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은행 "올해 성장률 300년 만의 최악" 전망은 예사롭지 않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지난주 영국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이색적인 뉴스를 하나 내놓았다.

BoE는 지난 7일 통화정책위원회(MPC) 회의에서 기존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14%로 예상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이같은 발표를 BoE가 공개하고 있는 역대성장률 기록과 비교했다. BBC에 따르면 마이너스 14% 성장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이는 영국 국가통계국의 국내총생산(GDP) 집계가 시작된 1949년 이후 최저다.

이번 보도를 통해 알게 된 것은 BoE가 공식 집계 말고도 그 이전 시대의 성장률도 재구성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1700년부터 성장률이 기록돼 있다. 다만 이것은 공식 통계집계라기보다는 연구목적의 추정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18세기 이후 모든 기록과 비교하니 마이너스 14%는 1706년 이후 최악의 성장률로 요약됐다.

말하자면 BoE는 아직도 8개월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올해 전체에 대해 "최근 314년 동안 최악의 경제성장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 된다.

한국에서는 중앙은행이나 정부부처, 공공기관이 선뜻 이런 분석을 공개하기는 쉽지 않다. "근거도 불분명한 자극적 발언으로 불안만 조성한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300년은 커녕 "최근 10년 동안 가장 부진할 것"이란 발언도 '자리를 걸고' 해야 하는 그런 풍토가 오래전부터 뿌리박고 있다.

1706년이면 한국에서는 조선왕조 숙종 32년이다. 요즘도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은 지 5년 후다.

숙종대왕 어진의 모사본. /사진=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숙종대왕 어진의 모사본. /사진=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한국 풍토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나 한국은행 조사 자료가 "조선 숙종 이후 올해 경제가 제일 안 좋다"고 말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힘들다.

영국에서는 중앙은행이 이렇게 올해 암담한 경제전망을 했는데도 신문 제목에서 누군가에게 날 선 비판하는 분위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다음 달부터 버스노선이 바뀐다"는 소식을 접할 때 반응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괜히 기분 나쁜 소리를 한다"는 반응은 더욱 드물다.

이런 덤덤함은 아주 낯설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덩케르크에서 궤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극적인 탈출을 했다. 이 병력을 보전함으로써 영국은 반격의 희망을 남겨둘 수 있었다.

상당히 기적적인 성과를 얻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반응은 오히려 냉정했다.

"전쟁은 철수하는 것으로 이길 수 없다."

처칠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이 '김 새기' 목적으로 할 법한 말을 정권의 최고위층이 먼저 꺼냈다.

이런 전통의 나라는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 때도 아르헨티나 군의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에 많은 피해를 입는 사실을 굳이 가리지 않았다.

공식통계도 남아있지 않은 300년 전 역사까지 비교하며 나쁜 경제성적을 서슴없이 공개하는 이런 체질을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았다. 굵직한 전쟁마다 승리한 강한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한다.

영국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나폴레옹을 트라팔가 해전과 워털루 전투에서의 승리로 유럽에서 추방하는 등 역사의 수많은 고비에서 승리를 거뒀다. 영국이 패배한 사례라면 미국 독립전쟁 말고 달리 찾기 어렵다.

국민들이 국가의 승리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일시적으로 불안한 정보역시 충분히 받아들이는 강인함을 갖게 된다.

요즘 케이블TV에서는 1985년에 제작된 드라마 임진왜란을 다시하고 있다. 전쟁 발발 직전, 조선이 일본의 침략의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조정은 이를 감추는 선택을 했다. 이는 앞선 칼럼 '임진왜란 김성일의 오판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언급했다.

이같은 결정을 주장했던 일부 대신 역시 본심은 혼란부터 막자는 충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따져본다면, 불가피한 혼란은 전쟁이 나기 전에 미리 겪도록 했어야 한다는 매우 큰 아쉬움을 남긴다.

조선 백성들은 전쟁을 까맣게 모르다가 왜적의 침략을 받고 나니 매우 혼란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강한 애국심으로 뭉쳐서 전국 곳곳에서 의병으로 궐기했다. 이러한 조선백성들의 심성을 조정이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백성들이 그대로 감내하게 만들었다.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금까지 방역이 호평을 받는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의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국민들 본연의 극복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염병 방역에 성공한다면 이는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 승리의 믿음을 갖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국민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정확한 정보를 차분히 받아들이며 깊은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전염병 방역뿐만 아니다. 경제침체와 기업의 실적부진 등 주의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갖고 있는 정보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하는 것이 최선의 대비에 나서는 첫 걸음이다.

영화 '대부'에서 로버트 듀발의 "대부께서는 나쁜 소식일수록 빨리 듣기를 원하십니다"라는 대사는 개인이나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매우 교훈이 가득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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