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도 무척 즐겨 먹는 편, 와인은 비싸다고 다 좋은 것 아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먹고 마시는 문제에 약간 까다로운 편이다. 아마도 일본에서 태어나 전라도에서 자라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두 곳 모두 음식문화가 매우 발달한 곳 아닌가.

 
특히 부모님이 일본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탓인지 나 또한 어린 시절 ‘소바’를 많이 먹으며자랐다. 그래선지 누들 즉, 국수종류라면 비빔국수나 칼국수 짜장면 파스타 등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다. 밥보다 국수를 더 좋아할 정도다. 한국 누들 중엔 잔치국수가 역시 담백하고 일본음식 중엔 소바를 좋아한다. 또 이탈리아 파스타 중에선 링귀니봉골레(Linguine Vongole)라고 하는 조개섞인 파스타를 각별히 즐긴다.  
 
그러다보니 ADB이사 시절엔 이탈리아 출신 이사가 날 볼 때마다 자기보다도 내가 더 이탈리아 음식을 좋아 하는 것 같다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지나간 얘기지만 나는 뉴욕 재무관시절 미국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애호했었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음식은 전식(Appitizer)이니 메인(Main dish)이니 후식(desert)이니 하는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어 좋았다.
 
이탈리아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자고로 왕정이 발달했던 나라에서 훌륭한 음식문화가 꽃피웠던 것 같다. 왕을 잘 섬기기 위한 궁중요리가 발달하면서 그것이 그 나라의 음식문화를 레벨 업 시킬 수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서양에선 이탈리아가 그랬고 프랑스가 그러했다. 동양에선 중국의 음식문화가 잘 발달돼 있다. 이들 나라 모두 왕정이 발달했던 곳들임을 알 수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탈리아 음식은 격식보다는 맛을 중시하는 게 특징이다. 밀가루 하나만 있으면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오만가지 요리를 다 만들어 낼 수 있다. 여기저기 정복전쟁을 벌이면서 익숙해진 음식문화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그리스인들의 먹거리가 로마로 건너가 이탈리아 음식이 됐고 이걸 로마군들이 여기저기 정벌에 나서면서 한 가지씩 퍼뜨리는 바람에 이 나라 음식은 일찌감치 글로벌화가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게 내가 터득한 나름의 음식 역사관이다. 로마인이야기라는 책을 읽어보면 이탈리아인들은 외지를 정복한 뒤 그곳의 자치권은 인정하면서도 가는 데마다 특색에 맞게 정착하곤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런 그들만의 통치스타일이 각각의 특색있는 음식문화를 만들어 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선 왕정이 붕괴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왕실 요리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이곳저곳에 식당을 내면서 음식문화가 발달한 케이스다. 그렇기에 프랑스 음식은 상당한 격식을 차리고 먹어야 하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만드는 음식에 세계인들이 푹 빠져드는 것을 보면 부러워할 만한 음식문화임이 틀림없다.
 
반면 영국과 독일은 왕정과 무관하게 음식 맛이 이탈리아나 프랑스만 못하고 먹거리 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경우도 반도 국가이다 보니 해물 음식이 발달해 한국인 입맛에는 맞지만 유럽 인접 국가들에 비하면 먹거리 문화가 썩 발달했다고는 볼 수 없다.
 
동양의 중국도 유럽의 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에 가면 이것저것 먹거리가 풍성한데 이 또한 왕실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이뤄낸 그들만의 자산이다.
 
게다가 또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각 나라의 술 문화다.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이면 어김없이 술 문화가 함께 성장했다. 서양의 로마가 그랬고 동양의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탈리아나 프랑스 음식을 즐기면서 자연 와인을 좋아하게 됐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최근까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와인을 좋아했지만 해외근무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와인 맛을 잘 알지 못했었다. 또 1988년 뉴욕재무관 근무시절에도 와인을 즐겨 먹긴 했지만 진짜 좋은 와인을 늘 곁에 두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필리핀 ADB근무시절 부터였다.
 
나는 ADB이사 시절 외교관 신분이 되다보니 면세구역을 아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와인 코너가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뉴질랜드 호주산 등 각 나라의 와인이 칸칸이 질서 정연하게 정렬돼 있었고 이들 맛깔스런 와인을 모두 면세가격으로 아주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신이 났고 한편으론 이 기회를 이용하여 각 나라의 와인문화를 정복해 보자는 욕구도 솟아올랐다.
 
이렇게 해서 내친 김에 매일 각 나라의 레드와인 한 병씩을 구입해 맛보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와인에 대한 맛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또 각국의 와인이 다 훌륭했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 와인보다 저렴한 이탈리아 산이 최고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특히 파스타와 함께 마시는 이탈리아와인이 제격이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와인은 포도의 종류가 독특할 뿐더러 프랑스산에 비해 값도 싸고 맛도 좋아 더 많이 찾게 되었다. 나는 이탈리아 와인 중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세(Sangiovese)로 만든 포도주나 피에몬테 지방의 네비올로(Nebbiolo)로 만든 바롤로(Barolo) 와인을 특히 좋아한다.
 
무조건 오래된 와인이라고 해서, 그리고 무조건 비싸고 귀하다고 해서 맛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터득할 수 있었다. 보통 여자들은 달콤한 화이트와인을 좋아하지만 내겐 포도껍질과 씨를 함께 으깨어 숙성시킨 레드와인이 더 어울린다는 사실도 알 게 되었다. 아울러 3~5년 된 와인의 맛이 가장 좋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와인은 맛도 각양각색이었지만 색깔 또한 다양했다. 특히 잔가에 노란색이 감도는 것이 오래된 것이고(full bodied) 맛도 좋으며 비싸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와인은 ‘눈으로 먹고’ ‘코로 먹고’ ‘입으로 먹는다’는 말 뜻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으론 색깔을 즐기고 코로는 향을 느끼며 입으로는 맛을 감지하며 마시는 술이 바로 와인이었던 것이다. 또한 향을 위주로 할 땐 둥그런 잔이 어울리고 혀로 느끼는 와인은 긴 잔에 마셔야 제 맛이 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과의 모임도 갖고 있다. 그것은 직장동료들과 같이 하는 ‘금포모’로서 이들과는 기호와 성격이 잘 맞아 자주 어울리는 편이다.
 
보통 와인을 즐길 때는 요리를 가운데에 둔 채 4개의 잔을 정열 해 놓고 오른쪽부터 마시는 게 순서지만 나는 맨 우측의 샴페인과 두 번째 잔의 화이트와인, 네 번째 잔의 디저트와인보다 세 번째 잔의 레드와인을 주로 마시는 편이다. 나머지 것들은 단 것들이 많아 멀리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레드와인 중 탁하지도 않고 깔끔한 ‘피노 누아(Pinot Noir)’를 즐겨 찾는 편이다.
 
커피도 내가 즐겨 마시는 기호품중 하나다. 커피도 라떼, 카푸치노, 카라멜 마끼아또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에스프레소와 담백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설탕 없이 즐겨 마신다. 특히 커피는 바리스타의 기술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어서 어디서 먹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서울시내에선 P호텔의 것과 L호텔 김캡틴이 만든 것을 즐겨 찾는 편이다. 또 커피숍 커피의 생산지나 브랜드, 그리고 커피 원두를 어떻게 볶고 블랜딩(blending)하느냐에 따라 맛도 천차만별이어서 커피숍을 찾을 때도 특정 두 곳을 자주 이용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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