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곳곳에서 경쟁자가 동시에 주요고객인 '삼성만의 문제' 직면

한국 기업들에게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이 절실한 것은 기술분야다. 통신과 자동차, 전자 등이 모두 융합된 전문 싱크탱크는 과연 불가능할까. 왼쪽부터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한국 기업들에게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이 절실한 것은 기술분야다. 통신과 자동차, 전자 등이 모두 융합된 전문 싱크탱크는 과연 불가능할까. 왼쪽부터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애플이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보다 더 많은 스마트폰을 팔아 2년 만에 세계 1위가 됐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CNBC에 따르면 애플은 7290만 대의 아이폰을 팔아 7000만 대를 판 삼성을 앞섰다. 애플의 아이폰11이 큰 인기를 얻은 까닭이다. CNBC는 애플이 예상을 넘은 분기실적을 발표했으며 아이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했다고 전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처럼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한 번의 패배를 진지하게 돌이켜보기는 해야겠지만 지나치게 자신감을 잃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애플과 같은 주요 경쟁자에 비해 삼성만이 안고 있는 고유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심층적이고 기술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삼성만이 안고 있는 문제란 최근 포브스에서도 지적한 것이다. 경쟁자들에게는 없는 문제다.

또한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3세 경영 시대에 가장 큰 도전과제 가운데 하나다.

애플과의 경쟁을 예로 든다면, 애플은 오로지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제압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면 된다.

기술력의 우위도 중요하지만, 영업적이나 정치사회적인 배경까지도 동원해 삼성을 제압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팀 쿡 애플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관세를 낮춰달라는 부탁을 할 때 "삼성보다 불리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크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이런 사례다.

경쟁자인 삼성이 불쾌하게 여길 일이 있더라도 그건 애플에게 별로 상관이 없다.

이런 점에서 삼성의 입장은 상당히 다르다. 삼성에 있어서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의 숙적이지만 동시에 메모리 시장에서는 주요 고객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의 생산주문을 받던 삼성이 경쟁자로 둔갑한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 코미디에서 저승사자가 된 잡스가 새로 도착한 영혼들의 전화기가 갤럭시거나 주소가 삼성동인 것만 봐도 격분하는 것은 이런 사실을 풍자한 것이다.

잡스의 분노는 노린 크롤이라고 하는 '불세출의 특허 여전사'를 탄생시켰다. 크롤은 2012년 특허소송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애플의 특허전문가다.

삼성은 이렇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안고 있는 애플을 상대로 메모리를 팔아온 것이니 이 분야 마케팅 담당자들은 참으로 삼성의 기둥과 같은 공신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삼성에게 있어서 적이면서도 손님인 곳은 애플뿐만 아니다.

반도체 전문생산을 뜻하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은 올해 난제가 하나 생겼다. 주요 고객이었던 퀄컴이 삼성에 맡겼던 생산을 다시 대만의 TSMC에게 넘겼다.

퀄컴이 이런 선택을 한 건 삼성의 모바일 프로세서 엑시노스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프로세서 시장에서 3위인 삼성이 1위 퀄컴과 2위 미디어텍을 따라잡으려고 나선 것이 파운드리 시장의 주요 고객인 퀄컴으로부터 경계감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애플이나 프로세서 제조사 퀄컴, 파운드리 1위 TSMC 등 경쟁자들은 모두 자기가 하던 일 하나에만 집중하면 된다. 속된 표현으로, 상대를 이기기 위해 팔을 비틀든 물어뜯든 이길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삼성은 이럴 수 없는 입장이다. 이 쪽 시장에서 상대를 심하게 괴롭혔다가 또 다른 시장의 큰 손 고객을 놓치는 상황이 사방에 널려 있다.

잘 하면 '일석이조'요 '일타양피'지만 잘못하면 '진퇴양난'이다.

모든 분야에서 상대를 압도하면 된다는 '도덕책' 해법은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 개미가 노력하는 동안 놀기만 하는 베짱이는 없다.

새로운 영어단어인 'chaebol(재벌)'로 표현되는 한국 대기업들의 다방면 사업 영위에 따른 현상이기도 한데, 이제 와서 무조건 하나 빼고 다른 모든 사업을 매각하라고만 할 수도 없다.

갑자기 팔기도 어렵지만, 오히려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산업사회에서는 정보와 첨단기술, 제조업이 하나로 융합된 체제의 필요성도 존재한다. 하나에 전념하기 힘드는 현재의 체제라고 해서 굳이 포기하고 해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해체했다가 멀지 않은 훗날 다시 합쳐질 필요성이 생기면 그 때가서는 주인도 다른 재벌사들끼리 공동 싱크탱크라도 만들 것인가.

이병철 창업주나 이건희 회장 시대에는 별로 의식할 필요가 없던 문제가 삼성의 3세 경영시대에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하는 일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주목하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짊어진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대해 그룹 내 출중한 인재들이 길게 미래를 내다보는 치밀한 연구를 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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