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올리라"는 전혀 없고 "내리라"는 주장만...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통화정책을 철저히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은 정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경계해야 할 유혹 가운데 하나는 실제로 경제가 좋아지지도 않았는데 경제성장률이나 국민소득 같은 숫자만 좋게 나타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중앙은행을 강요해서 돈을 마구 발행하는 것, 즉 금리인하다.

별로 돈이 쓰일 곳도 없는데 화폐발행만 남발하면 일단 사람들은 수중이 돈이 넘쳐나니 뒷날 생각안하고 여기저기 써댄다. 기업은 안 해도 될 사업을 벌인다.

하지만 이런 무책임한 화폐남발은 물가폭등과 화폐가치의 폭락(한국에는 원화환율 폭등을 의미)을 가져오고 곧 모래밭에 세운 호화궁궐들은 가벼운 파도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정부의 금리간섭을 철저히 물리쳐야 한다.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 중요한 중앙은행 독립 원칙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에 폭언을 구사하며 금리인하를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이 지난 3월부터 다시 제로금리로 돌아간 것을 트럼프 대통령 간섭을 못 견딘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3월중의 1.5%포인트 인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Fed 자체의 판단이었다.

지난해 세 차례 인하한 것도 본질적으로는 Fed 자체의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Fed에 대해 "미쳐가고 있다"며 폭언을 하고 제롬 파월 Fed 의장을 해임 또는 강등시키겠다고 위협했지만 이 때문에 FOMC 결정이 바뀌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만한 권한도 없다. 다만 그가 중국에 대한 관세 공격을 퍼부어 세계 교역이 위축되고 미국 경기가 침체된 것이 Fed의 금리인하를 초래한 점은 있다.

제대로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라면 정부가 중앙은행에 금리를 내리라고 간섭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이라고 해서 탁월한 식견을 가진 외부전문가들의 고견까지 모두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국책기관이 한국은행에 대해 큰 폭의 금리인하를 요구했다.

이 기관에 대단히 탁월한 학자들이 모여 있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들의 금리인하 요구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금융통화위원들이 상당히 의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 십 년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국책기관들의 금리인하 요구는 늘 한은에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기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한국은행 기사를 쓴 20년 동안 국책기관이 금리인상을 요구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늘 금리 인하다.

20년 세월 동안 한국 경제가 몇 차례 성장기를 거친 적이 있다. 그 때 국책기관에서 금리인상의 논의 공간을 먼저 마련해 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무분별한 대출정책으로 경제에 두고두고 큰 주름을 남기던 시기에는 더더욱 용감하게 그런 행태를 그치라고 나서는 국책기관을 보지 못했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내리기는 쉽고 올리기는 어렵다는 '상방경직성'을 국책기관들의 통화정책 보고서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올릴 수만 있다면, 내려야 할 때 지체 없이 즉각 내려서 실물경제에 도움을 줘야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올려야 할 때 올리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로 인해, 정부와 한 다리 건너 두 다리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금리인하 요구라면 무조건 평가절하돼 왔다.

이번 보고서의 금리인하 요구가 담고 있는 '충정'은 충분히 알고도 남을 일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전례 없는 경제충격을 받고 있다. 대응 역시 전례 없는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이미 사상 최저인 0.75%의 금리를 특정 숫자에 얽매이지 말고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책기관 보고서라는 이유로 시장참가자들이 그 의미를 크게 축소시키는 것 또한 그 사람들 입장에서 당연한 현실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해당 국책기관의 선배들이 보여준 '업보'로 인해 지금의 전문가들 고견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것이다.

국책기관의 역할은 정부가 진정으로 냉철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혜를 모아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원들이 이런 도리보다 당장 당국자들의 귀와 마음만 편하게 해 주는 목소리만 낸 것이 아닌지 깊이 있게 돌이켜 봐야 한다.

사실 이것은 정부가 더 진지하게 성찰을 해야 할 일이다. 정책을 하는 데 진정한 조언보다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들으려는 속성이 한국의 국책기관들을 세계적 싱크탱크로 성장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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