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반도 정세, 진정한 외교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왔던 러시아 TU-95 폭격기의 사진을 찾아보면 옆에 다른 공군기가 붙어있는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영공까지 침범했던 A-50 조기경보통제기와 함께 나타났었다.

두 비행기 가운데 덩치가 훨씬 큰 것이 TU-95다. 대부분의 경우 옆에 있는 다른 비행기는 러시아 공군기가 아니다.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 공군기들인데 하나같이 러시아와 군사적 동맹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나라들이다. 타국의 영공이나 경계구역에 들어갔기 때문에 해당국 공군기가 경계에 나선 장면들이다.

TU-95는 상당히 이색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날개 앞부분에 4개의 프로펠러를 갖고 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이 폭격기는 여전히 프로펠러에 의해 기동력을 얻고 있다. 그만큼 오랜 세월 우수한 성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TU-95 폭격기. /사진=뉴시스.
TU-95 폭격기. /사진=뉴시스.

프로펠러로 거대한 기체를 비행하다보니 단점이라면, 소리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은밀히 타국의 영공을 진입할 비행기가 전혀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지금 뭔가 전할 메시지가 있으니 너희가 알아서 해석하라는 의미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침범하기에는 제격인 비행기다. TU-95는 이런 엄포용뿐만 아니라 실제 러시아 공군작전에도 최근까지 참여했다.

러시아와 다른 나라의 영공침범 시비는 세계 곳곳에서 그칠 날이 없는데, 과문한 탓인지 아직 러시아가 사과했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독도 인근 영공 침범에 대해 국내에서 러시아가 사과를 했느니 안했느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일 경제갈등 속에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에 더해 논쟁을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그런 시간에 지금 동해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외교는 훌륭한 나라나 못난 나라나 공통점이 있다. 많게는 절반 가까이 국내 정치에 대한 의도를 가지고 펼쳐진다는 점이다. 집권정파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훌륭한 나라는 국익의 범위 내에서 집권자가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하는 것이고 못난 나라는 정파 이익이 국익의 저해마저 불사하는 것이다.

대중들의 염원에 반하는 정치공학적 이해가 다분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외교사의 획기적인 큰 업적도 이런 국내정치적 의도와 전혀 무관한 건 거의 없다.

그래서 여기서 외교를 잘 하는 현명한 방법이 나온다.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의 국내 사정을 감안해서 외교에 나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는 이 협상결과를 가지고 자국 내 여론을 달래기 쉬워진다. 그에게 더 많은 타협의 여지가 생기니 나의 이해를 좀 더 많이 관철시킬 수 있게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은 이런 점에서 외교적으로는 하수가 된다. 한국에 대해 전혀 퇴로가 없는 공격을 펼치니 한국으로서는 아베 총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정치권의 분석으로는 선거는 이겼으나 무역보복으로 도움 받은 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일본이 아껴왔던 카드 하나를 써버려 후임 총리들은 다시는 써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외교적 결정권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인사가 사과 발언을 했는데 고위층에서는 이를 부인했다고 한다. 최초 실무급 인사의 발언을 청와대에서 홍보하듯이 공개를 했다가,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그건 아니라고 하자 말을 참고 있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고 있다.

정황으로 봤을 때, 러시아가 책임질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을 통해 한국이 국내정치용으로 쓸 만한 소재를 던진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관계자가 부주의해서 시키지도 않은 발언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러시아 중앙정부는 곧 이어 이것이 역대 유례없는 "러시아의 사과"라는 식으로 간주되는 것은 차단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강대국을 다 상대하는 러시아에게 한국을 상대하는 외교기술의 발휘는 일도 아니다.

러시아가 오로지 한국의 동해가 국정 최고목표가 돼서 국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그 많은 나라들과 굵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그동안 시베리아 동쪽의 극동지역에 대해서는 현상유지만 하면서 유럽과 중동에 우선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 중심의 인도양 안보체제와 타국의 중동정세 개입, 북한의 비핵화, 미국과 북한이 관계 정상화를 하고 난 뒤의 동북아시아 정세 개편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이 지역에서의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봄부터 본지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주요 당국자들의 뉴스를 전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한국에서는 러시아 사과를 받았느냐 말았냐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자신들도 이 지역의 무시해서는 안 될 핵심당사자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외교는 안 통한다

민주주의가 1인 지배체제의 국가에 비해 갖고 있는 커다란 약점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외교다.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의 임기가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을 넘지 못하니 외교가 장기적인 안목을 놓칠 때가 많다. 미국과 영국 등의 강국들은 외교만큼은 초당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는 전통을 갖고 있지만 사실 요즘처럼 대중 인기에 따른 자국우선주의가 넘쳐나는 시기는 이런 확신이 예전만 못하다.

덩치가 작은 나라일수록 외교의 전문적이고 치밀한 구사를 해야 하는데, 취재를 다니다보면 외교일선에서는 전문외교관들과 해당 지역의 전문가들 사이 갈등을 자주 듣는다.

전문외교관들은 자기가 맡아온 특정지역과의 관계만을 중시해 새롭게 떠오르는 주요상대국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외교관 될 때까지만 공부를 열심히 한 탓이다. 지역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어학기술이나 현지인맥에 대한 자부심만 앞세워 구두점 하나로 사실을 정반대로 바꿀 수 있다는 외교 관료들의 전문성을 무시했다가 국가에 낭패를 초래한다.

여기다가 정치적인 편가름까지 가세한다. 엊그제까지 정책을 맡았던 사람들이 재야로 내려오자 시중의 선남선녀 수준에서 외교를 비난한다. 뻔히 사정을 알고도 그런다. 자신들이 정권을 맡았을 때 그런 비난을 들었던 것이 억울해서 이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G20 정상회의 때 회의장을 안 지켰다는 비난이 그런 경우다. 참석한 모든 국가들이 이른바 '사이드라인'에서 어떤 나라들과 개별회담을 갖느냐에 몰두하는데 혼자서 모든 행사를 100% 출석한다고 해서 누가 '모범 G20 참여국가'라는 표창을 주지 않는다. 회의를 관심 갖고 지켜본 시민이 제기할 수는 있는 문제지만, 국정을 맡아본 사람이 덩달아 꺼낼 소리는 아니다. 좋게 봐준다면, 예전에 얼마나 약이 올라서 지금 저러겠나라는 정도다.

지금 한국의 외교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을 주로 상대하다가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지분강화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 행보가 다른 국가들의 더욱 적극적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론을 조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외교만큼은 전문가들의 냉철한 분석에 함부로 순간의 짧은 지식만으로 훼방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전제조건으로 국가는 최소한 외교만큼은 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드림팀'을 전면에 세워야 한다. 예전과 비교해 잘했으니 계속하고 못해서 바꿀 때가 아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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