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부'와 달리 정말 새벽까지 먹고 마셨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1973년 4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한 영화는 불후의 명작 '대부'다. 이 영화는 작품상과 함께 말론 브란도의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함께 받았다. 말론 브란도가 미국 원주민 인디언에 대한 차별을 항의하며 남우주연상 수상거부 소감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색상은 이번 92회 시상식에서 '조조 래빗'이 받은 것이다. 각색상을 받았다는 건 원작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만든 이 영화의 원작은 마리오 푸조가 1969년 같은 이름으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 내용에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등장한다. 영화는 아카데미 관계자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을 전혀 담지 않았다.

영화와 달리 소설에는 가수 겸 배우 조니 폰테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 첫 장면, 대부의 딸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대부에게 배역을 못 받게 될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리다 꾸중을 듣는 바로 그 인물이다.

소설에서는 대부의 압력으로 배역을 받아내고 또 대부의 영향력으로 아카데미상도 받는다. 시상식 후 파티에서 그는 만취한 채 영화관계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마치 관행인 듯, 사람들은 인사불성인 남녀주연상 커플이 그들 앞에서 공개 성행위 하는 것을 기다렸지만, 폰테인의 오랜 세월 지기가 뛰어 들어와 그를 들쳐 업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폰테인과 달리 무명의 음악고수인 친구는 '만약 이런 것이 유명해지는 것이라면 나는 거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40년대 후반 시상식이 이랬는지는 몰라도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실제로 보여준 '뒷풀이'는 전혀 달랐다.

미국 음식전문매체 이터닷컴 LA판의 보도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 소감에서 밝힌대로 정말로 새벽까지 마셨다. 정확히는 엄청나게 먹고 마셨다.

이터닷컴은 "LA 한인타운 음식점 '소반'에서 새벽 2시45분부터 새벽5시까지 파티가 열렸다"며 30석 음식점에 50명에 이르는 관계자들이 북적거렸다고 전했다.

음식점 주인 제니퍼 박은 이터닷컴을 통해 봉 감독이 하루 종일 거의 굶은 상태였다며 이 곳에서 갈비찜, 은대구 조림, 갈비, 비빔밥, 해산물 두부전 등을 먹어치웠다고 밝혔다.

'기생충'의 남자주인공 송강호와 조여정의 생일축하 파티도 열렸다.

이터닷컴이 인용한 LA타임스에 따르면, 이미 시상식 직후 주지사 주최 파티에서 생선회, 크랩 에그, 보바 파르페 등이 나온 후였다.

'기생충'이 남녀주연상과 무관해서 이렇게 건전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현장 분위기였다. 소설 '대부'에 나온 상황 자체가 50년도 훨씬 지난 예전의 일이다.

올해 남우주연상을 받은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는 수상소감에서 깨어있는 현대시민 의식을 과시했다. 채식주의자인 피닉스는 "우리는 소를 인공 임신시켜서 얻은 새끼를 빼앗아 간다"며 "소가 분노에 울부짖는 동안 새끼들을 먹여야 할 우유도 뺏어가 우리의 커피와 시리얼에 넣는다"고 질타했다.

이와 같은 진보성향을 드러낸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호매체로 보수성향을 가진 뉴욕포스트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뉴욕포스트는 피닉스뿐만 아니라 남우조연상 브래드 피트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피트는 "나에게 주어진 45초의 발언시간은 이번주 상원이 존 볼튼에게 전혀 주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회의 탄핵재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볼튼의 증언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꼬집었다.

뉴욕포스트는 불쾌한 미국배우들 발언보다 봉준호 감독의 한국어 소감에 훨씬 더 호감과 감동을 받았다.

이 신문은 "수상자가 경쟁자들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지만, 패자에게 기쁨의 눈물까지 흘리게 만든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봉 감독이 경쟁자 마틴 스코세지 감독에게 한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격찬했다. 봉 감독이 수상소감에서 스코세지 감독의 명언을 소개하며 그에 대한 청중의 기립박수를 유도한 것을 이처럼 평가했다.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각별한 경의를 표하자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답례하고 있다. /ABC 유튜브 화면캡쳐.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각별한 경의를 표하자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답례하고 있다. /ABC 유튜브 화면캡쳐.

뉴욕포스트는 '기생충'의 작품상 소감도 "역사적"이었다고 전하고 "솔직한 감사함과 환희의 세례는 정신을 놓은 호아킨 피닉스가 말 못하는 암소의 억울함에 대해 부랑자처럼 횡설수설하는 것과 비교됐다"고 주장했다.

앞선 1월에 열린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는 사회를 본 리키 제바이스가 수상자들에게 "당신들 그레타 툰베리보다 학교도 덜 다녔으니 불필요한 얘기 하지 말고 '감사하다'는 말만 하고 돌아가라"고 촌평했던 터다.

그러나 호아킨 피닉스로선 47년 전 그 자리에 나섰던 말론 브란도를 비롯한 앞선 이들의 자취를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미국 언론들이 극찬하는 기생충은 한국 증시에서도 연일 '테마'를 형성해 주목받고 있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