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 40번 문제. /사진=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 40번 문제. /사진=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기자는 금융 분야만 취재한 지 20년이다. 그 이전에 2년 동안 은행원 생활도 했었다.

이런 기자가 참으로 좌절스런 뉴스를 접했다.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예년보다는 쉬웠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 수험생들이 치른 문제 하나는 기자의 금융경력과 자부심에 심각한 도전을 던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관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자가 만약 수험생으로서 이 문제를 접했다면 그 순간 평정심을 잃고 제대로 문제를 못 풀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몇몇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은행원과 금융기자 경력을 가진 지금이 아니라 열아홉 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돌아가서 풀 수 있을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사회탐구 영역이 아닌 국어영역임을 강조하며, 문제를 풀 때 순수히 국어의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모르는 단어가 많은 글도 커다란 문맥을 읽어내는 능력을 평가한다는 차원에서는 나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수능 국어시험을 치르는 애들한테 예전 은행 대리승진 시험문제가 튀어나온 거 같은 느낌은 여전하다.

대리승진 시험은 그 시절 은행원들에겐 제법 심각한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이걸 떨어진다고 은행을 나가거나 계급 정년에 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시험에 떨어지면 입행 동기생들과의 평생 경쟁에서 지우기 힘든 족쇄를 차게 됐다. 두 번 이상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의 그 다음 승진 시험 때는 부서 전체가 응원에 나섰다.

이 시험이 얼마나 살벌한지를 보여준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은행원 시절 대리시험을 치열하게 준비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너무나 놀랐다. 노 전 대통령은 "저 정성이면 대리승진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은행을 그만두고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됐다. 송강호가 주연으로 열연한 '변호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기자 또한 대리승진 시험의 살벌함을 과연 나도 맛을 봐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은행을 그만 둔 사람이어서 노 전 대통령의 회상에 충분히 공감한다.

예사롭지 않은 수능 국어시험 문제 때문에 은행 대리승진 시험까지 떠올리게 됐다.

아무튼 요즘 학생들은 BIS라는 말을 들어도 겁을 먹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걸 대학입학시험 문제로 푸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됐다. 이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이미 함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인재들이라는 점을 더욱 절감한다. 정말 후생가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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