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IMF위기를 속죄해야 할 책임자들의 변명거리는 전혀 아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60] 무엇이 IMF 위기를 초래했나 (4)

어떤 사태의 원인을 지적할 때 조심스러워야 할 때가 있다.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다 보니, 책임을 지고 죗값을 치러야할 죄인들이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원인만 강조하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의 원인 가운데 국제적 원인을 얘기할 때는 이런 이유로 조심스러워진다. 온갖 개판을 다 벌인 작자들이 국제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발뺌할 소지가 있어서다.

그러나 아무리 아시아 외환위기였다 해도, 당시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교되던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포함해 이른바 ‘아시아 4룡’ 가운데 외환위기를 겪은 것은 한국뿐이다.

4룡보다 경제수준이 처진 일부 동남아시아국가들과 한국만이 이 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금이야 한국이 4룡 가운데 다른 3룡을 월등히 앞선 것으로 평가돼, 4룡이란 단어 자체가 거의 사라졌지만, 이는 경제수준이나 소득수준보다 인구, 국토 등 국가의 덩치의 차이 때문이다.

국제적 원인이 있었다 해도 4룡 가운데 유독 한국만 이 정도 함정을 피해가지 못한 건 국제요인보다 더 심각한 국내 요인이 있다는 방증이다. 위기에 책임지고 무한 속죄해야 할 인간들이 함부로 발뺌하고 변명하는 입을 열 생각도 말아야 하는 증거다.

그러나 차후, 또 다시 비슷한 국제 환경이 벌어질 경우 이 때 일을 거울삼아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다. 사실 지금 당장이 IMF 위기를 불러온 국제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다. Fed의 연속 금리인상을 IMF위기의 여섯 번째 원인으로 제시한다.
 

▲ 앨런 그린스펀은 1987~2006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이었다. 그는 1994년 연속적인 금리인상으로 연방기금금리를 3.00%에서 6.00%로 올렸다. /사진=뉴시스.


6. 미국의 금리인상과 국제투자자금의 미국 역류

2015년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가 7차례 금리를 올리면서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한국의 기준금리보다 현재 0.5~0.75%포인트 높다. 여전히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것은 이례적이다. 시장이 훨씬 안정적인 미국보다 한국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신흥국인 한국의 금리가 더 높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부터 한국은 미국보다 금리가 낮은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국제투자자금이 한국을 이탈해 미국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이 제기됐다.

IMF 위기의 교훈에 비춰볼 때 전혀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에는 사실상 채권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금리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건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로 14~15% 수준이었다.

미국의 Fed는 1994년 2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지속적인 금리인상에 돌입했다. 3.00%였던 연방기금금리는 두 배가 됐다.

미국에서의 이자가 두 배로 높아지자 투자자들은 굳이 아시아와 같은 곳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1990년대 인터넷의 상용화에 따른 ‘인터넷 혁명’으로 미국 경제는 독보적인 생산성의 향상을 누리고 있었다.

이것이 IMF위기를 초래한 국제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종규 청와대 재정기획관은 청와대에 합류하기 전 금융연구원에서 거시경제를 담당하고 있던 2016년 초,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통해 2015년 이후 Fed의 금리인상 역시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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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경우, 아무리 미국이 두 배로 금리를 올려도 한국의 금리보다는 여전히 10%포인트 가깝게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격차가 축소됐다는 점만으로도 투자자들의 한국이탈을 가져왔다. 미국 금리가 아예 한국보다 높아진 현재, 투자금 역류를 우려하는 자체는 너무나 당연하다.

1996년 한해의 흐름을 보면, 국제 투자금 역류가 아주 구체적으로 그 위력을 한국에 보여주기도 했다. 단지 한국에서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해 10월1일의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다. 1990년대 자본자유화 시기에 외국인 주식자금의 단계적 확대는 한국 주식시장의 ‘필승카드’였다. 이게 시행되고 나면, 종합주가지수는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이때의 한도확대는 또 하나 의도를 가진 것으로 풀이됐다. 원화환율 급등세의 저지다. 사상최대 무역수지 적자와 함께 원화환율이 800원, 820원을 연속해 돌파하고도 여전히 급등세를 그치지 않았다. 외국인 주식자금이 대거 들어오면 이를 진정시킬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에 그쳤다. 왠지 예전의 한도확대만 못했다.

사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우리만의 기대였던 것이다. 전 세계 돈 가진 사람들은 미국의 이자가 두 배로 높아졌다는 것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제 한국 주식을 예전보다 더 많이 살 수 있다는 얘기가 귀에 들어갈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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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봄,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당시의 지표금리인 30년 만기 재무부 채권 수익률이 0.4%포인트, 즉 40bp나 뛰어오르는 일이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벌어졌다.

아무리 금리변동폭이 지금보다 크다 해도, 1년 내내 5bp 이내 변동에 그치던 시장이다. 하루에 40bp 폭등이라면, 방향을 잘못 탄 딜러는 3년 농사를 하루에 날려먹는 날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연달아 벌어졌다.

거침없는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이것은 곧 한국과 같은 신흥국시장에는 폭풍우를 예고하는 경고였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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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글의 결론으로, Fed가 1994년의 연속 금리인상을 안했다면 1997년 IMF 위기가 없었겠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기에는 한국 경제에 너무나 치명적인 약점들이 많았다. 우리 자체의 모든 과오를 외면하고 무조건 미국 금리 때문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IMF위기 책임자들과 한통속이라는 의심을 안 할 수 없다.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몰려가지 않았더라도, 선진국 1주일 자금을 빌려 위험시장에 석 달씩 담궈놓는 정신나간 투자자에게 무서운 빚독촉이 닥쳐오는 것은 언제나 순간의 문제일 뿐이다.

집권엘리트들의 정책이나 정치적 과오가 IMF위기의 결정적 원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고한 서민들의 너무나 순진했던 금융체질 또한 위정자들의 잘못에 대한 면역기능을 마비시켰다. 다음 원인은 당시의 금융풍속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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