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왕자의 난' 가담한 왕 회장 일가 가신 3명 책임도 추궁

기업구조조정만 놓고 보면 30대그룹과 대우그룹 문제가 어느정도 정리되면서 이젠 현대그룹이 도마위에 오를 차례였다. 대우에 이어 그다음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현대그룹에 대해서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우리 금융감독위원회의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그룹만 제외하면 기업구조조정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 상태였다. 1999년말 통계를 보면 국내 64개 구조조정 대상 기업 중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에 올려진 회사가 16곳, 법정관리신청 3곳, 자체구조조정진행 40곳으로 대부분 기업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었다. 또 일부 부실기업 중엔 부도처리된 곳도 여럿 있었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추진된 30대그룹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얘기였다. 여기에다 대우그룹 문제까지 급한 불은 끄게 됐으니 기업구조조정측면에선 일단 큰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하나, 현대그룹이 문제였다. 대우만큼은 다급하지 않았지만 현대그룹 상황 또한 좋지 않았던 까닭이다. 현대그룹 역시 대우다음으로 부채비율이 높았다. 무려 342%나 됐던 것이다. 그래선지 시장에서 조차 다음은 현대차례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당시 현대그룹 부실은 현대건설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 이 회사에서 1조원이라는 미수금이 발생해 현대건설은 물론 그룹 전체의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께서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오셨던 2000년4월27일, 다시한번 용기를 내어 대우 뿐 아니라 현대에 대해서도 기필코 구조조정을 성사시킴으로써 시장 불안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각오를 다지기에 이르렀다. 당시 대통령께선 전화를 통해 대우문제를 잘 해결했으니 앞으로 남은 구조조정도 차질없이 추진해 달라는 각별한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그룹 구조조정은 사안이 중대했던 만큼 금융감독위원장인 나 혼자 추진하기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나로서도 완벽한 준비가 필요했다. 따라서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에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그들 부처 또한 현대그룹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겼는지 곧바로 OK사인을 보내왔다.
 
아울러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에도 현대 구조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감위와 정부가 방향을 정해주면 은행이 중심이 되어 구조조정을 관철토록 한다는 게 나의 확고한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현대구조조정과 관련해 6가지 대원칙을 마련했다. 첫째, 현대의 지배구조를 바꾸자 둘째, 이를 위해 계열분리를 하자 셋째,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을 매각토록 하자 넷째, 상호주식을 교차보유하지 말고 털어내도록 하자 다섯째, 중공업과 전자 금융 등 3가지 업종의 계열을 분리토록 하자, 그리고 여섯째로 계열분리와 아울러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등 비주력계열사를 매각토록 하자는 것 등이었다. 현대그룹에겐 가혹한 요구였지만 구조조정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조건들이었다.
 
그러나 현대측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L모, K모, 또다른 K모씨 등 문제 경영진 3인방도 내 보낼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구, 정몽헌 회장등 이른바 정씨 3부자에 대해서도 퇴진을 요구하고 그룹 경영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할 것도 촉구했다.
 
또한 현대건설 유동성위기 문제와 관련해선 정주영 명예회장 일가로 하여금 사재출연을 통해 해결토록 촉구했다. 뿐만아니라 현대건설 때문에 자동차 등 그룹내 다른 계열사가 동시에 도산될 수도 있으니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해외에 나가 기업설명회(IR)를 가질 것도 더불어 요청했다.
 
이처럼 우리가 현대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한 종합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나서자 현대 측도 가만 있지 않았다. 우선 6개 구조조정 요구사항과 관련해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명했고 정씨 3부자 퇴진 요구에 대해서도 이사회 결정사항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또 비주력사 매각 및 사재출연 요구에 대해서는 사재대신 보유 유가증권을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정씨 일가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내게 만나서 얘기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면담을 거절하는 바람에 우리들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와 우리는 그 뒤에도 재무구조 개선 및 구조조정안 관철을 둘러싸고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뒤에 소문을 듣고 안 일이지만 현대가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이상하게 사사건건 토를달고 나설만큼 배짱을 갖게된 데는 청와대 내의 인사가 대북송금에 현대의 협조를 얻기위해서 현대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뒷날 대북송금 특검에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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