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양팔을 잡아당기는 정세의 해답은 '균형'이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1970년대에 자란 기자의 세대에게 G7은 한국인으로서 가장 큰 위화감을 갖게 했다.

이 세상 최고 선진국들의 모임이 G7이다. 1975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 1000 달러도 안 되던 한국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잘 사는 서방국가들의 모임으로 결성됐다. 이 나라 가운데 일본도 포함됐다. 동해바다를 사이에 둔 두 나라의 격차가 어떤 것인지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G7이었다.

바로 이런 아주 선망 받는 나라들의 모임인 G7에 올해 한국이 초청될 듯하다. 올해 G7 개최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러시아 인도 호주 4개국을 함께 초청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웃집만 화려하게 차려입고 참석하던 파티에 우리도 초청장을 받을지도 모를 일인데, 지금 이게 사실 별로 그렇게 속편하게 기뻐할 일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초청대상에 포함한 것은 그가 중국과 대결하는 마당에 한국의 동참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말하자면 이 또한 미국과 중국이 양쪽에서 한국의 팔을 붙잡고 잡아당기는 형상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의 미국과 중국을 대하는 외교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예전의 외교는 어떤 상대에게 요구하기 힘든 것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지금은 중요한 두 상대방의 요구가 상충되기 때문에 이것을 최고의 균형 상태로 맞춰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쪽에만 치우친 노력을 했다가 다른 한쪽을 망치는 일이 되기 쉽다.

세계 질서가 새롭게 변하는 마당에 20세기 냉전위주의 사고방식만 고수했다가는 시대흐름에 완전히 뒤처질 수 있다. 낡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세상의 변하는 방향을 잘 파악하고 그에 따라가는 노력에 민족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정세가 30~50년 전과 바뀌었다고 해도, 한반도 정세는 가까운 시일 내에 쉽게 변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남북한이 완전한 평화체제를 이룩하기 전까지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외교에 기본 축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의 최고 동맹국이 중국이란 점에서 역학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는 이와 같이 단기에 바뀌기 힘든 정세를 감안해야 하지만, 경제는 그렇지 않다.

경제는 인류의 과학기술 발달도 늘 염두에 두는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설령 적성국에 있는 거래상대라 해도 현재의 정치적 적대관계가 내일 당장 변할 수도 있고 30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반영해야 한다. 정치관계가 어떻더라도 필수불가피한 경제적 거래는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꾸준히 유지해야 된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G7초청에도 응하고, 미국의 어떤 요구를 불가피하게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중국의 반발을 초래할 것은 거의 확실시된다. 2015년 사드미사일 배치의 전례로 봐서 이는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태도가 원래 이러한 것인지는 몰라도, 현재의 중국 정부는 특히 '대국으로서 권위'를 중시하는 듯하다. 사드미사일의 한국 배치로 자신들의 권위가 손상됐다고 여기자, 2012년 일본을 응징하던 것과 거의 다를 것이 없는 방식으로 한국에게 대응했다. 한국은 한 때 중국을 침략해 수많은 중국인들을 살해한 일본과 별 차이 없는 대접을 받았다.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호감이 크게 낮아진 것이 이 무렵이다.

기자는 2010년 현직 장관을 만난 적이 있다. 장관은 기자와 동행했던 대학생들에게 "유학을 가고 싶다면 미국보다 중국을 염두에 두라"고 조언했었다. 당시 정부는 중국과 우호보다는 철저한 친미를 강조하고 있었는데 그런 정부의 현직 장관이 개인적으로는 이런 의견을 내놓을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 5년 후 전혀 딴판이 됐다. 지금은 지도층인사 가운데 이런 말 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진정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10년의 범위에 묶이지 않는 세상을 내다봐야 한다. 인터넷에서 이웃나라를 혐오하는 댓글이 가득한 것은 인간의 속성이 본래 그런 것이다. 예전 조상들도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면 지금의 '방구석 워리어'들과 똑같았을 것이다. 그런 것은 하등의 무게감도 없는 글자조합들일뿐이다. 전혀 세상에 변수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 댓글에 생각이 바뀌는 사람은 당초부터 세상흐름에 끼어들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 일본과의 외교에서 막후 인물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일본과의 외교에서 막후인맥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 "안보와 경제개발 자금"을 이유로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이들의 책임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있어서는 한일관계와 달리, 혜안을 가진 두 나라의 지자들이 일시적인 교란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갈등 속에서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고 불가피하게 이를 수용한다고 해서 한국이 호들갑을 떨면서 최일선에 나서 중국을 때리는 일은 일어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정세의 변하지 않는 본질을 중국의 위정자들이 알고도 남을 텐데 5년 전의 사드 대응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었다. 중국 내부에 다른 사유가 있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초창기에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이 가장 먼저 중국에 빗장을 걸라는 일부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당시 확산이 심각했던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만 축소시킬 것을 요구했다. 감염자 발생이 잠잠하다가 이달 초 다시 늘었을 때 질병관리본부는 이들의 바이러스 정보가 중국보다는 유럽에서 유행한 것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에서 중국에만 험담을 퍼붓던 사람들의 주장은 타당한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정책이 이런 사람들의 댓글놀이에 떠다니지 않은 것은 당연하면서도 다행한 일이다.

상고시대 치우천왕과 중국 황제(黃帝)의 탁록 전쟁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서로 이겼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역사기록도 없는 전설을 누가 이겼는지 따지는 건 전혀 의미가 없지만 두 민족이 처음으로 경계를 맞닿은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치우천왕과 황제 이래, 수 천 년 동안 이어진 한중 관계는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외교관계일 것이다. 이웃한 두 나라의 국체가 오랜 세월 변치 않고 이어지는 사례는 달리 없을 것이다.

교류의 역사가 깊다면 혜안을 가진 사람들의 소통과 이해의 역사도 깊어야 한다. 상대방이 현재 처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도 굳이 얘기를 듣기 전에 먼저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의 무역 갈등이나 홍콩문제 등 산적한 난제 속에서도 두 나라의 산업과 문화 교류를 맡은 사람들은 10년, 20년 후 모델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런 자리에서는 쓸데없이 상대방의 현재 정치체제를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저쪽 편 사람들 입장을 배려해야 얘기는 더 많이 진척된다.

아랍의 영웅인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초대 대통령은 소련과의 동맹을 통해 무기도 구하고 경제개발의 상징인 아스완댐 건설비용도 마련했다. 그런 한편으로 그는 끊임없이 이집트 국내에서 수시로 공산주의자를 체포했다. 그걸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문제삼은 적은 없다.

어느 한 쪽의 정치가 심하게 경직됐다면, 아무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어도 이것이 당장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때는 한 때 지나가는 소나기, 또는 구름이 일시적으로 밝은 해를 가린 것으로 여겨야 한다.

역사가 깊은 두 나라이기 때문에 100년도 안된 정치체제가 수 천 년 쌓인 저력을 앞설 수는 없다. 이러한 중심을 잡아 줄 의인, 또는 현인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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