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과 미국의 방위비 분담협상이 성과를 내는 듯하더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문을 넘지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국내 분위기는 실망보다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복잡한 국정을 대단히 단순한 어휘로 바꿔서 매우 강한 어조로 미국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주로 그의 트위터를 통해 전달되는 국정메시지에서 주어는 "미국"이 아니라 "나"다. 모든 중요한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으로 정해진다.

그가 중국과의 무역 갈등에서 강경책과 온건책을 바꿔 쓸 때마다 "나는 중국에 관세를 부과했다" "나는 멋진 친구인 시진핑 주석과 합의했다"는 문장으로 표현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 뉴시스.

국가나 정부와 같은 무생물적 존재보다 사람을 주어로 하면 그 문장은 훨씬 더 큰 힘을 갖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을 정치에 뛰어들기 전 기업인시절에 이미 터득한 듯하다.

최근 진행 중인 국제유가 논쟁은 그의 이런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러시아의 지난 3월 감산확대 거부, 그에 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발표로 국제유가가 폭락하자 그는 두 산유국 정상과 연이어 통화를 하며 감산협상을 재개하도록 설득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해 일평균 1000만 배럴 감산에 겨우 합의했는데 이번에는 멕시코의 동참거부라는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것은 '오로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게 한다'는 그의 방침을 가장 크게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에게 감산이 힘든 부분을 미국이 대신 책임지겠다고 제안하며 돌파구를 제공한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나 멕시코의 감산 동참에서 공통적인 것은 해결책이나 돌파구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잘되고 있는 협상도 트럼프 대통령이 간여할 여지가 없다면 타결도 없다고 봐야 되는 것이 최근 몇 년 동안의 일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남이 보기에 어떻든 자신만의 논리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펼친다.

지금 국제유가 논쟁이 큰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것은 미국의 동참이 전혀 진전된 것이 없어서다.

감산 합의가 국제유가를 띄우지 못한 것은 멕시코 때문이 아니다. 멕시코가 거부를 밝히기 전에 감산이 1000만 달러에 그친다는 소식에 국제유가는 회의 전의 폭등세를 모두 잃고 있었다.

러시아가 미국도 감산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미국 에너지부는 성명서에서 "이미 석유기업들이 생산을 줄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미국의 설명은 국제유가가 다시 올라 많이 수익성이 호전되면 다시 생산을 늘릴 것이란 행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을 못 알아챌 러시아 관리들이 아니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수요가 없어 생산을 안하는 것과 합의에 따라 생산을 줄이는 것은 개념부터 다른 것"이라고 일축했다.

사실 러시아 고위관리가 아닌 일반인의 상식에 따른 반박도 예상가능한 일이지만, 어떻든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는 일단 강한 어조로 들이댄다.

미국이 멕시코의 감산 할당 40만 배럴 가운데 25만 배럴을 대신하는 것을 러시아의 감산동참 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포장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러시아가 미국, 캐나다 등 서방국가에 요구하는 별도 감산 규모가 500만 배럴로 숫자 차이가 너무나 크다.

그러나 아무리 숫자의 차원이 달라도 '트럼프 스타일'은 협상에서 얼마든지 밀어붙이는 카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석유기업이나 텍사스와 같은 석유생산 주들이 산유국 협상에 개별적으로 참석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만약 이런 방식으로 해서 미국의 실질적인 감산 동참이 이뤄졌을 때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가만있을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자신의 이름이 결부되지 않은 감산이라면, 이에 동참한 미국의 주정부나 기업에 "가격 담합을 했다"며 응징의 철퇴를 휘두를 소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랜 세월 '기름 값은 쌀수록 좋다'는 철학과 함께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가격담합 기구"로 여기는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어찌됐든, 국제유가 전쟁이 종결되려면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통해 참여해야 되는 것이다.

다자간 협상인 국제유가 논쟁이 이와 같은데 양자협상인 한미방위비 분담은 더 말할 것이 없다.

협상이 현재의 난관을 넘어서려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한 것이 필요해 보인다.

아마 그가 통치하는 기간 모든 미국과의 협상이 이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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