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구심을 키우는 글을 보고도 억지로 반대해석해서 누가 이익을 보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제 금융시장의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터'들은 요즘 심기가 좋을 리가 없다.

우리 민족의 최대 아픔인 분단을 이들은 한국 주식 값을 떨어뜨리는 명분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국을 G7 국가의 하나로 추가시키겠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요즘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어떻든 한국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서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못하게 해야 되는데 북한이 김여정을 내세워서 연락사무소를 파괴한 것은 아주 좋은 호재였다. 그러나 이것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긴장을 누그러뜨리자 디스카운터들의 맥이 빠지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히 이들이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의 시장규율에 대한 의구심, 즉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다.

사실 국제투자자 누가 친한파고 누가 디스카운터인지는 딱 부러지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그가 친한파가 되는 것이고, 여러 불안요인을 주목해 투자를 줄이면 그는 디스카운터의 역할로 돌아서는 것이다.

세계 11, 12위를 오르내리는 한국의 시장은 국제투자자들의 무시 못 할 이해가 걸려있다. 대표적인 기업 삼성의 움직임은 가장 큰 관심사다. 그래서 지난달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대해 외신은 국내 언론이 하지 않는 치밀한 취재에 나섰다.

충남 세메스(SEMES) 천안 사업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충남 세메스(SEMES) 천안 사업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날 위원회는 10대3으로 불기소를 권고했다.

블룸버그는 지난 1일 '상속자 이재용의 운명에 대한 교착상태를 비밀투표가 돌파했다'는 제목으로 당시의 상세한 상황을 전했다.

기사는 서두에서 13명 위원이 전원 남성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한 위원은 "9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는데 10대3의 결과가 나온 사실에 위원들도 놀랐다"며 "토론은 격렬했는데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위원회 결과가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다며 곧바로 지배구조 개선운동가들의 반발을 초래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만약 검찰이 권고와 무관하게 이 부회장을 기소한다면 당국은 대중을 화나게 할 위험("officials risk angering a populace")을 감수하게 된다는 문장을 덧붙였다.

블룸버그 인터뷰에 응한 두 번째 위원은 양분된 여론에 따라 박빙의 표결을 예상했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세 번째 위원은 최대한 공정하게 토론했는데 결과에 대한 비판에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한 위원은 "이것은 재벌에 대한 이념전쟁이 배경에 깔려있다"는 극단적 주장을 거리낌 없이 외신에 밝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이해가 엇갈린 투자자들은 이 위원에 의해 졸지에 좌파 우파로 갈리는 신세가 됐다.

블룸버그는 참석위원의 "이 부회장의 개인적 책임과 별개로 이번을 계기로 금융시장의 법질서가 확립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 사회가 미래세대를 위해 투명하고 공정해져야 한다"는 발언을 맨 마지막으로 소개했다.

기자는 이 기사를 전체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터들의 의구심을 부추기는 경향이 더 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계약에 따라 블룸버그 기사를 전재한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제목을 '삼성 이재용은 어떤 이례적인 방법을 써서 부패 사건을 축소시켰나'로 바꿨다. 블룸버그 기사가 디스카운터들의 기를 살리는 내용임을 더욱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국내 인사들은 같은 기사를 봐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 모양이다. 이들은 기사 중에 한 줄 삽입된 "대중을 화나게 할 수 있다"는 부분만을 강조해 블룸버그가 대중적 반발을 경고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기사를 국내외에 따라 읽는 방향이 이렇게 다른 현상은 대개 한 쪽이 내용이 어떻든 의도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싶을 때 발생한다.

지금 전 세계는 전례 없이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1930년대 대공황에 견줄만한 고난을 겪고 있다.  더욱이 일본은 지난해부터 첨단수출품 수출규제를 통해 한국에 대한 공격적 본심을 드러내고 있다.

여러모로 전에 없는 난국을 맞아 국가를 이끄는 주요 위치의 사람들이 합심 전력해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재벌 총수 문제가 나올 때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라는 상투적 핑계가 외신들이 조롱하는 '3+5 관행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의 밑바탕이 됐지만 현재가 정말로 전례 없이 어렵다는 것은 국민들의 보수나 진보성향을 초월해 대체적 공감이 되고 있다.

이러한 때를 맞아서 상당수 국민들이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대승적 결단에 동의하려고 하는데 한동안 입 다물고 있던 사람들의 경거망동이 이런 노력에 재를 뿌리고 있다.

지금 이 부회장에 대한 책임추궁이 좌경세력들의 음모일 뿐이라면, 과연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2015년의 합병과 같이 전 세계 투자자들이 납득하기 힘든 일을 또 하겠다는 것인가.

만약 그 때 합병에 기업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성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 또한 기업이 감수할 일이다. 그 책임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몇 년동안 법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괴로움도 불가피할 것이다. 지금 현재 몸은 자유롭지만 언제 또 심판을 받을 지 모른다는 불안을 하루 빨리 다 털어버리고 본업에 전념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으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단 한 번에 완전한 마음의 홀가분함까지 얻겠다는 것은 여염의 필부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일 것이다.

그리고 재벌문제에 대해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말을 아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지나가는 기업인들을 돕는 길이다.

식자층이라면 세상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지식을 얻고 변하는 가치관을 진지하게 분석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어릴 때 배운 지식에만 의존하려는 사람들의 가장 흔한 행태가 자기만 애국자인 척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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