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들풀'에 펼쳐진 동학 농민군의 애환

 대학교 2학년때 향토색 가득한 노래 하나를 배웠다.

 
녹두장군 말달리던 호남벌에서
황토길 달리며 우리 자랐다
노령의 힘찬 산맥 정기 받아서
바위같이 굳세게 힘을 길렀다
 
눈보라도 지나고 쇠사슬 풀고
온누리 달리던 우리 형제들
갈기갈기 찢어진 깃발을 안고
얼싸안고 춤을 추며 노래 부르자
 
어르신들이 부르던 학도가의 멜로디에 붙인 곡인데다 내가 다닌 중앙중학교 응원가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와도 곡조가 같아서 어렵지 않았다.
 
그 무렵 선배가 유현종의 ‘들불’이란 소설을 빌려줘서 친구들이 돌아가며 읽었다. 순박하고 기운만 셌던 여삼이라는 청년이 동학혁명의 시기에 점차 의식이 눈을 떠서 동학의 고위 간부로 성장하게 된다. 시키는 대로 일만 할 줄 알았던 투박한 농민들이 참된 사람에 대해 자각을 하고 농민군은 그 어느 나라의 시스템도 따라잡기 힘든 훌륭한 규율을 스스로 갖춰간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해 끝내 동학군이 흩어지고 여삼의 행적도 묘연해지지만 그가 남긴 가족들은 여삼이 어딘가에서는 살아있으리라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게 소설의 끝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구한말 역사는 정말 편한 마음으로 읽기가 어려웠다. 책을 읽던 1980년대 현재 우리가 겪는 모든 모순이 시작된 시점이다. 그래서 소설이 전해주는 땀과 흙이 범벅이 된 냄새가 생생하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그 냄새는 잊혀졌다. 녹두장군 노래도 한동안 잊고 살았다. 마치 노찾사의 “함께 불렀던 그 노래는 기억조차 없구나”라는 가사처럼.
 
신화는 신화일뿐이라며 희망을 버린건지, 아니면 한때나마 우리가 많은 걸 이룩해내서 그런 시절 되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자만을 한 건지, 노래는 우리의 기억을 떠나 있었다. 땀과 흙냄새도 함께.
 
과분한 기회가 생겨서 11일 과천시민회관에서 뮤지컬 ‘들풀’을 보고 왔다.
 
잊고 살았던 땀과 흙이 바로 5미터 앞 무대 위에 가득히 펼쳐졌다. 내 머리의 자율작용은 잊혀졌던 노래도 되살려냈다.
 
▲ 뮤지컬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마지막 절규로 시작한다. /사진=사진작가 강선준.

유현종의 소설 이름과 매우 비슷하지만 별도의 창작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학혁명에 헌신했던 농민들의 애환을 생생히 전하는 점은 비슷했다. 들불은 힘센 장정 여삼이 주인공이지만 들풀에서는 기생 출신으로 농민군에 투신한 여성과 그의 정인이 주인공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농투성이들과 심지어 양반의 기질을 다 못버리고 가담한 몰락양반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름 옷 입고 집을 나간 자식을 철 지나도록 애타게 찾는 어머니, 싸우러 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물이 쏟아지는 각각의 사연들은 오페라 프리마돈나와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밥대장 여인의 질펀한 농담으로 촘촘히 짜여지고, 대단원에 이르러 농민들은 다시 살아오는 희망을 힘차게 노래부른다.

▲ 작품 후반부의 모습. 진혼, 살풀이, 그리고 승화와 희망의 의미로 풀이됐다. /사진=사진작가 강선준.
 
예술 분야에 식견이 부족해 레미제라블과 비교해서 어떻다 얘기할 처지는 못된다. 한동안 잃었던 것들을 되찾는 와중에 해본 적 없는 예술적 담론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무대에 오른 처음 듣는 노래와 사연들을 접하다 인터미션을 맞았다. 저절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4집의 ‘동지를 위하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앨범 표지의 구한말 의병들 모습이 새삼 생각났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햇볕에 그을린 피부, 키는 남자 평균이 150대, 바짝 말라서 눈이 더욱 커보이는 모습들이지만 못 배우고 못 먹은 와중에 시민의식을 최초로 자각해 낸 이 땅의 선열들이다.
 
 
그 분들이 남겨준 희망으로 우리는 이렇게 그 때의 노래들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공연 배우들은 개막 직전 동학 혁명의 생생한 현장인 우금치 답사도 다녀왔다고 한다. 이 분들의 헌신으로 120년전 들판에 가득했던 녹두장군과 농민군들의 함성이 무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해졌다.
 
▲ 공연장을 찾은 이인애 무대예술가와 남녀 주인공이 담소하고 있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전해질 때면 아마 거의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듯하다. 행여라도 홍보를 하려는 글이라는 오해를 면하기 위해 이렇게 밝혀둔다. 어려운 형편에서 예술을 하는 분들이 특히 이렇게 뜻깊게 기획을 하고 실천을 할 때는 팔 걷어 도와드렸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언론은 나름 독자의 신뢰와 관련된 메카니즘을 무시할 수는 없다.
 
▲ 여주인공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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