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이익을 놓고 서로 손익을 경합하는 관계이긴 하지만 이들에게도 공동의 적이 있다. 불확실성이다.

지금과 같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마이너스 국제유가 등 엄청난 불확실성이 짓누르는 시장에서 그나마 정부가 확고한 정책의지를 보여준다면 투자자들에게는 한 가닥 위로가 된다.

이런 금융시장에서 개헌은 엄청난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래도 금융역시 국가가 먼저 있고나서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에 꼭 필요한 개헌을 투자자들 이익 때문에 안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반드시 고쳐야 할 헌법이라면 그걸 고치지 않았을 때 불확실성이 가중된다. 이런 때는 개헌이 오히려 시장의 긍정요인이 될 수 있다.

반드시 고쳐야 할 헌법이란 판단은 오로지 국민 절대다수의 동의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불필요한 개헌 논란으로 국력을 소진할 이유가 없다"며 극히 일부의 개헌 주장에 못을 박았다.

매우 당연한 발언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잘했다 못했다를 평할 여지도 없다. 다만 정치에서는 대단히 당연한 일도 때에 맞춰 강조를 하는 것이 정치의 안정과 효율을 높여주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분명히 호평할 가치가 있는 거대 집권당 지도부의 발언이다.

더욱이, 퇴임을 눈앞에 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줄곧 2004년 열린우리당 과반수 시절의 오류를 반복하지 말자고 강조하는 마당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이인영 원내대표의 3일 발언이 더욱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한다.

차제에 개헌은 절대로 국회 의석수를 갖고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어느 당이 의석 몇 석을 더 얻었다고 해서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도 심하게 정치에 정신이 팔리다가 잠시 우쭐할 때를 맞이하면 이러한 민주주의 기본정신을 망각하고 선동적 개헌론을 부추길 때가 있어서 하는 얘기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헌법재판소 상징. /사진=뉴시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헌법재판소 상징. /사진=뉴시스.

헌법에서는 국회의원들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을 몇 가지 규정하고 있다. 개헌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국회의원 제명이 개헌처럼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의회 3분의 2 이상을 요구하는 헌법 조항들의 현실적 의미는 그만한 수의 의원을 모으라는 것이 아니다. 의회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이 나올만한 일들은 사실 국민들 가운데 최소 80%가 찬성하고 있으며 의회의 찬성의원 비율은 그보다도 더 높은 압도적, 절대 다수일 때다. 3분의 2 규정은 국민 절대 다수의 동의를 확신할 때 나서라는 도리를 법조문의 형태로 옮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석 3분의2를 무조건 절대다수의 민심으로 여기는 것은 금물이다. 극히 일시적인 정치공학적 사유로 민심과 의석수가 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사례가 2004년 3월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다. 선거가 불과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야당이 일시적 수의 우세에 편승해 탄핵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은 탄핵대로 실패하고 이어지는 총선에서 49석에 불과했던 집권당 의석을 151석 과반수로 급증시키는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정치는 현재 의석이라는 현상보다 민심이라는 본질을 늘 명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사례다.

1979년의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도 '3분의 2' 숫자 놀이에만 집착한 정치폭거이며 자충수다. 이 때 국회의원 3분의1을 차지한 유신정우회는 선거가 아니라 대통령 임명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다. 공화당과 유정회는 숫자 우세에다 회의장을 바꿔치는 날치기를 더해 제1야당 총재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이로부터 22일 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됐고 유신정권이 종식됐다.

역시 국회의원 3분의2 이상 동의가 필요한 개헌도 민심이라는 본질보다 의석수만 믿고 밀어붙였다가 헌정사를 크게 어지럽힌 많은 사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민심을 거스른 숫자의 우세는 오히려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1954년의 2차 개헌, 즉 '사사오입' 개헌은 민주사회 기본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반올림 논리를 동원해 이승만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6년 후 4.19 혁명으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몰락했다.

그 후 1969년의 3선 개헌이 또 다시 숫자논리에만 집착한 개헌이 됐다. 1960년대 경제성장을 이끈 박정희의 제3공화국은 이를 계기로 1972년 국회해산과 계엄령을 통한 유신개헌으로 1979년의 비극을 자초했다.

현재의 헌법은 1987년 개정돼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33년 동안 개정 없이 유지돼 온 것은 앞선 다른 헌법들과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현행헌법 다음으로 가장 오래 유지됐던 것은 유신헌법의 7년10개월이다.

지금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에 전두환의 군사독재정권이 굴복하면서 마련됐다. 5공의 의정도구 역할을 했던 민주정의당마저 새로운 헌정질서에 동의해 여야 합의로 새 헌법 마련에 나섰다.

아주 작은 소란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헌 논의에 소외된 소수야당들이 회의장에 난입하는 일이 한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정해진 회의를 하루 늦출 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난입했던 의원 중 일부는 독재정권의 사주를 받아 야당 내에서 대통령직선제 투쟁에 균열을 냈다는 의혹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당연히 국민들의 지지를 전혀 못 받았다.

1960년의 개헌 이후 처음으로 아무런 국론분열 없이 마련된 것이 지금의 헌법이다. 그 덕택에 수많은 오점이 가득했던 헌정사를 뒤로 하고 33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헌법은 무조건 조항을 만들어 넣는다고 해서 헌법적 권위를 갖지 못한다. 헌법의 조항은 헌법정신에 부합해야만 헌법의 힘을 가질 수 있다. 헌법정신에 위배된 조항은 그것이 명문헌법에 포함돼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정을 받게 돼 있다. 설령 헌법심판 기능이 마비된다 해도 더 큰 심판인 국민의 저항권을 거스르지 못한다.

헌법은 명문화된 조항보다 헌법정신이 더 큰 지배력을 갖는다. 바로 이점이 명문 헌법이 없는 영국에서도 헌법재판소를 통해 위헌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이유다.

헌법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교양상식만 갖추고 있어도 의석수가 어떻게 됐다 해서 개헌을 입에 담는 경거망동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현재는 그 어느 정당도 의석수 3분의 2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 살아있는 역사책이기도 하다. 지금의 헌법이 마련되기 직전 겨울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서울대생 박종철, 그해 여름 교문 앞 아스팔트에 한 가닥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연세대생 이한열 등 순국자들의 희생이 계기가 돼 군사 통치를 종식했다. 현행헌법은 그런 역사를 담고 있다. 여기서 비롯되는 국민적 통합과 신뢰의 힘은 선지자인척 하는 사람들의 얇은 지식으로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거대 양당은 여야 할 것 없이 수많은 국회의원들의 교체를 겪게 됐다. 새롭고 참신한 인물의 등원이란 긍정적 기대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충정을 담은 우려도 있다.

의정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이름부터 띄워보려고 무분별한 얘기들을 쏟아내는 사례가 빈발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모두 불안정요인이다.

개원도 하기 전인데 이미 한바탕 소동을 벌인 당선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개헌뿐만 아니라 북한 관련해서도 근거도 알 수 없는 주장을 쏟아냈다. 이때마다 특히 금융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투자자들을 위로는 못해 줄망정, 국민 덕택에 국회의원된 사람들이 이게 할 도리인가.

양당 지도부는 당분간 정말 근심이 깊은 날들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근심만 할 것이 아니다. 이런 소동이 있더라도 당 내부에만 그치고 국민에게는 전달이 안 되도록 단속을 해야 한다. 해도해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별하는 것이 그나마 당은 살리는 길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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