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산업의 대외의존 초래한 순수과학 부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낮의 여름더위가 쏟아지는데, 3미터는 돼 보이는 듯한 광고인형이 걸어갔다. 이 날씨에 그나마 다행히 사람이 인형털옷을 뒤집어 쓴 건 아니고, 인형을 높이 받쳐 들고 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노동을 할 만한 날씨는 결코 아니었다.

인형을 높이 받쳐 들고 가는 사람을 보고 요즘 젊은이들이 일 안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현실을 개탄했던 것을 잠시 반성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일할 때가 된 아이들이 일을 안 하고 소일하고 있다는 집이 한 두 집이 아니다. 일자리도 부족하지만, 일하려는 의지 자체가 얼마나 되는지를 모를 일이다. 게을러서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일자리가 눈에 안차는 이유도 크다.

대학까지 나온 우리 아이가 아무 일이나 하는 것은 차마 가슴 아파서 못 보겠다는 부모들이 "차라리 내가 더 일하자"며 늦잠 자는 아이 머리맡에 용돈 얼마 주고 집을 나선다.

이유야 어떻든 경제가 이렇게 돌아가서는 높은 국민소득을 올리는 나라가 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소득 3만 달러다. 일하는 사람들이 놀고 있는 사람들 몫까지 떠맡은 이상으로 놀라운 생산성을 발휘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쉬고 있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상의 몫은 해준다면 소득은 얼마나 더 높아졌을까.

한국은 지금 인력수급의 불균형을 빚고 있다.

너도나도 대학을 졸업하면 모든 직업인이 고학력자가 되니 경제가 발전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경제활동 적령인구의 눈높이만 올려놓았다. 한국인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일자리를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식구들을 부양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높은 임금의 좋은 일자리지만,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대졸자가 갈 자리가 아니다.

만약 대학을 안가고 그 자리에 취직을 했으면 4년 동안 승진해서 말단의 노동력을 발휘하는 자리에서는 벗어나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생들의 취업설명회. /사진=뉴시스.
대학생들의 취업설명회. /사진=뉴시스.

4년을 보내는 대학에서 일반적으로 지식인에게 기대하는 지식을 배우고 있느냐도 생각해 볼 문제다.

언젠가부터 대학을 취업양성소로 취급하는 풍조가 심화되고 있다. 대학졸업자가 당장 취직해서 직장에 기여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건 한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당연시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대학의 학문분위기를 직업학교처럼 뜯어고치려는 나라는 별로 없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1, 2학년 때는 고리타분한 고전이나 철학 독서를 많이 읽는 생활이 권장된다. 나이 들어 유명인사가 될 때까지 이런 책 한 번도 읽어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으면 자질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다.

수학이든 철학이든 여기서 이뤄지는 연구로 당장 스마트폰을 만들고 경제정책을 세우지는 못한다. 이들 순수학문이 자기만의 연구를 깊숙이 하다보면 때로는 국가와 사회의 근본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오히려 국가에 대한 신념을 뒤흔드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이들 학문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인 방법론을 활용해 그 해답을 구해감으로써 국가와 사회는 더 큰 정체감을 얻는다. 수학의 연구 성과는 경제적으로 돈 한 푼 벌 수 없지만, 다른 과학들이 이 결과를 가져가 자기 학문에 적용하면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든다. 사람도 많은 나라에서 누군가는 남들이 안하려는 수학, 철학에 정진해 그 나라의 밑바탕을 튼튼하게 해 준 결과다.

유독 한국에서는 인문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을 가르치는 단과대학을 통폐합하는 시도가 벌어지기도 한다. 꽤 유명한 대학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없애려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이런 전공을 하겠다는 학생이 너무 없다. 사람들의 희망 사항이 너무 한쪽으로 집중되는 쏠림현상이 여기서도 심각하다.

컴퓨터 전공 희망자만큼은 아니라도, 인구가 5000만 명인 나라라면 수학, 화학, 물리학을 하고 싶은 특이한 아이들도 어느 정도 비율은 유지하고 있게 마련이다. 쏠림현상이 심한 한국에서는 이 비율 유지가 어렵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다 똑같은 것을 좋아하도록 키운 결과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세계를 평정했다는 한국이지만, 이들 제품의 핵심소재인 화학제품의 수출을 일본이 막겠다고 나서자 산업기반 자체를 흔드는 위협이 됐다.

이름만 '대학'인 부실대학의 문제도 크지만, 이른바 명문대학들은 잘 가르칠 생각보다 이미 많이 배운 아이들을 입학시키는데 더 몰두하고 있다. 지식인의 소양을 갖춘 학생을 가려볼 생각을 하지 않고, 대학이 앞장서 교육현장의 왜곡을 부추긴다.

연 초부터 저성장 문제가 본격화됐는데 일본의 경제도발까지 겹쳤다. 외환시장에서는 원화가치가 올 들어 8.5% 절하됐다. 어쩌면 불가피하게 소득 3만 달러에서 일시적으로 후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할 상황이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소득 1만 달러를 억지로 유지하려다가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를 초래한 적이 있다.

저성장과 일본의 경제도발을 논하는 것과 별도로, 과연 한국이 소득 3만 달러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를 돌이켜 볼 때다.

너도나도 대학을 나와 아무 일자리나 갈 수 없어서 놀고 있는데 산업현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졸업했다는 대학에서도 말이 대학이지, 고등학교 때보다 단편지식을 좀 늘렸을 뿐이고 스스로 사색하고 연구하는 능력은 전혀 없는, 사실은 고등학교 7년 졸업자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서는 소득 3만 달러의 자격을 주장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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