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높아도 사람이 필요없는 시대의 경제성장 방법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정부가 제공하는 '기본 소득'은 '무상 임금'에 해당한다. 국가가 전 국민에게 무조건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거론된 '헬리콥터 머니'와는 다르다. 헬리콥터 머니는 정부가 무기한으로 발행하는 채권을 중앙은행이 사들이니 전 국민에게 골고루 돈을 주는 것과 같다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것뿐이다. 정부가 개인에게 돈을 주는 것과는 실제로 매우 다르다.

기본소득은 이와 달리 정부가 진짜로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월급을 주는 것이다. 잘살고 못살고를 가리지 않는다. 일자리를 찾고 있는 실직자가 아니라도 지급된다.

핀란드는 실제로 2016년부터 2년 동안 2000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매달 560 유로(75만1400원)를 주는 실험을 실시했다.

언뜻 듣기에 복지과잉 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세계 경제가 들어서고 있는 새로운 환경에서 비롯됐다.

생산성이 높아져 경제가 성장기에 접어들더라도 인력이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업자가 늘어나는데, 일 안하는 사람이 돈을 벌지 못하면 모처럼의 성장 동력이 소비부진으로 사라지고 만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미래금융연구 센터장을 맡고 있는 최공필 박사는 22일 초이스경제 주최 세미나에서 장기적인 향후 성장 방안을 제시하면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밝혔다.
 

22일 열린 초이스경제 세미나에서 최공필 박사가 강의하고 있다. /사진=성혜련 기자.
22일 열린 초이스경제 세미나에서 최공필 박사가 강의하고 있다. /사진=성혜련 기자.

최 박사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이제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건 하나 만들지 않는 페이스북이 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하고, 구글은 검색엔진 만으로도 웬만한 재벌 못지않은 사업을 이끌고 있다.

사람들이 관심사를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다.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드러누워서 전화기로 영화와 드라마를 검색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자기 자신은 빈둥거리는 것이지만, 경제전체적으로는 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다.

공유하는 것만으로 부가 되고, 공유사이트에 정보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번창해 더 많은 세금을 내면 국가도 돈을 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기본소득과 연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이나 무상임금이라고 하면, 전통적인 국민의식에서 절대 수용되기 어렵다. '일 안하는 놈은 밥도 주지 말라'는 생활 자세를 수 천 년 유지하고 있는 국민들이다. 다만 지방자치제 이후 몇몇 자치단체장들이 선심성 연금을 간간이 꺼내드는데, 한국에서 정치를 오래 하고도 그런 걸로 당선될 생각을 하는 뇌구조가 별종일 뿐이다.

더구나 기본소득을 줘봐야 외제사치품 사는데 쓰거나 흥청망청 탕진하는 데 쓴다면 국가경제에는 전혀 기대했던 효과가 안 나오고 재정만 축낸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발상은 특히 한국에서는 대단히 깊은 연구와 장기 전망을 거쳐 검토해 볼 일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거론하고 있는 현실은 기본소득에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부가 무상으로 월급을 주는 방법보다 일정한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보상의 방식으로 주는 방법을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다.

퇴근 전이나 퇴근 후 지역의 질서유지 또는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시간당 임금을 주는 것이다. '부업'처럼 뼈 빠지게 열심히 일하는 정도가 아니어도 길지 않은 시간 여가선용의 차원에서 하되, 기본요건만 충족시켜 주는 경우에도 돈을 주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기본 발상은 비록 생산성이 없는 사람이라도 소비능력은 보강해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최공필 박사가 제시한 새로운 경제모델에서는 이 또한 구시대 관념이 담긴 것이다. 세상에 큰 기여를 하든 말든, 뭔가 시킨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보상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강하게 담겨 있다.

새 경제모델에서는 여태 우리가 몰랐던, 이미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행위인데 현재의 보상체계에서 빠져 있는 행위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미 깨끗한 거리에서 청소를 하는 것보다는 콘서트 현장을 찾아가 환호하고 열광하고, 콘서트가 끝난 후 관련 사이트에 사진과 소감을 열심히 올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감, 때로는 논쟁을 벌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지금도 이미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이런 현상이 뚜렷해 질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소비와 공유 행위가 오늘날 검색포털과 사회관계망 분야에서 거대기업을 만들었고 그 이익을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독점이익을 분산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놀이터들이 생겨날 수 있는 소비기반을 만드는 데에 기본임금을 투입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한테도 돈을 주기 보다는, 놀이에 동참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무시무시한 댓글들이 쏟아지는 사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해당 컨텐츠의 산업가치를 높여주는 사람한테는 풍선을 주든, 도토리를 주든 보상을 하는 것이다.

아침에 밥도 안 먹고 드러누워 있지만, 한 손에 전화기를 쥐고 어제 저녁에 본 드라마 사이트의 남녀주인공을 '마구 까고 있는' 이 한심한 행동이 미래에는 돈을 벌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폐인놀이'하는 사람도 알고보니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글을 쓰는 기자에게 "취재를 열심히 해서 다른 기사를 쓰라"고 비판 댓글을 다는 것도 정부의 급여를 받는 미래가 될 수 있다.

최공필 박사는 여기서 중요한 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데서 정부는 이제 뒤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 판단은 민간이 시장 중심으로 하고, 정부는 네트워크를 독점한 사람을 견제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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