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악영향이 더 우려... 국회 기재위 분발이 절실하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경제가 살아나려고 하는데,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서 산통을 깨는 것을 대통령이 반가워할 리가 없다.

이런 심정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이 요즘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하지만 경제 살아나는 데 중앙은행이 찬물 끼얹듯 금리를 올리는 걸 가장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은 그가 아니다.

1990년대 미국 경제 호황기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다. 앨런 그린스펀이 이끌던 이때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는 수시로 금리를 올렸다. 하루에 0.5%포인트 뿐만 아니라 0.75%포인트 인상기록도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1993년 취임 때 3.0%였던 연방기금금리는 그가 중간선거를 치러야 할 1995년 들어서자마자 6.0%로 두 배가 됐다.

그럼에도 클린턴 대통령은 금리의 ‘금’자도 입에 담지 않았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대한 철저한 함구전통이 그로부터 시작됐다. 전임자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만 해도 공개연설에서 금리인하를 촉구한 적이 있었다.

그린스펀의 연속적 금리인상은 1997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외국 사정일 뿐이다. 그의 금리인상은 인터넷의 보급이 가져온 혁명적 경제호황을 장기화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금리를 올려 부실기업들까지 성장효과를 나눠먹는 것을 차단했던 것이다.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클린턴 전 대통령에 비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Fed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다르다. 통화정책 독립과 인내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신경질적인 반응도 나타난다.

민주당 소속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7년 임명한 그린스펀 Fed 의장을 계속 연임시켰다. 최소한 클린턴의 8년 임기 동안 그린스펀 통화정책은 장기성장을 가져왔다는 호평을 받았다.

공화당 소속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재닛 옐런 Fed 의장을 교체했다. 옐런이 민주당원이란 이유에서다. 인사 막판에 옐런 의장에 대한 강한 호감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이미 자신이 부추긴 집권당 내 여론의 관성을 이기지 못했다. 공화당원인 제롬 파월 현 의장으로 교체했다.

그리고는 파월 의장 취임 10달이 조금 지난 현 시점에서 그를 거듭 비난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남의 나라 일이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Fed에 대한 태도가 미칠 악영향을 우려안할 수 없다. 미국의 금융경제는 특히 한국에서 교과서로 간주되는 현실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집권세력의 통화정책에 대한 간섭이 극심해 한국은행이 몸살을 앓은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금리를 내리라는 압력을 대통령뿐만 아니라 집권당 대표까지 수시로 한국은행에 행사했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는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구태에서는 철저히 예외다. 그러나 현 정부는 특이하게도 금리인상을 대놓고 요구했다.

정권의 금리인하 요구는 안돌아가는 경제를 발권력으로 치장해 후대에 두고두고 부실을 떠넘기려는 수작으로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금리인상 요구 또한 중앙은행의 냉철한 판단을 방해하는 것이다. 역시 좋은 소리 듣기는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욱 문제다.

언제든 한국은행의 손발을 묶어 금리를 마음껏 내리고 싶은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지금까지는 이런 행위를 질타하는 비교사례로 미국이 거론됐었다.

그런데 미국의 통화정책 독립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한국은 대통령의 압력으로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국책은행 부실을 메우는 일에 억지로 동원됐다. 1989년 증시부양에 한국은행 발권력이 동원돼 수 십 년 씻지 못할 부실을 남긴 사례를 떠올릴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미국의 사례를 보라’며 정권의 저금리 요구를 비판해 온 사람들이 할 말을 크게 잃고 있는 요즘이다.

무조건 돈을 풀어 건설공사도 일으키고 소비도 조장하면서 후임 대통령의 성장률까지 뺏어먹으려는 사람이 집권했을 때, 이 사람이 한국은행을 자기 뜻대로 부리려는 것을 막기가 더 한 층 힘들어졌다.

이럴 때일수록, 특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회의원들이 한국은행과 통화정책에 대해 바위같이 단단하고 건전한 소신을 갖는 것이 요구된다. 일시적으로 기재위 진용이 전문성의 부족을 노출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국면을 맞게 되면 국회의원들도 분발해 스스로 단점을 보충하고 전에 없던 새로운 면모를 갖추는 법이다.

미국의 통화정책 원칙이 흔들리는 것은 한국에서도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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