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금리 정상화' 없었으면 '긴급 금통위'는 아예 존재 불가능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가 2014년 퇴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가 2014년 퇴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는 재임 때나 퇴임 후나 한국은행 직원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

그의 몇 가지 인사방침은 한은 직원들이 오랜 세월 신뢰했던 원칙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그는 때로는 직원들의 게시판을 뒤지는 행위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은 내부의 일이다.

국민과 시장의 투자자들은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 직원들을 얼마나 잘 보살피는 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얼마나 중앙은행 본분인 통화정책을 잘 하고 시장의 안전장치를 보호하느냐가 절대적인 관심사다. 물론 그걸 잘 하면서 직원관리도 함께 잘 해야 좋은 총재다.

김 전 총재는 역대 최고 한국은행 총재로 손색이 없는 고 전철환 총재와 비교하면 너무나 많은 시비거리를 달고 있다. 1998~2002년 재임한 전 총재는 제대로 된 통화정책을 한국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시작한 인물이며 국채시장 탄생의 대부이기도 하다. 재임 중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시장친화정책은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투자자들의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만들었다. 이런 정책업적뿐만 아니라 털끝의 의혹도 남기지 않는 처신으로 공직자의 귀감이 됐다.

그러나 김 총재가 전철환 총재에 못 미친다해서 그가 다른 모든 역대 총재들보다 못한 최악이란 의미는 아니다. 김 전 총재보다 더 실망스럽던 사람들을 찾아내는 건 정말 분초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한은 직원이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다.

통화정책에 대해서라면 김중수 전 총재는 가십거리 기사에서의 시비 차원을 넘는 좀 더 깊숙한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에 관한 한, 김 전 총재는 'MB의 실수'라는 평도 들을 수 있다. 중국 스마트폰 샤오미의 우수한 품질로 인해 그 때까지 중국산 제품의 이미지를 바꿨다는 점에서 '대륙의 실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임 때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의 친분에 따른 인사란 시비가 있었지만, 그는 재임 4년 내내 끊임없는 정부와의 갈등 속에 독자적 통화정책을 고수했다.

지금도 김 전 총재가 게시판을 뒤지고 이상한 인사원칙을 강조했던 것에 앙금이 남아있는 일부 한국은행 사람들은 "그가 뭘 잘했느냐"고 반발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렇다면 그가 퇴임한 뒤 당신들은 무얼 얼마나 잘했나"고 반문할 필요가 있다.

김중수 전 총재의 업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현재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금융시장 붕괴에 대비해 한국은행이 긴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 여부를 검토한다는 사실 자체다.

긴급 금통위 회의라면 이른바 '전격 금리인하'를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한국은행에는 기준금리를 내릴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금리를 내릴 여력은 전적으로 김중수 전 총재가 오늘날까지 남기고 있는 그의 자취다.

그가 2010년 취임할 때는 2008년 금융위기 여파가 아직 남아있을 때다. 기준금리는 당시로서 사상 최저인 2.00%로 내려가 있었다.

김 전 총재는 취임과 함께 '금리 정상화'를 강조하며 꾸준히 금리를 올려갔다. 2011년 6월에는 3.25%까지 올렸다. 1년 넘는 기간에 1.25%포인트 올린 것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와 같은 금융대국 중앙은행으로서는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한국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전통적으로 금리를 내리기는 쉽고 올리기 어려운 한국이고, 특히 당시는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중앙은행에 대놓고 금리인하를 강요하는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Fed가 미쳤다"는 폭언은 아니었고 "금통위원들은 시장에 좀 가봤으면 좋겠다"는 식의 간섭이었다. 이런 처지에 금리를 다섯 번 아니라 한 번이라도 올리려면 한은 총재는 폐침망식하고 유관기관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러 다녀야 한다.

4년 임기의 후반이 되면서 그의 장악력은 저하되는데, 정부의 인하 압력은 지칠 줄을 모르니 김 전 총재의 금리정상화도 후퇴를 거듭해 그는 2.50%의 기준금리를 남겨놓고 퇴임했다. 당시 미국은 0.00~0.25%의 제로금리를 하고 있을 때다.

그러나 김중수 전 총재가 3.25%로 기준금리를 높여놓은 덕택에 이 정책 여력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의 세 정부가 금낭 속의 보물처럼 쓰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퇴임 때 2.5% 가운데 1%포인트가 '빚내서 집 사라' 정책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그가 물러난 후인 2014년 8월~2016년 6월의 금리인하 남발이 조금만 더 조심스러웠더라도 지금의 한국은행은 훨씬 더 강력한 코로나19 대응능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12일(유럽시간) 정책회의가 보여준 모습이 이런 아쉬움을 다시 일깨운다.

ECB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충격을 막기 위해 양적완화 확대와 같은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예상했던 금리인하는 하지 못했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가 0.5%포인트까지 0 아래로 내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책여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Fed가 마이너스 금리만큼은 넘보지 않은 가운데 2015년 12월부터 다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는데도 ECB는 금리정상화를 하지 못했다. 그것이 12일의 회의결과였고 직후 전 세계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제 와서 물러난 전 한은 총재가 누구보다 낫고 누구보다 못하다는 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을 비롯한 거시경제 당국이 정책여력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앙은행 정책의 파급력은 5년, 10년 후까지 이어진다. 순간의 정권 입맛에 영합해 멋대로 발권력을 휘두르는 일 만큼은 한국은행 총재가 자리를 걸고 막아야 한다. 김중수 전 총재는 그런 사명은 수행을 한 사람이다. 다른 총재들과 비교하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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