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답변 뒷줄의 국장들을 보면 답이 나온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는 뜻이다.

거시경제를 20년 취재해 온 소감으로는 이 말을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좋게 해석하면 분수를 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국정의 두 축은 집권세력 정치인들의 정치와 전문 관료들의 정책이다. 정치가 정책의 방향을 정해주면 정책은 실행을 담당한다.

정치인을 집권 정치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국민들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집권한 사람들이 방향을 정한 것인데, 실무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이 영역까지 넘어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국민의 선택에 따라 집권정치인은 언제든 바뀌게 되어있으니, 정책을 맡은 관료들은 누가 집권하든 그들의 정치에 따른 정책을 잘 펴나갈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 정당 철학이 나와 잘 맞으면 일하고 안 맞으면 아무 일도 안하겠다는 태도로는 공직에서 적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관료들에게는 정책의 기술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이 어떤 방침을 제시하든 그 취지가 옳게 실현될 수 있도록 만사를 살펴야 한다. 여기에는 학문적 이론뿐만 아니라 정책현실에 대한 현명한 판단이 절실하다. 이론만으로 해결이 안되니 경험을 갖춘 관료를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국회에 출석한 경제부처 간부들. /사진=뉴시스.
국회에 출석한 경제부처 간부들. /사진=뉴시스.

나라의 살림을 맡는 경제부처는 국민의 생계도 떠맡고 있는 곳이다. 이들의 기술발휘에 따라 수많은 국민들의 생계가 왔다갔다 한다.

현실적으로는 정치인들의 때로는 뜬구름 잡는 구호보다 관료들이 세세히 마련하는 정책이 국가경제에 더 큰 역할을 한 사례도 많다. 거시경제를 정치인들이 맡기보다 전문 관료에게 맡기기를 선호한 대통령들이 더 많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정치인들이 특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거시정책을 함부로 간섭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런 인사는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문 관료의 장관기용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전문 관료가 장관을 맡아서 실패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정책 오판과 부처 통제 실패다. 정책 오판의 경우는 대부분 정치가 지나치게 간섭을 한 때문일 때가 많다. 이 때는 전문 관료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러나 선배관료이면서도 조직 장악에 실패해 정책도 실패한 경우라면, 이것은 전적으로 장관을 포함한 관료조직의 책임이다. 물론 이렇게 카리스마도 없는 줄 모르고 그 자리에 임명한 정치권에 그 다음 책임이 돌아가기는 한다.

한국 관료사회의 위계서열이 철저하기 이를 데 없는데 어떻게 선배 장관이 조직 장악을 못 하는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장관의 능력에 대해 후배 관료들이 불신할 때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 국내외 경제 상황에 대해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냈거나, 실패가 뻔한 과거 대응방식만을 큰 고민 없이 우기는 장관은 아무리 서기관, 국장 때 존경스러웠던 선배라도 삽시간에 신망을 잃고 만다.

어느 조직이나 새로운 안목으로 무장한 차세대 유망주들이 새 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자부심이 제일 높은 집단인 경제부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조직에서 무지한 장관이 납득 못할 얘기만 반복한다면, 그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냥감 신세나 다를 바 없다.

경제장관이 바로 이런 불우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맡은 일만큼은 빈틈없이 깔끔하게 해결하는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곳이 국회다.

경제부처 장관이 국회에 출석하면 차관뿐만 아니라 국장급 많은 실무자들이 그를 따라 국회회의장에 자리한다. 이들은 장관이 모든 업무를 세밀히 파악할 수 없어 그의 답변을 도와주기 위해 동행한 것이다.

스무 명도 넘는 국회의원들이 하루 일과시간을 모두 소모할 정도로 많은 질문을 던질 동안, 장관 뒷자리의 국장들이 혹시 내 담당 소관이 나오는지 예리하게 대기하던 시절이 있는가하면, '어차피 장관님이 다 알아서 답변하실 텐데'라는 투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시절도 있었다.

700 언저리였던 주가지수를 오늘날의 2000으로 급등시킨 장관 재임기간은 전자에 해당한다. 이 때는 상당수 국장들부터 국제금융시장에 이름이 쟁쟁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국장들의 '머리'가 커도 장관의 카리스마가 넉넉히 이들을 통솔했다.

관료들조차 방만한 조직의 국정감사장 같은 안이한 모습을 보이는 후자의 경우는 부처 안팎의 장관에 대한 평가가 그저 그럴 때 심해진다.

전문 관료로서 실적보다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부임해 오거나 오로지 대통령의 신임만으로 버티는 장관들 시절, 답변장의 모습은 맨 앞줄 장관과 뒷줄의 간부들이 완전히 따로 놀았다. 이런 장관들은 국회의원이 이것저것 물어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덕담만으로 일관했다. 유독 눈에 총기를 띠면서 답변하는 건 대통령에 대한 정치공세가 나왔을 때 뿐이다. 이 질문이나 저 질문이나 뒷자리 실무진이 끼어 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장관이 현안을 잘 몰라서 일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때도 풍경은 비슷하다. 한 나라의 경제관료로서 지금 이런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충정이 간절한데, 부처의 최고위층은 변죽만 울리며 지새고 있다면 관료들은 몸은 있으되 정신은 도망간 날들을 보내게 된다.

'영혼 없는 관료'란 월권을 하지 말라는 것을 약간 좀 과하게 표현한 것뿐이다. 산사람 행세를 하는데 필요한 정신 줄까지 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