성에 비춰볼 때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가 약간 변한 것을 핑계거리로 삼는 일은 없으리라 기대한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은 국회 회의석상에서 “미국도 좀 이상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고 촌평한 적이 있다. 그 대통령의 금리 간섭으로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말을 바꿨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그래도 Fed 역시 없던 일이 벌어지다보니, 예전처럼 Fed와 비교해 한은의 자성을 촉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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