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의 대의, 시간당임금으로 혼선 초래한 교훈 되새겨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소득주도성장을 조금만 진지하게 그 취지를 살펴보면, 그 방향에 대해 문제 삼을 이유는 전혀 없다. 한국 경제의 성장기반 가운데 가장 취약한 점을 강하게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진 다수 대중이 더 높은 차원의 수요를 제기할 때 기업이 비로소 과감한 대규모 연구와 개발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에서 아이폰이 나오면 이것을 갤럭시로 빨리 따라잡는 형태의 성장을 했다. 그 성과로 제일 처음 만든 미국이나 서유럽의 기업을 누르고 한국기업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모습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점유율과 별개로, 수익성에 있어서는 여전히 구미선진국들에 비해 갈 길이 멀다. 많이 팔되 많이 벌지 못하는 고질적 문제는 누군가 가장 먼저 만들어 최고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난 뒤에 뒤따라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술이 부족한 것도,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주 단순한 차원의 '새로운 생각'을 먼저 하지 못한 때문이다. 새로운 생각을 먼저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치열한 '국내 리그', 즉 내부의 소비시장이다. 한국 국민들이 새로운 형태의 물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왕성한 경제활동을 벌일 때 끊임없는 혁신의 수요와 동기부여가 국내 기업들에게 제공된다.

아직까지 한국은 인류를 상대로 새로운 '대박상품'을 맨 처음 만들어 판 적이 없다. 토머스 에디슨의 전구와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 같은 '게임체인저'가 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미국 유명대학 공대출신 박사보다 새로운 제품의 개발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다수 대중이다.

이런 측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은 향후 '성장의 질'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높여줄 마땅히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이런 당위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부 논객들은 자기들이 습관적으로 입에 담기를 좋아하는 외국 저명학자의 말을 빌어 이를 폄하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인용한 외국학자의 말을 잘 살펴보면 "내 연구 분야가 아니어서 검증을 해보지 못했다"는 뜻에 불과하다. 물어볼 사람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아무데나 질문을 던지고는 상대방이 학자로서의 '타이틀'을 벗어던진 상태로 내뱉은 한마디를 주워듣고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득주도성장이 지금까지 그 취지에 맞게 올바로 추진됐는지 또한 대단히 회의적이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시간당 임금 1만원' 정책과 동일시되고 있는 점이다.

5년, 10년뿐만 아니라 한 달, 두 달 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정확히 몇 년 이내에 시간당 임금을 1만원으로 맞추겠다는 설정에서 이것은 '선순환'을 위한 거시경제정책으로서의 심각한 한계를 안게 됐던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시간당임금의 속도조절에 나섰지만 새로운 정책이 누려야 할 초기의 탄력을 너무나 많이 상실한 뒤였다.

복지문제라면 현재 정치권에서 누구보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일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 역시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심상정 의원은 지난해 6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임금은 성장과는 상관없는,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한 사회정책"인 반면 "소득주도성장은 시장구조 개혁을 통해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노동자를 중시하는 정당에서도 이처럼 좌고우면해야 함을 강조하는데 국제사회에서 그 누가 봐도 자본주의 경제권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이거 이하로는 절대 안돼"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의 이런 교훈을 절대 잊지 말고 펼쳐야 하는 또 다른 정책이 기본소득이다.

일부에서는 기본소득 또한 복지정책이란 점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는 모처럼 사회 각 계층이 편견을 던지고 새롭게 배우는 자세로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시점에서 불필요한 혼선과 충돌을 초래할 수 있다.

 

기본소득, 소득주도성장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야

전 국민에게 무조건 일정한 돈을 나눠주는 기본소득이란 어마어마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복지정책은 국가 재정의 형편에 남는 여력을 동원하는 것이지만, 기본소득은 그런 차원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다. 고작 10만 원 정도나 돌린다면, 미국에서 빈곤층 구호 쿠폰이 나오는 날만 빈민가 상권이 반짝하는 '빈곤의 악순환' 현상을 부추기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국가의 투자전략으로 수립돼야 한다. 막대한 돈을 쓰되 그에 걸맞은 국부의 창출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불가피하게 기업부문의 엄청난 증세, 그리고 '커다란 정부'의 등장을 전제로 한다. 사회구조의 개편까지 불러오는 것이니 철학적 고민도 함께 있어야 한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여야를 초월한 국회의원들이 기본소득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지난 2월 국회에서 여야를 초월한 국회의원들이 기본소득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거시경제를 정책으로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평생 매달려온 분야에만 함몰되기 쉽다. 그 결과가 소득주도성장이란 대의를 시간당임금 1만원으로 묶어버린 실책이다.

거시경제 정책은 한 분야의 발전을 촉진시키면 그 여파로 다른 분야가 위축되는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해야 된다. 국가 전체적으로 어떤 취사선택을 해야 하느냐 이런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맡아야 된다.

거시경제를 맡는 사람들이 가장 큰 목표로 둬야 하는 것이 '선순환'이다. 자원을 하나 더 투입했을 때 이것이 다른 분야에도 투입증가 효과를 가져와 나중에 자원을 투입한 사람에게도 보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시스템을 모두 살펴보는 안목이 있어야 된다.

기본소득과 같이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일은 '선순환'의 기대가 없다면 물질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절대로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가 앞장서서 연구·추진해야 될 일이다. 이 세상에서 복지정책으로 기본소득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기본소득은 이제 체제가 나서서 생산도 하고 분배도 할 테니 이 체제의 주인으로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국민들은 편히 쉬면서 소비만 왕성히 하시라는 미래를 내포하고 있다. 그 행간에 '빅 브라더'의 세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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