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충격 예고'의 효과와 함께 '만시지탄'의 아쉬움

▲ 영화 '대부'의 한 장면. 로버트 듀발이 연기한 '톰 헤이건 변호사'가 식사 대접을 받다가 쫓겨나면서 공항까지 차편을 부탁하고 있다. 그는 이어 "대부께서는 나쁜 일일수록 빨리 보고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유투브 동영상 화면캡쳐.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명화에는 명대사가 속출한다. 1970년대 대표적 명화 대부에서도 말론 브란도(빅토 꼴레오네 역)와 알 파치노(마이클 꼴레오네) 부자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비롯해 수많은 명대사가 나온다.

이 ‘패밀리’의 사무장(패밀리 세계의 용어로 콘실리에리) 로버트 듀발(톰 헤이건 변호사)도 한마디를 남긴다.

“우리 대부께서는 나쁜 일일수록 빨리 듣기를 원하십니다.”

말론 브란도의 대자(代子)인 영화배우 ‘조니 폰테인’의 주연캐스팅을 영화 제작자에게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남긴 말이다.

나쁜 일을 보고하는 심정은 무척 괴롭다. 당장 보스의 재떨이가 날아올 것이 걱정이다.

여기서 인생의 갈림길이 생긴다.

일단 ‘재떨이’는 피해야겠다고 허위보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빈껍데기 인생으로 접어드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하나의 거짓은 이 세상 모든 진실과 앞뒤가 안 맞아, 언제 어디서든 티가 난다. 구차한 삶을 조금이라도 더 지탱하는 방법은 더 큰 거짓말로 앞선 거짓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 어떤 거짓도 모든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거짓은 들통 난다. 이제, 시초의 ‘나쁜 일’보다 더 큰, 그동안의 거짓말에 대한 죗값이 더 커졌다.

이렇게 ‘필망’하는 거짓보고와 다른 갈림길이 로버트 듀발의 선택이다.

나쁜 일일수록 빨리 보고해야 대부는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번다. 또한 굶어죽을 뻔한 아일랜드 어린아이를 시실리 가문의 양자로 맞아들여 변호사까지 만들어준 대부라면 더더욱 속일 수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의 5일 실적발표가 ‘대부’에 나오는 로버트 듀발의 교훈을 현실에서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이날 1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60.4% 급감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실적추락은 ‘실적 쇼크’라고는 불리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스스로 지난달 26일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이례적인 예고를 한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5일 오후 현재 전날보다 소폭의 오르고 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적을 60% 날린 주가의 모습이 아니다.

실적 나쁜 걸 절대 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불가피한 대내외 사정이 있다고 해도, 선의의 투자자들 상심을 생각하면 이런 날은 할 말 따로 있고, 안할 말 따로 있다.

그래도 열흘 앞서 충격을 예고한 행위는 좋은 선례를 시작한 것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개별투자자들에게 열흘이나마 선택과 판단의 기회를 줬다. “이래도 우리를 믿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이제 더한 유대감을 갖고 투자를 지속할 것이다.

앞날에 대해서는 나쁜 얘기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열흘 전, 실적충격 예고 때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의 실적경고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라며 “삼성의 주요수익원인 반도체는 곧 저점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망했었다.

이 매체는 실적이 발표된 5일 기사에서도 전문가들 인터뷰를 통해 서버 D램 수요와 함께 갤럭시 S10과 폴더블폰 판매가 하반기 예상보다 뛰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하반기 반등에 앞선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나쁜 일을 빨리 보고받은 투자자들은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보다 차분하게 앞날의 정황을 판단할 여유를 가졌다.

여기서 새삼 커지는 것이 그동안 세월의 ‘만시지탄’이다.

삼성전자와 삼성그룹, 그리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부자가 진작부터 이런 자세로 일관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다.

그동안 삼성은 기업의 ‘대부’와도 같은 투자자들과 고객들에게 ‘나쁜 일일수록 빨리 알려주는’ 모습을 별로 보여주지 않았다. ‘빨리’커녕 아예 알리지도 않으려고 하다가 ‘X-파일’이 난무하는 지경도 만들었다.

진정한 ‘대부’를 놔두고 대통령을 만나고 대통령 비선실세를 만났다. 그러다가 실질적인 총수가 옥고를 치르는 수난도 겪었다. 영화속 ‘대부’처럼 음침한 위세를 떠는 사람을 진짜 ‘대부’로 착각했다가 빚어진 불행이다.

지난달의 ‘충격 예고’ 때 외신들은 삼성의 전례 없는 일이라며 분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을 계기로, 투자자와 고객이야말로 가장 먼저 진실을 전달받아야 할 ‘주인’임을 명심했을 것으로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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