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서 닦은 경험 바탕으로 신설 금융감독원 설립작업 지휘

내가 금융감독위원회에 가서 한 일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통합 ‘금융감독원’ 설립 작업이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나는 신설조직을 만드는 덴 이력이 난 사람이다. 1966년 포병소위시절 사단 창설 작업에 참여했고 재무부 근무시절에도 신설된 과에 배치되어 일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1998년2월 내가 금융감독위원회에 발령받아가니 여기서도 역시 신설조직을 만드는 일은 내가 할 일중 하나였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내게 통합 금융감독원 설립을 위한 실무추진위원장 자리를 맡겼기 때문이다.
 
이같은 일을 맏고 보니 문득 1967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다니면서 들었던 이한빈 원장의 ‘Institution Building이론’(기관형성이론)이라는 강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내가 드디어 그 때 들은 강의를 써먹을 때가 됐구나’하고 생각하니 자신감을 갖고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중차대한 업무가 내게 떨어진 이상 시원스레 일처리를 해내야겠다는 각오도 샘솟아 올랐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을 만드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은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서로 다른 4개의 기관을 묶어 한 조직으로 만드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감독’이라는 공통 업무만 빼면 기관별 인적구성이 워낙 다른데다 각 기관의 계급별 승진소요 연한 또한 천차만별인 것도 난제였다.
 
따라서 이들 판이한 조직을 어떻게 불만없이 한 조직으로 묶어내느냐가 통합 금융감독원 설립작업의 핵심 관건이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 닮은 게 없는 4개 기관을 어떤 수로 통일시킬까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뭔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새로 만들어질 금융감독원의 조직을 크게 단순화시키자는 것이었다. 기존 4개 감독기관의 계급구조는 대략 5단계였지만 앞으로 새로 출범할 금융감독원에선 계급 구조를 3단계로 확 줄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각 기관의 복잡한 계급구조를 비슷한 수준으로 통일시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다음은 상이한 업무와 조직을 유기적 결합관계로 재편키로 했다. 이를 위해 우선 은행 증권 보험 신용관리기금 4개의 업무를 그대로 놔두고 이를 다시 감독업무와 검사업무로 양분했다. 그리하여 조직을 8개 단위 즉, 은행감독, 은행검사, 증권감독, 증권검사, 보험감독, 보험검사, 신용관리기금감독, 신용관리기금검사 등으로 분류해 각 분야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조직의 능률을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조직 단순화와 계급 단순화, 그리고 조직의 유기적 결합 등을 골자로 한 새로운 금융감독원 설립의 대원칙을 세우고 나니 통합 감독원 출범작업도 가속을 낼 수 있었다.
 
새로운 인사원칙도 세웠다. 외부 인재 스카웃은 금융감독위원장이 맡고 내부 인사는 주로 금감원 설립 실무추진위원장인 내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또한 내부인사를 할 때도 학력 출신지역 성별 등의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능력을 중심으로 하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각자의 역량을 키워주는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아울러 은행감독원출신을 보험 업무에, 보험감독원 출신을 은행 업무에 교차 투입하는 등의 순환인사도 병행키로 했다. 각 분야의 능력 있는 사람에 대해선 발탁인사도 추진키로 했다. 대신 자기수준에서 다른 부서로 좌천되어 가는 일은 없도록 했다.
 
또한 이런 인사원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나는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인사위원회를 만들어 통합대상 4개 기관의 간부급들을 대상으로 면접에 임했다. 면접에선 사항별로 점수를 매겨 ‘A등급에 대해선 국장급 유지’ ‘B등급에 대해선 1급은 유지해 주되 국장직책은 주지 않음’ 등의 방식으로 인사 분류작업을 마쳤다. 우린 이같은 작업을 마치고 1998년12월 이헌재 위원장에게 보고했다. 이어 같은 달 하순까지 인사작업을 마치고 그해 12월28일 금융감독원 인사를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직원에 대해선 명예퇴직도 병행했다. 인사작업을 마치고 나니 금융감독원 설립 작업도 자연 마무리 됐고 이제 공식 출범할 일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98년 말에 금감원 설립 준비 작업이 끝났다고 해서 휴일인 1999년1월1일을 창립 기념일로 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잡은 창립기념일이 99년1월4일 이었다. 현판식 또한 이날 이뤄졌다.
 
그리고 그 후 1년여가 지났을까. 나는 제 2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자격으로 2000년3월 전문성과 도덕성을 기준으로 금융감독원 인사를 다시한번 단행했다. 내손으로 만든 금감원의 수장이 되어 나만의 인사를 하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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