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처신에 한국 금융시장의 국제적 신뢰가 달렸다

▲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하려는 데 대해 재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나올 것은 당연히 예상된 일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무분별한 행위에 대한 뉴스가 최근 몇 년간 쏟아져 나온 마당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반대하는 논리는 약간의 변형과정을 거쳤다.

정치판의 색깔논쟁을 연상시키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하는 한편으로, “국민연금이 반대해봤자 주주총회에서 진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대해 표결권을 행사했지만 번번이 조양호 회장과 경영진에게 패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연금의 처지는 표결결과 때문에 반대할 걸 찬성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서는 전임자인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처지를 의식안할 수가 없다. 문 전 이사장은 앞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것 때문에 불과 얼마 전까지 수감생활을 했다. 구속만기로 풀려나긴 했지만, 재판 결과에 달려있는 그의 신세는 대단히 불투명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국민연금은 표결결과를 따질 겨를도 없다. 찬반을 잘못 선택했다가 국민연금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봤다.

단순히 법의 심판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국제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신뢰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에 대한 2015년 선택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보다 국제적 논란을 초래한 것이 더 심각하다. 한국 금융시장의 규율에 대한 근본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삼성 일개 기업에 대한 문제의 차원을 넘었던 것이다. 국민연금의 당시 선택은 현대자동차의 삼성동 부지 매입과 함께 한국의 금융시장에서 가장 실망스런 소식이었다.

만약 국민연금이 이번 조양호 회장과의 표 대결에서 이길 승산이 없다면, 오히려 결과에 대한 부담 없이 본연의 투자원칙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존재는 최후의 보루다. 언론의 견제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거의 아무런 기대를 심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국민연금은 더욱 더 큰 기대를 모았다.

실제로 앞서 몇 차례 국민연금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삼성물산 합병 때 작동을 멈추고 말았다. 이것이 지금도 한국 금융시장에서 신뢰의 논란을 남기고 있다.

무분별한 경영행위를 하는 대주주에 대해 견제를 하는 것이 스튜어드십의 진정한 이유다. 등기임원에 대한 적극적 찬반 표명은 스튜어드십의 핵심기능이다. 임원인사는 빼놓고 스튜어드십을 하라는 건 말의 유희일 뿐이다.

국민연금이 굳이 기업의 대주주를 다른 누군가로 바꾸겠다는 작위적 목표만 갖고 있지 않다면, ‘연금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의도가 뻔한 비난을 들을 이유도 없다.

국민의 쌈짓돈을 모아놓은 국민연금은 제대로 된 경영자를 찾아서 투자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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