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탈출 임무 띠고 금감위행, 사토 ADB총재도 위기극복 응원

1998년2월, 외환위기로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게 됐을 무렵 나는 경기도 과천 재정경제부를 뒤로 하고 다시 미지의 근무처인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로 인생의 방향타를 틀어야 했다. 아직도 계절은 겨울을 벗어나지 못했던 터라 여의도의 새벽바람은 여전히 매섭고 쌀쌀해 ‘마치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치는 광야를 걸어가면서 풍운아가 된 듯한’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정들었던 재경부를 등진다는 섭섭함도 잠시, 내 마음 한 구석에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새로운 용기와 에너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왕 나라를 부도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새로 세워질 금융감독위원회에 가서 일하라는 게 내게 주어진 숙명이라면 더 이상 주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의 운명이 우리들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니 사명감과 자부심이 한데 어우러져 내 가슴과 머리를 비장함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기필코 나라를 위기로부터 탈출시키는 일에 이 한 몸을 던지리라’ 마음 먹으며 두주먹을 불끈 움켜 쥐었다.
 
내게 주어진 금감위 직책은 경제부처 1급에 해당하는 상임위원자리였다. 이정도 고위직이면 무슨 일이든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가 하는 자신감도 들었다.
 
그런데 여의도 금감위에 도착하자 예기치 않았던 낭보가 내게 전해졌다. 바로 직전까지 근무하던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내 조국 ‘KOREA’에 큼지막한 선물을 보내 줬다는 희소식이 내 귀를 즐겁게 했던 것이다. IMF(국제통화기금)에 이어 ADB도 우리나라에 수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고 이는 곧바로 ‘가뭄속의 단비’처럼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왔다. 순간 ADB 사토총재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과 한달여전 ADB를 떠나 서울행 비행기에 오를 때였다. 당시 내 심경은 복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한편으론 재정경제부에 복귀하면 그간 꿈에도 그리던 차관보 진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즐겁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라가 외환위기, 즉 환란을 맞아 언제 도산할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이뤄진 귀국길이었기에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었다.
 
상황이 이런지라 나는 사토와 헤어지면서도 “형님, 내 조국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아 어려운 지경에 처했으니 지원을 부탁드립니다”고 했고 사토 또한 나와의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 하면서 “걱정말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던 게 바로 엊그제 였다. 그런 그가 이제 한국에 적지않은 자금을 지원하는데 선뜻 동의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IMF는 한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온갖 조건을 내걸고 격식을 요구했지만 ADB는 그런 절차마저 생략한 채 한국을 상대로 흔쾌히 긴급수혈에 나서 줬기에 더욱 고마웠다.
 

▲ 사토 미츠오 1997년 당시 ADB 총재.

 /사진=ADB 홈페이지

ADB의 자금지원 소식에 나는 사토와 함께했던 지난 2년반 동안의 정겨웠던 필리핀 생활이 다시금 추억처럼 떠 올랐다. 앞서도 거론한 것처럼 그는 동경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문에 합격하여 대장성 국장까지 지낸 촉망받는 공무원이었다. 장차 대장성을 이끌 기대주라는 평가도 받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사토 또한 한국의 호남이라 여겨지는 관서지방출신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하고 머나먼 필리핀에까지 밀려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객지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토의 이런 처지는 내가 처했던 상황과도 꼭 닮아 우린 어느새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사토가 한국에 자금을 지원하는데 앞장서다니, 기쁨을 감추지 못한 나는 곧바로 감사장을 보냈고 그 역시 한국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잃지 말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사토는 또 내가 훗날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장관급 직위에 오르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나를 격려하기 위해 한국에도 여러차례 다녀갔을 정도로 내겐 형님같은 든든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토록 다정다감했던 그가 얼마전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몹시 그립고 안타까웠다.
 
어쨌는 나는 금감위 생활 초기부터 이같은 사토의 응원까지 받고 나니 더욱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하고 각별했던 사토가 한국이 어려울 때 뜨거운 응원을 보냈듯이 개인간의 일이든 국제관계 일이든 타인과의 관계를 잘 해 놓으면 그것이 언젠가는 복이 되어 돌아온 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고 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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