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설립후 영국 금융당국과 교류 추진했으나 금감위 떠나면서 유야무야

내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시절 공들였던 일 중의 하나가 우리 금융감독원의 수준을 선진국 감독기관 레벨로 끌어 올려 국제 기준에 부합토록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외환위기라는 특수 상황을 맞아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그리고 신용관리기금 등 무려 4개나 되는 감독기관을 서둘러 묶어 통합금융감독원을 발족시키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감독체계가 완벽하게 정비됐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조직만 크게 키워놨을 뿐 새 감독제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개편된 것인지, 그리고 우리조직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이며 국제기준에는 부합하는지 등 아직도 검증해야 할 게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감독원 설립과정에서 실무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내가 막상 2000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직접 맡고 보니 금융감독원 완벽화 작업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것 또한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서 내가 고심 끝에 추진한 것이 ‘한-영 금융감독기관장회의’였다. 영국의 선진 금융감독체계를 배우다 보면 우리 금융감독원에 대해 자가진단이 가능해 질 것은 물론 감독기관 수준 또한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물론 미국도 금융감독체계가 잘 발달 돼 있긴 했지만 그곳은 FDIC(예금보험공사)와 정부 은행국이 금융감독업무를 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감독체계와는 다소 성격이 달랐다. 반면 영국의 금융감독기관인 FSA는 우리와 감독체계가 비슷했다. 내가 영국 감독기관과 교류키로 마음먹은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한편 이같은 방침이 정해지자 나는 금융감독원 조사국을 시켜 영국 감독체계에 대한 사전 분석작업에 착수하는 동시에 양국 간 교류방안도 마련토록 했다.

아울러 영국 감독기관인 FSA에는 정례회의를 갖자고 제의 했고 영국 역시 OK였다. 영국 측은 우선 1차 회의는 런던에서 갖자고 했다. 우리 또한 흔쾌히 수용했다. 다만 우리 측에선 ‘In & Out’ 방식으로 양측에서 번갈아 가며 회의를 열자고 했고 이 부분에 대해선 영국 측도 찬성이었다. 이를테면 1차 회의는 영국에서 열고 2차 회의는 한국에서 개최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이렇게 해서 성사된 것이 2000년5월19일 런던에서 열린 ‘제 1차 한-영 금융감독기관장회의’였다.

나와 조사국장 등 우리 측 일행은 2000년5월16일 파리를 경유해 런던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친김에 다음날인 17일 금융감독원 런던사무소 개소식을 가졌다.

그러자 영국 FSA의 하워드 데이비스(Howard Davies)원장도 개소식에 함께 참석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한-영 감독기관장 회의는 이틀 뒤인 19일 열리기로 되어 있었지만 개소식 덕분에 우린 그보다 앞서 서로의 안면을 익힐 수 있었다.

게다가 회의 하루 전인 18일 내가 영란은행 총재를 만나고 나오자 하워드 데이비스 원장은 우리 대표단을 ‘아테나름(Athenarum=영국 명문대 출신만 드나드는 고급 클럽)’에 초청해 만찬까지 베풀어 주었다. 만찬장은 화기애애 했고 이런 분위기는 다음날 FSA에서 열린 양측 공식 대표단 회의로까지 이어져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에 이르렀다.

19일 열린 회의에서 우리 측은 “최근 한국에선 통합 금융감독원을 출범시켰는데 케이스별로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FSA 측에 도움을 요청할테니 이에 응해달라”고 했고 하워드 데이비스 원장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우리 측 대표단이 “앞으로 미국 감독기관과도 협의체제를 유지할 예정이니 FSA도 참가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이에 대해서도 동의 했다. 이른바 ‘한영미 감독기관 회의’로 발전시키는 문제까지 논의가 이뤄졌던 것이다.

19일 오전 회의가 끝나자 나는 곧바로 '제 3의 길‘이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안소니 기덴스(Anthony Giddens)라는 학자를 방문했다. 그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도 가까웠던 분으로 내가 대통령의 안부를 대신 전했더니 무척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이같은 여유로움도 잠시, 나와 하워드 데이비스간의 인연은 안타깝게도 여기가 끝이었다. 주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와대에서 빨리 귀국하라는 전화가 걸려온 온 것이다. 대통령께서 날 급히 찾으신다는 전갈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영국대표단 일행에게 제대로된 밥한끼 대접하지 못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서야 했다. 나만 대접받고 그냥 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다음에 FSA의 하워드 데이비스 일행이 한국을 방문하긴 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를 맞이할 수 없었다. 내가 금융감독위원장직에서 물러나 콜롬비아대학 교환연구원으로 떠난 뒤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뒤에 열린 한-영 감독기관장 회의에선 당초 나와 하워드 데이비스간에 합의했던 방향으로 추진되진 못했다. 내가 금융감독위원장 직에서 중도하차하는 바람에 우리의 약속이 깨졌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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