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숫자보다, 너도나도 딴데 정신 팔린 게 진짜 문제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우리 대부께서는 나쁜 소식일수록 빨리 듣기를 원하십니다.”

영화 대부에서 로버트 듀발이 남긴 명대사다.

이 대사를 3주일 전에도 기사에 썼다.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실적부진을 미리 경고했을 때다. 실적부진은 안타깝지만,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쁜 소식을 먼저 알리는 전에 없는 결정은 나름 평가받을만한 일이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이 지난 1분기중 0.3%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한국은행이 25일 아침 석간신문용으로 이 사실을 발표할 때까지, 금융시장 대다수는 ‘마이너스’란 일본금리에만 붙는 말로 알고 있었다.

발표당국기관인 한국은행이 통계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보는 금융시장에 공평하게 전달돼야 한다.

그러나 앞서 삼성전자가 실적충격을 예고한 것이 통계보안을 해친 것이라고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투자자들을 충격에서 보호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모습은 사실 거시경제 당국이 더욱 갖춰야 할 일이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뉴시스.


성장률이 ‘음수’가 되는 게 한국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는 말인가. 마치 통계만 발표하고 달리 바쁜 일이 있다는 투다.

결코 기획재정부가 한은 발표 보고 알았다는 변명은 하지 못한다. 일찍이 GDP 통계를 언론에 누설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는 기획재정부다. 그 때 일을 계기로 중앙은행과 거시경제부처간 정보공유가 완전히 차단됐다면, 오히려 원시적인 국정 운영을 개탄할 일이다.

한은으로부터 사전 통보를 못 받았다 해도, 이 나라 최고엘리트 관료들이 4월이 되도록 각종 기초자료를 토대로 1분기 성장률의 +, - 부호조차 몰랐을 턱이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든, 누군가는 1분기 성장률이 대단히 사납게 나올 것임을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숫자를 공개하란 말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 당국자들이 쓰는 나름의 어법이 있고, 그것은 시장의 투자자와 국민을 보호하는 의도가 명백할 때 충분히 허용된다.

수출통계가 괜찮으면 며칠을 못 참고 “우리 수출이 이번에 되게 잘되고 있어서”라며 미리 생색을 내는 사람들이 마이너스 성장은 그대로 방치해 국민들이 충격을 그대로 다 뒤집어쓰게 만들었다.

일말의 사전 경고라도 있었다면, 마이너스 통계에 대해 상당수 사람들은 ‘어렵지만 정부가 상황은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경제성장 10%를 하던 ‘한강의 기적’ 시절도 아니고, 정부가 성장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민간의 창의력으로 세상을 선도하면서 성장을 해야 하는데, 그칠 줄 모르고 돌아가던 스마트폰, 반도체, 자동차 성장엔진이 둔화 싸이클에 접어든 걸 전부 정부가 뒤집어쓰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그저 외부핑계 대고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 거면 국가에 정부가 왜 필요할까.

성장엔진에 문제가 생겼으면, 여러 가지 정책 조합의 타당성을 검토하면서 미리 작은 노력으로 최대효과를 볼 대책을 챙기는 게 정부, 특히 재무 관료의 역할이다.

25일의 GDP 통계가 영향력 없이 그냥 지나가는 통계도 아니다. 이 발표를 전후한 이틀 동안 원화환율은 18.7원 상승했다. 24일의 9.1원 상승 때 호주달러가치 급락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유독 원화가치만 동반 급락한 것도 의아한 일이었다. GDP 발표가 왠지 불안해 한국관련 자산 털기를 한다는 얘기가 있는 한편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일부에 알려진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딜러도 있었다.

당국자들은 금융시장이 1분기 GDP를 수많은 통계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넘어가기를 바랐는지 몰라도 ‘마이너스 성장률’은 그렇게 한국에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성장률이 이지경이면, 아무리 국회에서 여야가 극한의 정쟁을 하고 있어도 부총리가 진작에 초당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추경설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이유는 무언가. 혹시 당국자들이 불가침으로 여기는 뭔가에 비난이 쏟아질 것을 두려워한 건 아닌가.

시간이 갈수록, 예전 그 자리를 지켰던 선배들에 비해 지금 관료들의 기술이 크게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함께 커진다.

지금까지 마이너스 성장이나 제로성장 같은 끔찍한 숫자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은 건, 그 때마다 모든 시비 다툼을 내려놓고 여기 매달리는 정책기술자들이 있어서였다.

‘이번에도 금새 지나갈 것’이란 미신같은 태도로 일관했다가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험한 꼴을 겪을 수 있다. 그 때 제일 당혹할 사람들은 끝까지 정부를 믿으려 했던 사람들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