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긴장완화와 한일 경제협력의 관계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 세상의 일은 그 일을 하는 주역들조차 깨닫지 못하는 심오한 이유가 따로 있다. 그것을 역사적 배경이라고 한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 제조 핵심제품 수출 규제를 발표한 건 이달 1일이다. 그보다 하루 전인 6월30일에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까지 몇 차례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과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자리였다.

일부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반도 화해 무드에 산통을 깨고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 바로 다음날 무역보복에 나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남의 생각을 내 판단으로 맞다 틀리다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자의 시각에서 그것은 너무 단기 정치공학적 해석이다. 이틀 동안 벌어진 일은 좀 더 큰 역사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 분단돼 한국전쟁까지 겪은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은 일본의 안보이해와 일치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월등히 앞서야 북한의 남침위협을 막아낼 수 있고, 이것은 일본의 공산화도 막을 수 있는 길이었다. 이것이 20세기 후반 냉전시대 극동아시아의 정세였다. 일본 자금의 한국 지원은 이런 공통이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극동아시아의 냉전은 1991년 소련이 붕괴된 후에도 지속됐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 초래한 남북한 분단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정세가 크게 변해 마침내 남북한과 미국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산책하듯 함께 넘나들며 담소를 나누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반도가 화해를 이룬다면, 일본이 굳이 한국 경제를 도와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과 진정한 평화정착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일본으로서는 이런 굵직한 변화가 이뤄지는 마당에 미래에 대한 연구와 대비를 진작부터 하고 있었을 것으로 봐야 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 /사진=뉴시스.

한국인들은 '우리와 함께 싸워 외적을 물리친 혈맹'과 '우리를 침략한 외적' 두 가지를 절대 잊지 않는다.

일본의 강점 직후인 1910년 8월 일본의 관영언론인은 "조선을 통치하는데 제일 곤란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조선역(임진왜란)의 기억이다. 거의 모든 조선인은 이 역을 기억하고 있다. 조선의 모든 지방에는 이 역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석비나 액자, 묘지, 서적 혹은 구전전설 등이 셀 수 없을 만큼 있다. 이 기념물을 하나하나 인멸하려고 해도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는 글을 남겼다.

318년 전에 끝난 7년 침략의 기억이 이런데,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74년 전의 35년 침략 기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침위협은 민족감정을 일시 보류하도록 강요했다. 한국과 일본의 1965년 국교정상화는 이렇게 이뤄졌다.

이 강요된 우호를 먼저 거둬가겠다고 나선 것이 지금의 일본이다. 단지 이번 무역보복뿐만 아니다. 군사정보교류까지 하는 우호국의 해군함정에 대해 초계기가 위협비행까지 했다.

지금 일본 태도는, 1965년 이전의 데면데면한 관계로 돌아가자는 것 이상으로 이 땅에 침략 야욕을 드러내던 130년 전으로 돌아가려는 기색도 보인다.

굳이 이렇게 한일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한반도 화해에 따라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동기는 또 찾을 수 있다.

정말로 북미화해가 이뤄진다면 일본 역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은 북한에 대해 과거침략에 대한 배상 협상도 벌여야 한다. 1965년 당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일본과 수교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지만, 북한은 그런 것도 없다. 북한과의 협상이 상당히 험난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된다. 그럴수록 일본은 한국과의 청구권 협상 등을 실제보다도 작은 규모로 축소하면서 이를 기준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배경들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조치가 단지 21일 선거와 함께 끝나거나, 한국의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성격의 것들이 아님을 지적한다.

선거와 함께 달라질 것들이라면, 한국 관리를 회의실이 아닌 창고 같은 방에서 반팔 와이셔츠 차림으로 맞이한다든가, 일부러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외무장관이 한국대사 말을 끊고 고함을 지르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이런 행태는 다분히 선거용 목적이 담긴 것으로 풀이되지만, 긴 틀에서 봐야 할 것들은 아니다.

사실 지금 일본이 물건을 안 팔겠다는 것을 "팔아야 한다"고 맞받아치기는 명분상의 부담도 있다. 일본이 안 팔겠다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팔아오던 것'을 '일일이 따지며 팔겠다'는 것이다. 통제의 끈을 쥐고 있겠다는 얘기다.

일본은 "한국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행간에 "이제 한국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물건을 팔아서 한국도 돈을 벌고 일본도 돈을 번 것은 북한의 위협을 함께 막자는 것이 일본의 의도였다. 지금 일본의 행태에서 분명해지지만, 과거 잘못을 반성해서 한국에 특히 더 많이 팔아온 것이 아니다.

2년 전만 해도, 일본의 상공으로 북한 미사일이 날아가 기차운행을 정지시키는 호들갑을 떨던 나라다. 그 때는 생각하기도 어려웠던 대화분위기가 이어지는 마당이니 일본이 지금까지 한국을 대했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저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하다. 꼼꼼히 살펴보는 국민성을 가진 일본사람들이라고 하니, 이번 조치 훨씬 전부터 아마 깊이 있는 연구를 해 왔을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남북화해도 이루고 일본과 냉전시대 같은 경제협력도 함께 하는 것은 이치에 비춰봤을 때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핵심소재의 공급다변화와 같은 미시적인 정책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냉전의 최전선에 서 있는 반대급부로 성장을 해왔던 경제구조가 장차 어떤 변화를 해야 할 지, 정파를 초월한 석학들의 연구가 대단히 중요하다.

또 한 가지, 진짜 중요한 것은 외교 갈등에 대처하는 자세다. 외교에서의 명분은 우호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한 쪽이 갖는다. 섣부른 경거망동으로 극단적 조치를 할 일도 아니고, 한일관계의 기본 틀이 변해서 상대는 이제 새 길을 가겠다는데 무조건 예전 모델을 유지하려고 간과 쓸개를 다 내줄 일도 아니다.

사안마다 적절히 대응하되, 함께 일할 용의는 언제든 돼 있다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우리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편하게 해준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