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서 기각 가능성 높게 점쳤지만
삼성이 입장문까지 내며 경제상황 거론한 것은 국민 반감 자초했을 수도
이제 삼성의 참모들도 과거와는 달라지는 모습 보여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코스피지수가 9일 오전 상승세를 보였다. 이날 오전의 상승세는 주목할 부분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증시 오픈에 앞서 기각된 데 대한 금융시장의 첫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구속영장 기각 후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구속영장 기각 후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와 같이 한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 총수의 사법처리는 이 회사 주가의 등락으로 그치지 않는다. 특히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문제라면 한국 금융시장 전체에 대한 평판으로 이어진다. 코스피 전체가 한 재벌 총수의 거취에 따라 등락을 함께 한다. 이것은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를 겪은 후 2000년대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재벌 총수를 구속하지 않고 풀어줬다면 지배구조 개선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실망감으로 주가가 빠져야 되는데 이날 오전에는 반대현상이 나타났다.

이같은 투자자들 반응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이 별로 실망스럽거나 예상 밖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검찰의 직무수행에 따른 판단과는 별개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투자자들의 다소 '느닷없다'는 정서도 영장 기각과 함께 나타난 듯하다.

하지만 앞서 2018년 2월5일 수감돼 있던 이재용 부회장이 2심 재판의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날 때 코스피에 대한 시장반응은 전혀 이렇지 않았다. 외국인들의 이날 한국시장 순매도 규모 4544억 원, 삼성전자 주식 13만2000주 순매도는 '너희가 그럼 그렇지'라는 음성을 담은 듯 했다. 3년 전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한국 금융시장의 규율에 대한 냉소가 다시 쏟아졌다.

그래도 당사자격인 삼성전자 주가는 그날 올랐다. 그러나 이것은 이재용 부회장 석방의 불과 5일 전 50대1 액면분할에 따른 '개미투자자들'의 매수 덕택이었다.

법원의 판사는 판사의 소신대로, 검찰청은 검사의 소신대로 이 부회장을 석방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런데 이것을 지켜보는 투자자들 관점에서는 한국사회의 작동원리가 종잡을 길이 없다. 처벌할 때 마저 처벌하지 않고 풀어줬다가 느닷없이 또 붙잡아간다고 나서서 이 시국에 이재용 부회장을 하루 종일 구치소 입구에 묶어 놨다.

2심 재판 당시 판사는 집행유예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나중에 자세히 설명했지만, 외신에서는 또 하나의 '3+5' 관행으로 간주할 뿐이었다. 3+5란 한국 법원이 재벌총수에 대해 '3년 징역, 5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것을 말한다.

금융시장은 특정인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만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고 해도 그걸 지금하는 것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판단도 함께 한다. 엄정하게 판단하는 사법당국과 투자자들의 마음은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 주식시장의 9일 반응은 이런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춰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서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시장도 그걸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법조계에서도 이번엔 구속영장 기각을 점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2심 재판에서 풀려난 걸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붙잡고 매달리기도 세상 형편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영장 심사에 앞서 이재용 부회장 개인도 아닌 삼성 측이 나서서 "경제가 어렵다"는 '여론전'을 펼친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 결과적으로 어차피 기각될 영장이라면 과연 일개 기업이 마치 국민과 사법부에 무슨 영향이라도 미치려는 듯한 이런 언동을 왜 하는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반기업정서는 더욱 깊게 뿌리를 파고 내려간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는가.

회사가 나서서 이런 소리를 하면 총수에게 충성심을 입증하는 길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언동으로 인해 문제의 근원에 해당하는 일부 국민의 반감만 더 자극하게 됐다. 삼성이 전혀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같은 논리라면, 경제가 어려우면 기업하는 사람은 혐의가 있어도 구속하면 안된다는 것인가. 그간 삼성 때문에 시장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는데, 그리고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논란을 제공한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 영장심사를 앞두고 "경제상황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아쉬움이 크다. 이제 정말 삼성의 참모들도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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