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제, 한반도 지정학만이 아님을 입증하는 올해 경제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아무리 586 세대의 진보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이들이 어려서부터 갖고 있는 잠재의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들은 1960년대 태어나 1970년대 반공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서울 상공에 민항기가 잘못 들어와 밤하늘에 빗발치듯 쏟아질 때 전쟁이 나면 사람의 심리가 이거 이상 파탄이 날 것임을 깨달았다. 1972년에는 학교에서 나눠준 "한국적 민주주의 이 땅에 뿌리박자"라는 10월 유신 홍보 리본을 달고 다녔다.

글을 배우고 처음 구경하는 1978년 총선이 있던 해, 학교에서 아이들은 온통 무장공비 침투 소문 얘기를 했다. 반공교육 때 배운 이승복 어린이 사건과 흡사한 얘기들이었다.

1980년대 대학생이 됐다. 전두환 살인독재에 맞서는 저항정신은 이들 세대에 20년 가까이 주입된 매카시즘을 씻어내고 진보성향을 또래의 특징으로 채웠다.

하지만 아주 어릴 때 무서운 기억과 함께 주입된 레드컴플렉스를 완전히 털어낼 수는 없다. 성장하면서 이 세상이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한 사진들을 몇 번 봤지만, 충격만큼은 초등학교 어느 날 동사무소 게시판에서 본 것 만한 것이 없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쓰러져있고 짙은 색 군복을 입은 사람이 구둣발로 그의 배를 짓밟고 있었다. 포스터 제목은 "보라 광란의 현장을"이란 큼직한 글씨로 돼 있었다.

쓰러진 사람은 미군 소령이고 짓밟은 사람은 북한군이었다. 바지주머니 근처가 불룩 튀어나온 북한군 특유의 군복은 이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모습이 됐다. 장소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건물 사이 통로였다. 1975년이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직후의 여름이다.

UN측 경비병들이 미군 소령을 구출하는 사진도 실려 있었다. 이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소령은 중태에 빠져 미국으로 후송됐다고 한다. 하지만 남북대치의 살벌함은 학교에서 배운 것 이상이란 느낌이 거세게 밀려왔다.

특히 쓰러진 사람은 미군의 고위 장교였다. 한국인들을 지켜주는 미군의 고위 장교가 이렇게 쓰러질 정도면 한국이 대치하고 있는 북한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란 말인가.

이 게시판을 본 이후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건물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됐다.

이 두려움은 다음해 더욱 확실해졌다.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또 다시 UN군을 공격해 미군장교 두 명이 살해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 판문점을 방문해 기념 서명한 캠프는 이 때 순직한 장교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수대 근무시절 투입된 작전이 미군 장교 살해에 대한 보복으로 충돌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를 제거하고 북한지역 초소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 한 해전 미군 장교가 폭행당한 군사정전위원회 건물 밖에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차단선이 만들어졌다.

이 차단선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성 통역 한 명만을 데리고 김정은 위원장 안내로 북측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함께 남측 지역으로 돌아왔다.

곧 이어 세 나라 정상이 화기애애하게 기자들에 둘러싸여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소에서 어릴 때 상상도 힘들었던 일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만났다. /사진=뉴시스, 노동신문 캡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만났다. /사진=뉴시스, 노동신문 캡쳐.

국내외 전문가들은 새롭게 대화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불확실한 것들이 많다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그래도 한국을 '충돌위험지역'이라고 발목 잡던 1970년대의 두렵던 시절과는 달리 미국 대통령이 홀로 북한 지역에 들어서는 일도 보게 됐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세계 11대, 또는 12대 대국의 수준에 올라서고 나니 한반도 지정학만이 해결과제가 아님이 분명해지고 있다.

올해 국제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가 눈에 띄게 절하되고 있는 원인은 지정학적 요인이 아니다. 한국의 저성장이다.

여기에 이달 들어 새로운 요인이 추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충격은 일본에서 오고 있다.

냉전시대, 한국과 일본은 자의반타의반 동맹이 돼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안보가 걸린 냉전의 대결국면에서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민족감정과 과거사를 양측 모두 뒤로 물려야 했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본격적인 평화대화에 나서게 되자 그동안 한국과 일본 양측의 민족감정을 단속해왔던 끈이 느슨해지는 조짐이 있다. 일본의 부품 보복을 정말 긴 안목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1945년 한국의 해방이 침략에 대한 격퇴가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할 수 없이 신생국 독립을 허용했다는 게 일본 정부의 본심이라면 이번 보복이 단지 선거용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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